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www.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17 Jul 2020 07:15:20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www.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www.ppss.kr 32 32 아무도 관심 없을 이집트 유물 이야기 #1 :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 http://www.ppss.kr/archives/222099 Fri, 17 Jul 2020 07:07:09 +0000 http://3.36.87.144/?p=222099 사건사고가 많은 요즘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이래저래 감정적으로 좀 격해지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럴 때는 역시 기분 전환을 위해서 수천 년 전으로 잠깐 다녀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가치 판단들과는 완전히 무관한 시공간 속으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소개해드리려는 유물은 이름하여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 이 유물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실에 있는 만큼, 유물을 살펴보시면 파리에 다녀오시는 느낌도 날테니 1석2조라 할 수 있습니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사진 출처 : 곽민수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는 관람을 시작하시는 지점에 따라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실의 거의 맨 끝 혹은 거의 맨 처음에서 만나시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발견하시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치시게 되는 경우가 많을 듯 합니다. 그러나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또 아주 오래전 유물이기도 한 만큼, 언젠가 루브르를 찾게 되신다면 좀 여유를 갖고 자세하게 살펴보시는 것을 저는 추천드립니다.

높이가 25.5센치미터 정도 되는 이 부싯돌 돌칼은 ‘선왕조 시대 나카다(IId)기’의 유물로 여겨집니다. 원래 고고학자들은 특정한 문화형식에 해당되는 유물이 최초로 발견된 지역 이름에다가 이런저런 숫자나 알파벳을 붙여서 시대명을 짓기도 합니다.

‘나카타IId기’는, 그러니깐 나카다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표준 유물로 삼는 ‘나카다 시대’에서도 II기, 그 가운데서도 d기에 해당되는 시기라는 뜻이지요. 이 시기는 대략 기원전 3300년경입니다.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 (사진 출처 : 곽민수)

이 돌칼은 조지 베네디트라는 프랑스인 이집트학자가 루브르 박물관을 위해서 1914년에 카이로의 한 고미술상에게 구입했습니다. 유물을 판매한 고미술상에 따르면, 돌칼은 게벨 엘-아라크라는 지역에서 입수된 것이라고 하는데,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은 것입니다.

그런데 게벨 엘-아라크에서는 현재까지 중요한 이집트 유적-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현대의 학자들은 이 유물이 원래는 아비도스(Abydos)의 움 엘-캅(Umm el-Qaab)에서 출토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건 초기왕조 시대의 왕묘나 선왕조 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이 이 지역에 많고, 그러다 보니 화려하고 정교한 유물들도 이 동네에서는 자주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애석한 일이지만, 현재 서구의 주요 박물관들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는 이집트 유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돌칼처럼 출토 맥락은 물론이고 대략의 출토지 조차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 대부분은 도굴되었거나 우연히 입수된 유물들이 이집트 현지의 고미술상을 통해서 서양인 수집가들에게 넘어간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고유물의 판매 및 구입은 현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그 대부분은 19세기~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돌칼의 칼날 부분은 매우 질 좋은 황색 부싯돌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부싯돌은 보다 전문적으로는 처트(chert), 일반적으로는 규질암이나 수석(燧石)이라고도 불리는데 나일강 유역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노란색 석재로는 의례용으로 구분되는 돌칼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아마도 이 색상이 금속의 색상(예컨대 구리)과 비슷한 색상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에서는 사용흔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실제로는 사용되지는 않았던 칼이라는 이야기죠. 그런 만큼 이 칼은 아마도 순전히 의례용이나 상징물로 제작된 것 같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도 충분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습니다.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 손잡이 ‘전쟁 장면’ (사진 출처 : 곽민수)

아마 석기에 관심이 많으신 선사시대 고고학 전공자들은 무진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칼날 부분을 보고 흥분들 하시겠지만(실제로 제 주변의 선사 고고학자들이 그랬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집트 고고학자인 만큼 이 손잡이 부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이 손잡이 부분도 칼날 부분 못지않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진 손잡이의 한쪽 면에는 전쟁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레슬링 같은 몸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무엇인가 도구를 사용해서 상대를 타격하고 있는 장면도 있는데,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하단부에 묘사된 ‘수전’ 장면입니다.

이건 분명히 나일강에서 벌어진 어떤 전투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전투의 정확한 맥락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인구밀도가 높은 취락이 나일강변에 형성되었고, 그러다 보니 각 지역 간의 교류도 주로 나일강을 통해서 이뤄졌을 것이고, 반대로 충돌과 갈등 역시도 나일강을 통해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선왕조 시대 동안 ‘나일강 전투’는 그리 드문 사건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선왕조 시대 말기의 상이집트에서는 아비도스, 나카다, 히에라콘 폴리스, 이렇게 3지역이 지역 내 패권을 놓고 격렬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 손잡이 ‘사냥 장면’ (사진 출처 : 곽민수)

손잡이의 다른 면에는 많은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자가 사냥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이 장면들은 보통 ‘사냥 장면’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장면이 손잡이 상단부에 있습니다. 바로 한 남성이 두 마리의 사자를 제압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속의 남성은 보통은 ‘백수의 제왕(Master of Animal)’이라 불리는데, 이 모티브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우루크(Uruk) 시대 후기(기원전 4000-3000년경)에 자주 사용되던 모티브인 만큼, 이 돌칼에서의 묘사는 메소포타미아의 모티브가 직수입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남성이 입고 있는 의복이나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스타일입니다.

라가쉬의 통치자, 구데아의 섬록암 상. 기원전 2120년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여기에서 구데아가 쓰고 있는 관은 위의 석검 손잡이의 장식에서 ‘백수의 제왕’이 쓰고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출처: 곽민수

이 면의 중앙에는 돌출부가 있는데, 이건 끈을 묶을 수 있게끔 만든 장치입니다. 게벨 엘-아라크의 단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다른 유물들, 예컨대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품인 석도나, ‘피트리버스의 단도’라고 불리는 영국 박물관 소장품에도 유사하게 끈을 묶을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칼날의 경부(혹은 슴베, 영어로는 tang)와 연결이 되어 있었을 손잡이의 최하단부는 아마 조금 유실된 것 같습니다. 유물을 입수한 베네디트의 기록에 따르면 손잡이 최하단부에는 칼날과 연결하는데 사용되었을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치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현재는 유실되어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의례용 석도. 나카다 III기. 기원전 3200년경.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 / 출처 : Brooklyn Museum

출처: Min-soo Kwack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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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된 대통령, 박근혜 http://www.ppss.kr/archives/147942 http://www.ppss.kr/archives/147942#respond Thu, 04 Jan 2018 00:59:36 +0000 http://3.36.87.144/?p=147942 1.

박근혜의 글씨를 철거하는 것은 당연하다(참고 기사: “폐위된 왕족 박근혜의 글씨, 즉각 철거하라”). 사실 글씨뿐만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 역시도 완전히 빼앗아 청와대나 대통령기록관 같은 곳에 분명히 있을, 쭉 이어지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 속에서도 박근혜의 사진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출처: 연합뉴스

 

2.

박근혜는 ‘폐위된 왕족’이 아니라 ‘탄핵된 대통령’이다. 쫓겨났다는 점에서는 두 케이스는 유사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두 쫓겨남은 질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전자는 왕조교체나 정권교체 같은 ‘권력 주체의 교체’ 정도가 그 배경이 되지만, 후자는 보통 ‘범법-범죄행위로 인한 대리권자의 자격 박탈’이 배경이다. 즉 전자는 어떤 이유에선가 자기 회사가 망한 것이고, 후자는 회사에서 직원이 비리를 저지르다 들켜서 정당하게 해고당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정당성에 있어서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열등하다. 박근혜의 사례는 바로 그 후자에 속한다.

그런 만큼 박근혜에 대해서는 아주 또박또박 힘주어서 분명하게 “탄.핵.된.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가 정말로 왕족스럽게 살았었던 것과 스스로를 왕족 비스무레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반민주주의적 독재정권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연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주 조금의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다.

또박또박 불러주자, “탄핵된 대통령”이라고

 

3.

한국사회에서는 무심결에 혹은 관용적으로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는 언설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해서 좀 문제의식을 갖고 그 사용을 의식적으로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큰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시민주권의 대리권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자기 일이 바빠 이것저것 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기 힘든 시민들이 신뢰가 가는 괜찮은 사람을 골라서 자기 일 좀 대신 맡아달라고 특정 기간 동안 자기 주권을 양도한, 일종의 ‘권한 대행’이 대통령이다.

진짜 민주주의는 이 교과서적인 이론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실제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다.

원문: Min-soo Kwack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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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정진석들’ http://www.ppss.kr/archives/116642 http://www.ppss.kr/archives/116642#respond Sun, 11 Jun 2017 08:42:37 +0000 http://3.36.87.144/?p=116642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4선의 현직 국회의원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 대중으로 구성된 문재인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좌파 좀비’라는 일방적으로 부정적 가치판단을 담은 언설을 사용해 폄하했고, 더 나아가 경멸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시민 주권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가장 최신의 민주주의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행태이기도 하다. 그가 ‘구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지난 시절 동안 반민주주의적 행태를 일상적으로 너무 자주 경험해왔기에 그러한 작태에 대해서 무뎌졌기 때문이다. 이 익숙해짐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서 이 사안을 바라보면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냈던 중진 의원의 이 발언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언론은 이 충격적인 발언에 대하여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 소위 ‘진보 언론’에서조차 이 사안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경향신문’이 아니라 ‘스포츠 경향’에서 연예인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기사화하는 것처럼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도의 내용으로 관련 기사를 썼을 뿐이다.

근래에 ‘진보 언론’의 기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민주주의적 아비투스가 정진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몸소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한겨레21의 편집장을 지냈던 안수찬은 “덤벼라, 문빠들”이라고 말함으로, 또 한겨레의 기자 하어영은 공중파 라디오에서 “문 대통령은… 아, 문 대통령’께서’라고 해야 하나요? 훗”이라고 비아냥거림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민 대중에 대하여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냈다.

시민 대중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저으로 폄하하는 이들은 모두 우리들 주변의 ‘정진석들’이다. 그들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입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또 과거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하여 아무리 커다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일 뿐이다.

혹자는 시민 대중의 ‘집합적 움직임’이 갖는 물리적 괴력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예컨대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를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한국사회가 흔하게 경험했었던 ‘특정 개인에 대한 집단 린치’와 비교하며 평가절하한다. 그들의 우려는 ‘습관적 엘리트주의’에 기반 둔 것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 ‘문자 폭탄’이라는 담론으로 표상화된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에는 최소한 두 가지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참여정치라는 차원에서 ‘주권자’가 ‘주권 대리인’ 혹은 언론과 같은 공공 권력체에 대하여 의사 표명을 하는 것에 관한 층위이고,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화자가 청자에게 인신공격적 발언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층위이다.

두 번째 층위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를 들어서 가족이나 친구 간의 대화라고 하더라도 윤리적 정당성을 얻기 힘든 만큼 이 지점의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하지만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는 설령 청자 개인의 사적 맥락이 일부 언설의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커뮤니케이션 맥락 하에서 청자는 ‘사적 개인’이 아니라 ‘공적 성격’을 가진 국회의원이나 기자, 혹은 언론 권력체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화자 역시도 익명성의 그늘 뒤에서 삐뚤어진 개인적 욕망을 마구잡이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실명성에 기반 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는 표상적으로는 ‘몰개인적인 집단적 움직임’으로 관찰되지만, 그것은 각각의 ‘개인적 실천’들이 공통적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그 행위의 결과가 ‘집합적으로’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 일어난 착시현상일 뿐이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두 층위는 분명하게 구분해 인식할 필요도 있다. 후자의 부정적 속성, 즉 ‘집단 린치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 즉 ‘참여정치 현상’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시절 우리는 정부 비판적 성격의 시위 과정 중에 일어난 폭력적 상황을 근거로 시위 자체를 ‘불법 시위’나 ‘폭력 시위’로 규정하며 시위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는 노력을 실제로 경험했다.

시민 대중은 ‘옳은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당성은 그들이 ‘개인’이자 ‘시민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내려진 판단이 설령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라도 그것을 ‘민주주의 사회’는 감수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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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세력과 박사모 http://www.ppss.kr/archives/111807 http://www.ppss.kr/archives/111807#respond Mon, 24 Apr 2017 02:38:09 +0000 http://3.36.87.144/?p=111807 적극적 친노-친문세력(이하 친노세력)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이런 의견을 가진 이들은 심지어 친노세력과 적극적 친박세력(이하 박사모)이 다를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적극적 친노세력과 박사모의 행태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없지는 않다. 예컨대, 해당 담론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정치 행위들이 특정한 상징에 대한 “애정”을 기반을 두고 있는 상태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양 정치세력이 가진 차별성 또한 분명할뿐더러, 오히려 이 차별성이 양 세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더 유의미한 근거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출처: sbs뉴스

 

첫 번째 차이는, 전자가 정당성의 근거로 도덕적-지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데 반하여 후자는 권력을 근거로 실천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양식에도 반영되는데, 그러므로 전자가 대체로 계몽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후자는 자주 물리적 폭력으로 표출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 실천 동력에 있어도 양 세력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제도 정치권의 개입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뉴미디어에 기반을 둔 개인들의 집합적 움직임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설령 근래에 자발적 참여층의 숫자가 늘어가는 추세라고 하더라도, 애초에 움직임이 생겨난 동인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제도 정치권의 선동과 동원이다.

또한,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전자의 지지대상이 되는 제도 정치권 내의 정치인들에게는 친노세력을 물리적으로 활용할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으나, 후자의 지지대상이 되는 제도권 정치인들은 여전히 후자를 선동과 동원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실제로 그렇게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

세 번째, 진영 내 비판 여부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범야권 내에는 적극적 친노 세력의 과도한 계몽적 행태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표하는 부류도 다수 있으며, 양쪽 사이에 일종의 “진영 내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출처: sbs뉴스

 

이와 같은 진영 내의 비판은 향후 친노세력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반면 소위 말하는 범여권 진영 내에는 박사모식 행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노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그 행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저쪽(친노)도 똑같다”와 같은 진영 외부를 언급하는 일종의 “진흙탕 싸움의 논리”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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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야권 후보지만 안철수를 내 선택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 http://www.ppss.kr/archives/109682 http://www.ppss.kr/archives/109682#respond Mon, 10 Apr 2017 09:05:37 +0000 http://3.36.87.144/?p=109682
출처: 조선DB
  1. ‘정상정당’이라고 하기 힘든 ‘지역정당’의 후보다.
  2. 박근혜에 부역했던 세력과 언론, 즉 반민주주의적인 세력과 비민주주의적인 언론의 직-간접적 지지를 받는다. 이 사실은 반민주주의-비민주주의 세력이 안철수 집권을 통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탄핵의 연속 선상에서 치르는 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및 그 부역 세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보다는 ‘문재인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 류의 메세지를 던지는 데 더 주력한다. 이것은 시민권력의 참여정치가 이루어낸 촛불시위의 성과가 갖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4. 더불어 이것은 ‘비젼과 목표를 갖고 무엇인가를 해내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보다는 유력한 경쟁자를 어떻게든 넘어서서 ‘일단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나는 대통령직을 수단으로 여기기보다는 목적 자체로 여기던 사람을 한 명 기억하는데, 그건 바로 박근혜다.
  5. 애초에 안철수가 정치권에 등장할 때 ‘안철수 현상’이라고 불리기까지 한 배경이 되었고 그 스스로도 주창했던 ‘새정치’ 즉 탈진영과 탈지역, 탈부패, 탈네거티브 등의 담론과 완전히 괴리되는 ‘기존 정치’, 소위 말하는 구태정치적 언행을 근래의 안철수는 적극 사용한다. 이와 같은 분열적 행태는 철학과 실천 의지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6. 거짓말(예컨대 고교 시절 최동원 경기를 보았다,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족들 모르게 군대에 갔다 등의 발언)을 자주 하고 자기부정적 행태(고위 공직자 자녀 재산 공개 법안을 제안하며 동시에 자기 딸의 재산 공개는 거부,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말한 뒤 바로 이어지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은 피함 등)도 자주 보여준다. 고민과 성찰 끝에 갖게 되는 자기 철학과 주관이 빈약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만 집중한 결과라 생각된다.
  7. 격동의 1970-1980년대를 청소년-청년으로 살아왔음에도 주요한 역사과정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는 양비론이 습관화된 전형적인 ‘한국형 개인주의자’다. 이런 한국형 개인주의자에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공적 책무를 맡기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8. 7번에서 기인하는 일이겠으나 한국 사회의 보편적 상황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판단에 대한 근거로는 구의역 사고 당시의 그의 트윗(’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지하철에서 대학생’에게 책을 선물 받았다’는 설정 등이 있다.
출처: 연합뉴스

원문: Min-Soo Kwack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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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인문학’ http://www.ppss.kr/archives/90146 http://www.ppss.kr/archives/90146#respond Wed, 21 Sep 2016 08:14:48 +0000 http://3.36.87.144/?p=90146 강신주는 언제나 인문학의 대중화를 소리 높여 말하지만 그는 오히려 인문학 자체와 인문학의 대중화에 해를 끼친다. 최근 강신주의 인터뷰는 그의 사고방식과 노력이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인문학’에 가까운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60907154608697
출처: BOOKDB

강신주는 그 자신이 인문학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인문학의 이름으로 ‘인문학의 수준과 단계’를 재단한다. 하지만 지난 수백년의 인문학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견들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여왔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교만한 언설은 내뱉은 적 없다. 또한 그는 그 자신이 아주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지식 소매상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학문이 자본주의에 포섭되었다며 나무란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지식 팔이’에 대한 성찰은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성찰과 자기객관화가 완전히 생략한 이런 진단은 적어도 인문학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50년 후면 자신만 남고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이들은 사라질 것이라 말한다. 그의 이 말은 50년은 커녕 5년만 지나도 영원히 잊혀져 버릴지 모르는, 아니 어쩌면 단 한 순간도 기억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옛 사람의 말 한 마디, 고문서의 문장 한 줄, 고대 신전의 폐허에서 나온 토기편 한 조각에 열정을 다하는 인문학 탐구자들의 노력을 완전히 폄하하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하는 이가 말하는 인문학이 갖는 진정성은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인문학의 목적은 남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남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강신주는 스스로 22세기를 위한 고전을 남기겠다고 말한다. 고전은 애초부터 남겨지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탐구자들이 남겨 놓은 것들 가운데 아주 일부가 역사의 풍파를 이겨내고 우리시대의 기반으로 남은 것들이다. 애초부터 남겨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문학은 물론이고, 어떠한 종류의 학문도 될 수 없다.

그는 페미니즘을 수준이 낮다, 맹아적이다고 단언한다. 그의 선언은 대법한 것이기에 분명히 흥미로운 논점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언은 강한 어조만 있을 뿐, 어쩐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하여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강한 어조 속에서 그가 갖고 있는 편견과 경멸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인문학 연구자를 자칭하는 이가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무모함, 지적태만, 교만함, 그리고 비겁함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4중주”다. 그는 여성 사상가들 가운데, 오로지 한나 아렌트만이 자식의 책에서 다뤄진 것에 대하여 ‘이것이 우리 문명의 현주소’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문명의 현주소가 아니라 강신주 자신의 그릇이다. ‘파시즘’이라는 담론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강신주는 자신의 그릇에 겨우 아렌트만을 담을 수 있었을 뿐이다. 자신의 그릇을 세상의 수준에 빗대어 말하는 그는, 모든 걸 떠나서 일단 비겁하다.

분명히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엘리트 의식과 계몽 의식이 습관처럼 베여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사회문화적 불평등과 불균형이 실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뼈아픈 것이지만, 상당 부분 정당하다. 하지만 이 불신은 극복되어야 되어야 하는 것이지,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강신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불신을 혐오로 강화시켜 자신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한다. 결과적으로 강신주는 자기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문학자를 타자화시키는데, 이 불특정다수에 대한 타자화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는 ‘우리 이외는 다 이단’이라 선언하는 종교적 배타성과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다 종북’이라 매도하는 특정권력 집단의 정치적 선동을 이미 오래도록 경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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