ㅍㅍㅅㅅ http://www.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05 Apr 2019 08:40:44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www.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www.ppss.kr 32 32 에어파워 출시 취소? 정말 애플답지 못한 짓이다 http://www.ppss.kr/archives/191997 Fri, 05 Apr 2019 08:40:44 +0000 http://3.36.87.144/?p=191997

혹자가 왜 애플이 AirPower 출시를 취소했냐고 묻기에 특허를 몇 개 찾아보니 애플이 언급한 ‘High Standard’가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 예상이 된다.

그림1

일반적으로 무선충전기는 용도에 따라 첫 번째 그림처럼 코일의 지름은 다르지만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코일이 분산되어 배치된다. 이 경우 아이폰같이 커다란 디바이스는 어떻게 놓아도 코일과 겹치는 면적이 생기기 때문에 충전에 문제가 없는데, 애플워치나 에어팟같이 작은 디바이스는 문제가 있다. 코일과 적정면적이 겹치게 놓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애플워치의 오리지널 무선충전기는 코일이 정확하게 일치하게 만들기 위해 자석이 있는 작은 충전기를 제공한다. 이것을 애플은 풀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 개의 애플 제품을 가진 사용자가 하나의 충전패드 위 아무 데나 대충 놓아도 다 잘 충전되게 말이다. 에어팟도 작기 때문에 이는 동일한 니즈를 가진다.

애플은 이를 위해 US20180090955A1의 특허에서와같이 멀티 레이어, 복수의 코일이 장착된 충전기를 고안했고 어디에 올려두어도 해당 코일이 이를 인식하여 충전되는 기능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발열과 코일 간의 간섭,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동작의 오류를 잡지 못해 애플은 최종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했다.

시도는 참 좋았고 발상도 참 좋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오류를 가진 제품을 공식적인 행사에 미리 발표하고 결국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애플답지 않은 모습에 대한 실망스러움은 결국 스티브잡스의 얼굴이 떠오르게 만든다.

원문: 최형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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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블의 승자는 로욜이다 http://www.ppss.kr/archives/190828 Tue, 26 Mar 2019 04:50:58 +0000 http://3.36.87.144/?p=190828

스마트폰 성장의 정체와 5G가 만나는 2019년은 새로운 폼 팩터가 탄생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때맞춰 CES 2019에선 중국의 작은 기업 로욜(Royole)이 최초로 폴더블 스마트폰을 선보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삼성 이외에 많은 기업이 오랫동안 폴더블을 준비했던 터라 로욜의 등장은 마치 애플워치가 나오기 전 페블의 성공과도 겹쳐 보인다. 한 달 후 MWC에서 모바일의 두 강자 삼성과 화웨이가 동시에 폴더블 디바이스를 선보였다. 아직 안정성이 떨어진다, 누가 우월하다, 어떤 제품이 더 좋다 등 수많은 평가와 리뷰가 나왔다.

하지만 기저의 본질은 무엇인지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SF영화를 보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신문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굳이 이 기술을 수많은 기능성과 사용성의 문제가 존재하는 기존 아날로그 제품에 적용하는지 의아하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이며, 앞으로 이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폴더블 디스플레이 기술의 난이도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2013년 CES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프로토타입을 처음 소개했지만 실제 제품에 적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OLED 기술이 충분한 내구성과 수율, 적정한 성능과 가격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현재 가능한 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그리고 중국의 BOE 정도다.

난이도 중 가장 핵심은 폴딩인데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인폴딩, 아웃폴딩이라는 용어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안쪽 방향으로 접는냐, 바깥 방향으로 접느냐를 구분할 뿐 기본 원리는 같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에 적용되는 유리 재질 대신 폴딩이 가능하도록 폴리이미드(PI) 재질의 기판과 박막봉지(Thin Film Encapsulation, TFE) 공정 또는 이와 유사한 구조가 적용된다.

플렉서블 OLED 레이어 구조 / 출처: Samsung SDI Blog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포개지면서 접히는 삼성의 디스플레이가 상대적으로 더 큰 곡률을 가지고 구부러지는 화웨이의 경우보다 구현 난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두 제품 모두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 책정된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수율과 품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적 우위를 과시하는 플래그십의 성격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본질과 공급자의 마인드 세트

디바이스의 본질이라 함은 사용자가 인지하는 중요한 가치이며 그들의 사용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점유하는 영역에서의 기능성과 사용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크린 사이즈와 해상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삼성의 갤럭시 폴드와 화웨이의 메이트 X는 같은 ‘폴딩폰’이라 불리기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갤럭시 폴드의 경우 접힌 상태에서의 스크린 사이즈는 4.6인치 1,960×840픽셀(화면비 21:9)의 해상도를 가지고, 펼쳤을 때는 별도의 인폴딩된 스크린이 활성화되는데 7.3인치 2152×1536픽셀(화면비 16:10)의 해상도를 가진다.

삼성 갤럭시 폴드의 해상도와 스크린 사이즈

화웨이 메이트 X의 경우 접힌 상태에서의 스크린 사이즈는 6.6인치 2,480×1,148픽셀(화면비 19.5:9)의 해상도를 가졌고, 펼쳤을 때는 별도의 인폴딩된 스크린이 활성화되는데 8.0인치 2,480×2,200픽셀(화면비 8:7.1)의 해상도로 개발되었다.

화웨이 메이트 X의 해상도와 스크린 사이즈

사용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능성의 관점에서 화면사이즈와 해상도를 보면 그것이 바로 메인 디스플레이가 된다.

갤럭시 폴드의 경우 웹 브라우징, 동영상 재생, 게임이나 다양한 콘텐츠 소비 시 4.6인치 디스플레이는 매우 부족하고, 대신 펼쳐진 7.3인치 화면이 적절하다. 결국 메인 디스플레이는 7.3인치라 할 수 있으며 4.6인치는 서브 디스플레이로 볼 수 있다. 즉 메인이 7.3인치인 태블릿이 갤럭시 폴드의 본질적인 기능성이며 결국 이 태블릿을 접은 것이 갤럭시 폴드다.

화웨이 메이트 X의 경우는 6.6인치 화면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해상도와 사이즈를 가져 기능성에 부족함이 없는데, 펼치면 해상도와 크기가 확장되는 콘셉트다. 이 경우 메인 디스플레이는 6.6인치 전면 디스플레이라 볼 수 있으며, 8인치로 펼쳐지는 6.6인치 스마트폰이 본질적 기능성인 것이다. 이는 갤럭시 폴드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폴드를 빈번히 펼쳐야만 원하는 사용성을 얻을 수 있고, 화웨이 메이트 X의 경우 펼치지 않아도 사용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두 번째 기능성 이슈가 존재한다. 갤럭시 폴드는 인폴딩 방식이라 평상시 화면 보호가 용이하고, 펼칠 때와 접을 때 디스플레이에 가해지는 충격과 압력이 작다. 하지만 아웃폴딩 방식의 화웨이 메이트 X는 가장 자주 쓰는 평상시에 외부 충격에 완전히 노출되며 펼칠 때나 접을 때 지속적으로 큰 압력을 화면에 주어야 한다.

결국 갤럭시 폴드는 화면이 펼쳐질 때 굴곡이 생긴다거나 평평하지 못하다는 이슈와 안드로이드 방식의 태블릿이 가진 단점을 고려 대상에서 차치하고라도, 쓸 때마다 불편하게 화면을 펼쳐야 한다. 또한 화웨이 메이트 X는 펼치지 않아도 될 스마트폰의 3면을 스크린으로 만들어 내구성과 사용성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다.

만약 갤럭시 폴드가 외부 4.6인치 디스플레이를 화웨이처럼 6인치 정도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전면을 커버했다면 접은 상태에서의 스마트폰으로도 소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외부 디스플레이로 보는 영상과 내부 디스플레이로 보는 영상의 차이가 크지 않아 7.3인치의 가치가 사라지는 트레이드 오프도 존재했을 것이다.

삼성 갤럭시 폴드와 화웨이 메이트 X

이렇게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기술의 혁신성에도 삼성과 화웨이의 제품에서는 본질에 접근하는 디테일을 보여주지 못했다.

 

폴더블 제품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문제를 만드는가?

갤럭시 폴드의 접히는 태블릿 콘셉트는 이외에도 몇 문제가 더 있다. 먼저 전면의 작은 화면이 일부 기능에서만 적절한 탓에 빈번하게 펼쳐야 하는데, 터치의 오류나 기구적 이슈로 펼치는 동작이 너무도 조심스러워 보였고 UX 자체도 결코 편리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태블릿에 최적화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제약을 커버하기 위해 3개의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한 화면에 올리는 멀티태스킹을 시연했는데 사용자 관점에서의 고민이 부족했음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커다란 화면에서 유튜브를 작은 화면으로 보면서 메신저와 검색을 함께 한다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키보드 입력 시 동영상 재생 화면이 화면 밖으로 밀려 올라가는 치명적인 UX도 그 예다.

갤럭시 폴드의 멀티태스킹 예시 / 출처: 삼성 언팩 영상
갤럭시 폴드의 멀티태스킹 시 타이핑 UI / 출처: 삼성 언팩 영상

물론 화웨이 메이트 X의 경우도 적절한 킬러 앱이나 새로운 사용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접히는 기능과 디자인 콘셉트를 보여주는 데 급급했다. 많은 사람에게 신기한 제품으로 보였겠지만 동시에 폴더블 디바이스의 문제점을 잔뜩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기술적 실험과 도전은 높이 사지만 동시에 디테일과 본질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가격을 떠나 잘 팔리지 않는 갤럭시 태블릿을 접었다고 갑자기 잘 팔릴 리 만무하며, 특별한 차별적 가치도 없는데 고장 나지 않게 노심초사 조심해야 할 고가의 3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메이트 X도 잘 팔릴 리가 없다. 결국 폴더블 디스플레이로 사용자가 가진 어떤 중요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이를 위해 어떤 새로운 사용성을 제시하느냐가 핵심일 것이다.

지금의 폴더블 디바이스는 고객이 가진 그 어떤 본질적인 문제도 풀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접고 싶다’든가 ‘펼쳐서 큰 화면을 가지고 싶다’는 고객의 근본적인 문제나 니즈(Must to have)가 아니며, 있으면 좋겠다(Nice to have)정도의 발현일 뿐인 것이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본질적인 가치

폴더블을 포함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가진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일까? 일단 작은 화면을 펼쳐 크게 만드는 것이나, 큰 화면을 접어 작게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은 아니다. 사용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그걸 풀어내기 위해 접거나 펼쳐야 한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가진 가치는 많겠지만 그중 세 가지만 선택하라고 하면, 아래와 같다.

1. 평면 디자인의 파괴

예전 피처폰 때도 바(Bar) 폰, 폴더(Folder) 폰, 슬라이드(Slide) 폰의 폼 팩터가 있었지만 전부 평면 디스플레이를 사용했다. 이제는 사람과 콘텍스트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의 디자인이 가능하다. 디자인적으로 고도의 최적화 형태로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웨어러블이 인간의 신체에 최적화된 형태를 띠며 상황에 따라 형태가 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디스플레이 자체가 제품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는 수많은 제품에서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거나 시각적 상호작용을 위한 인터페이스로 사용이 되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다른 기술들을 내재화하면서 디스플레이 자체가 최종 제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2. 깨어지지 않는 슬림 디스플레이 시대가 열린다

플렉서블한 디스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외부 충격에 강하고 형태 변형에 유연하기 때문에 깨진 디스플레이를 수리해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진다.

3. 심리스한 형태의 변형이 가능해진다

펼치거나 접는 기구적인 접근에서부터 롤러블(Rollable)이나 엑스트랙터블(Extractable) 같은 형태 변화가 기능에 따라 달라지며, 사용자가 가진 고착된 형태에서의 문제를 해결한다. 트랜스포머처럼 다른 형태에서 다른 기능성을 가지게 된다. 커브의 스마트폰이 슬라이드가 되면서 포터블 커브드 TV가 된다거나 롤러블 TV같이 형태가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2019년 폴더블 폰의 승자는 로욜이다

로욜에서 공개한 세계 최초 폴더블폰 플렉스파이

이렇게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가치를 모바일 디바이스에서의 실제 사용자 니즈와 연결하지 못한 지금, 결론적으로 ‘폴더블폰의 승자는 중국의 로욜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의 완성도나 기능성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지만 가장 먼저 폴더블폰 시제품을 내놓으면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졌고, 마케팅이 목적이었다면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낸 셈이다.

향후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실제 판매량과 고객의 만족도를 미리 감안해 본다면 삼성과 화웨이는 기술 과시로 만족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수많은 이유 때문에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큰 잠재력을 가진 솔루션이다. 이를 이용해 고객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풀어내거나 새로운 폼펙터의 혁신적인 UX를 제안해낸다면 새로운 카테고리킹이 되어 오랫동안 시장의 우선적 지위를 얻어낼 수도 있다.

‘폴드’라는 폼 팩터에 매몰되지 않고 플렉서블의 다양한 가능성과 본질을 사용자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가치를 발견해내는 플레이어가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원문: 최형욱의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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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 합의의 늪 http://www.ppss.kr/archives/99203 http://www.ppss.kr/archives/99203#respond Mon, 06 Feb 2017 03:53:00 +0000 http://3.36.87.144/?p=99203 스타트업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한 함정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어떤 형태의 비즈니스를 하든 우린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역할에 따라 무엇인가를 함께 하게 된다. 기획자가 개발자를 만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앱을 개발하기도 한다. 평소 알던 디자이너와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뭔가 서로의 니즈가 통하면 같이 공동창업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함께 열심히 일을 한다. 호흡이 착착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하는 일이다 보니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합의를 이루기 위해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경우가 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워낙 시급하고 부족한 게 많다 보니 사람들은 아쉽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거나 나중으로 고민의 깊이를 미룬다.

함정에 걸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뭔가 찜찜하기 시작한다. 공동창업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때나,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또는 함께 일하는 파트너 관계에서도 일은 진행되고 있는데 클리어하기보다 뭔가 모호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말하기 좀 애매하기도 하고 껄끄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변죽을 울리다 만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다. 뭔가 많이 틀어졌다는 느낌이 들거나 생각의 갭이 엄청나게 크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제야 그럴 줄 몰랐다고 서로를 원망하거나 돌이켜보려 애를 쓰지만 그 갭은 되돌리기에 너무 크고 마음의 틈은 회복이 요원하다. 서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원인을 함께 논의하지만 이미 되돌아오기엔 멀리 가 있다.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중이 절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고, 스타트업이라면 결별을 이야기하는 수순이 온다.

여러 스타트업의 결별을 보았고, 회사를 떠나는 개발자들을 목격했고, 보내온 시간과 함께 믿음과 신뢰가 한꺼번에 깨지는 회사를 보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쉽게 암묵적 합의의 늪에 빠진다

암묵적 합의란 서로 명확하게 조건과 요구사항을 드러내 이야기하고 그것에 맞는 합의안을 구체적으로 성문화하는 정식합의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초기에 구체적이지 않았으니 달려왔던 관성으로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마음으로 믿거나, 그렇다고 간주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지분을 주는 사람과 받을 사람은 보는 관점이 다르고 일을 시키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도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기에 자금의 여유가 없고 상황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이다 보니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구체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그러자니 관계가 쪼잔해 보인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암묵적 합의의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이것이 장기화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왜 암묵적 합의를 하게 되는 것일까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고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도 해보는 등 다양한 회사와 집단의 사람과 만나면서 느낀 이유는 이렇다.

  1. 필요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의 시작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서이다. 시간이 흐르고 깨닫기 시작하지만 번번이 바로 잡을 타이밍을 놓치거나 미루게 된다.
  2. 일부러 피하는 경우. 해야 하는 걸 알면서 한쪽이 일부러 피한다. 지분을 더 받기로 개발자는 믿고 일을 하고 있는데 대표는 처음과 마음이 다르다. 직원은 5%쯤 받을 거라 믿고 있는데 대표는 1%를 생각하고 있다. 주는 것이 아깝거나 떠날까 두려워 대표가 이를 피한다. 개발자들이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들어 줄 수가 없다. 암묵적 합의는 양쪽이 함께 거리를 좁혀오지 못하면 명시적 합의로 바꿀 수가 없다.
  3.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경우. 암묵적 합의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가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명확하게 확인하지 않았지만 언뜻 그렇게 들었고 개발자는 나중에 대표가 지분을 줄 거라 믿고 있다. 대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는 했으나 사실 주겠다는 확신은 없다. 파트너와 프로젝트가 잘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상대편도 챙겨주겠지 생각하지만 이익이 나면, 또 손해가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합의는 없었다. 직원이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는 하나 R&R이나 일의 스펙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고 동료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들을 막연히 잘할 거라고 기대한다. 이렇게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암묵적 합의의 내용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커가고 있다.
  4. 이야기했으나 성문화하지 않은 경우. 그나마 나은 것은 명시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진행한 경우이다. 하지만 문서나 이메일, 계약서 등으로 문서화하지 않고 구두로 이야기된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 사람의 기억이나 말의 뉘앙스의 차이가 있고 해석하는 조건의 차이로 인해─막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보다 구체적일 수는 있지만─진화하는 모습을 막을 수는 없다.
  5. 성문화했으나 명료하지 않은 경우. 가장 나은 케이스는 명료하지 않아도 문서화를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문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과 일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면서 구체적이 될 수 있기에 처음부터 완벽한 명시적 합의는 스타트업에서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초기부터 명시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껄끄러운 이야기도 나누고 원하는 일, 해야 할 일, 투자하고 손해 봐야 할 조건, 기여하고 보상해야 할 구체적 과정들을 논의하면서 서로에게 원하고 바라는 것을 글로 기술해 남긴다면 이것은 암묵적이지 않은 명시적 합의가 된다. 명시적 합의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서로의 갭을 줄이고 방향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암묵이 아닌 명시의 문화로

사업을 하고, 스타트업이나 타인과 컬래버레이션하는 모든 경우 우리는 이렇게 암묵적 합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인은 싫은 이야기 나누는 걸 꺼리고, 건전한 토론을 감정적 대립으로 인지하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특히나 명시적 합의를 위한 과정을 추구하기보단 쉽게 쉽게 암묵적 합의의 틀을 만들어 민감한 것들은 그 안에 넣어두고 싶어 한다.

암묵적 합의는 시간이 흐른 후에 독이 되어 더 큰 아픔이 될 수 있는 씨앗이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논의의 과정이 불편해도 믿음과 신뢰가 쌓일 수 있고 관계의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명시적 합의를 만드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어쩌면 스타트업의 생존과 성장에 있어 아이템의 사업성이나 시장 상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명시적 합의로의 커뮤니케이션과 이를 위한 문화라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원문: 최형욱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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