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www.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Mon, 16 Jan 2023 03:06:51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www.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www.ppss.kr 32 32 화성에서 온 디자이너와 금성에서 온 PM http://www.ppss.kr/archives/225945 Mon, 14 Sep 2020 09:19:34 +0000 http://3.36.87.144/?p=225945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좋은 PM(Product Manager)과 함께 일하는 것만큼 복된 일도 드물다. 아마 반대로 PM들도 좋은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서로 간의 ‘쿵짝’이 잘 맞아야 프로젝트도 잘 굴러간다는 이야기.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정도라면 개개인들의 실력은 좋을 것이고 협업 경험도 나름 풍부하고 프로젝트에 열정도 있고 성격까지 좋은 디자이너 혹은 PM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 경험상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같이 커피 마실 때는 사람이 다 성격이 좋지’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아무리 성격 좋고 실력 좋은 사람 둘이 일한들 함께 일하는 프로젝트에서의 시너지가 언제나 비례하라는 법은 없다. 이 글은 디자이너로서 좋은 PM을 가려내는 방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PM이 함께 생산성 높은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서로 간의 다른 역할과 기대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 경험에 의지해서 쓴 글이다.

 

역할 이해하기

일단 가장 기본적인 룰은 디자이너와 PM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역량을 충분히 레버리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실리콘밸리에서 PM이 하는 일은 흔히 한국에서 같은 의미로 일컫는 ‘상품기획자’ 정도의 역할로 한정 짓지 못한다. 그들이 가진 경험의 깊이와 지식의 폭이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었던 상품기획자의 그것을 쉽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역할 역시 한국에서 경험했던 그것보다는 확장된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PM의 역할을 명확히 인지해야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PM의 핵심 역할

  1. 프로덕트 정보: 신규 출시, 혹은 개선하려는 제품의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제품 히스토리와 이해관계자들의 역할도 꿰뚫었다.
  2. 시장 정보: 경쟁사의 동향 및 마켓에서 들려오는 여러 주요한 의견들을 취합해서, 현재 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을 파악하고 제품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3. 비즈니스 성공의 명확한 목표: 신규 출시, 혹은 개선하려는 제품이 시장에서의 성공하려면 어떤 지표를 모니터링해야 하는지 명확한 성공 매트릭스를 파트너들에게 제시한다.
  4. 디자인과 개발 지식: 프로젝트 기획 시, 어떤 디자인과 기술이 실제로 적용될지 아직 모르는 상황임에도 어느 수준의 디자인 혹은 기술적인 노력이 최종적으로 필요할 것인지 대략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는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범위과 타임라인, 런칭 시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5. 우선순위 정의 및 관리: 프로젝트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점들이나 이슈들 중에서 해당 일정 가운데 꼭 진행해야 할 부분들의 순위를 중요도, 긴급성, 파급력 등을 고려해서 정한다. 그리고 보통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2–3개월씩 해결할 수 있는 분량으로 쪼개서 프로젝트들의 우선순위를 관리하며 전체적으로 롱텀 플랜으로 계획한다.
  6. 일정 관리: 큰 틀에서의 일정은 보수적으로 계획하되, 세부적인 프로세스는 유연하게 관리해서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전체 일정에 쫓기는 일을 방지할 수 있게 한다.

디자이너의 핵심 역할

  1. 디자인의 논리: 디자인이 ‘이래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는 단단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한다. 많은 경우 PM은 시장에서 얻은 정보와 본인이 가진 기존 경험으로 디자이너가 제시한 디자인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염두하지 않은 채 단순히 심미적으로만 접근하면 디자이너는 PM이 원하는 디자인을 ‘그려주는’ 역할밖에 못 하게 된다.
  2. 사용자 정보: 사용자의 정량적 및 정성적 데이터를 충분히 리서치한다. PM은 제품과 시장의 정보가 탄탄하다. 하지만 사용자 정보는 그와 다르다. 모든 디자인의 출발과 목적지는 사용자이다. 시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현상이고, 진짜 본질은 사용자의 제품 사용 패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알아야 디자인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할 수 있다.
  3. 비즈니스와 기술적인 부분의 지식: PM이 디자인에 여러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것만큼, 디자이너도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의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기여하게 될 비즈니스 영역의 특성 및 트렌드, 최근 데이터 등은 알아야 디자인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4. 다양한 옵션 준비: 디자인을 제안할 때는 최소한 항상 ‘최선의 것’과 ‘최고의 것’을 준비한다. ‘최선의 것’이라 함은 주어진 환경과 리소스 안에서(일정, 참여하는 개발자 수 등) 완성하고 런칭할 수 있는 최선의 디자인 제안을 말한다. 반면에 ‘최고의 것’은 주어진 환경과 리소스를 극복한다면 디자인이 어디까지 발전될 수 있는지, 지향하는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 제안을 말한다. 따라서 ‘최고의 것’이 충분히 매력적이고 설득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범위와 일정, 프로젝트와 관련된 여러 리소스 등도 변경될 수 있다.
  5. 일정 관리: 디자인 프로세스 내에서의 세부적인 일정 관리를 하고 협업하는 동료들과 공유한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PM, 개발자들의 일정까지도 망칠 수 있다. 반대로 상세한 일정을 공유하면 (대부분의 경우)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까지 필요한 일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요구되는 능력

PM과 디자이너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 필요하다. 먼저 PM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다음과 같다.

  1. 소통(Communication): 좋은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PM은 팀의 목표와 우선순위, 로드맵을 함께 일하는 파트너와 그들이 속한 조직에게 끊임없이 전달할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나 개발자는 (상대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의사전달이 있더라도 이해받는 부분이 있지만(어쨌든 이들의 업무에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므로), 의사 전달이 명료하지 않은 PM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PM은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뿐 아니라 리더십, 그리고 외부 미디어에 해당 제품을 알려야 한다. 그들이 디자이너나 개발자보다 우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통 말을 더 잘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의사 전달 능력은 PM의 기본적인 필수 능력이다.
  2. 문제점 분석(Problem analysis from market): 제품이 시장에서 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현재 제품이 시장에서 가진 문제점, 이슈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분석하여 더 나은 다음 버전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문제점은 광범위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작은 단위로 쪼개어 단계별로 개선할 수 있도록 문제점 분석을 준비하는 것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고, 결과물이 가져오는 시장에서의 임팩트를 모니터링하는 입장에서도 용이하다.
  3. 비전(Vision): PM이 하는 역할 중의 하나는 제품의 로드맵을 통해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당장의 작은 변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1년, 2년 후의 큰 그림 안에서 지금의 프로젝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성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들도 좀 더 큰 스케일로 프로젝트를 보면서 접근할 수 있다.
  4. 실행(Execution): 성공적인 PM과 그렇지 못한 PM 간의 차이점은 결국은 실행 능력에 달려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 기획이라도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울 좋은 기획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제품 기획과 아이디어, 디자인, 그리고 개발의 모든 필요한 단계들이 실제 실행 플랜(execution plan) 안에서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정교하게 짜여 있지 못하면 일정이 늘어져서 원하는 타이밍에 제품을 출시할 수가 없으며, 이는 비즈니스에 크고 작은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핵심 능력을 살펴보자.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요즘같이 협업이 중요시되는 시대에는 디자인 능력만으로는 조직 내에서 역할을 다하기에 부족하다.

  1. 소통(Communication):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로 소통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디자인의 논리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함께 일하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리 자체의 근거도 명확해야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태도, 사용하는 미디엄, 표현 등도 굉장히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디자이너에게 전체 프로젝트의 브리핑을 맡긴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결과물인 디자인의 프레젠테이션마저 PM이 하게 될 경우는 이따금 있다. 때문에 들러리가 아닌 디자이너로 프로젝트에 충분히 기여하고 싶다면, 디자이너 본인의 목소리를 프로젝트 과정 중에 꾸준히 효과적으로 내야 한다.
  2. 문제점 정의(Problem definition from users): PM이 시장에서 제품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디자이너는 이를 바탕으로 그 문제점이 사용자의 어떤 행동 패턴에서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행동 패턴은 왜 생겨났는지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인 사용자 이야기를 형성할 수 있고, 디자인 진행을 손쉽게 핸들링 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문제점이 나열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경우에도 하나의 큰 문제점 안에 세부적인 문제점들로 나누어서 별도로 진행하되, 큰 그림으로 묶어서 볼 줄 아는 시각도 필요하다.
  3. 시각화(Visualization): 디자이너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아이디어를 손쉽게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초반에 시각화되는 아이디어의 퀄리티 및 해결 방법에 따라서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 및 성공 여부의 큰 틀이 결정되기도 한다. 가령 프로젝트의 솔루션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더라도 시각화되는 미디엄이 그저 그런 아이디어 정도에 머무른다면, 실제로 좋은 아이디어였음에도 ‘흠… 이 아이디어가 생각보다는 좋지 못한 것이었네’라는 인상을 받으며 팀 전체적으로도 그 아이디어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반면에 그저 그런 아이디어로 시작했더라도 시각화가 잘 된 미디엄을 보게 된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그 위에 덧붙여져서 결국에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발전해가기도 한다. PM이 비전을 보여주는 역할이라면 디자이너는 그 비전을 훌륭한 미디엄으로 시각화해서 눈에 보이게끔 해 구성원들이 그 비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4. 테스트 및 제품 향상(Test & Improve): 불과 10년 전? 5년 전만 해도 내가 개발자들과 이렇게 친하게 지낼 줄 몰랐다. 예전에는 디자인을 완성하고 개발팀에 넘겨주면 제품이 완성되는 순차적인(linear) 프로세스로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마주할 일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디자인과 개발이 거의 동시에(parallel) 이루어져서 제품 제작과 관련한 모든 대화를 거의 매일 하기에 좀 더 관계가 가까워진 듯하다. 그만큼 제품의 베타 테스트와 업그레이드가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디자이너로서도 디자인 파일만 만들어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능이 점차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완성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신경 써야 한다.

 

조심해야 할 실수

이렇게 PM과 디자이너 간에 다른 역할과 요구되는 능력들을 나열해보면 딱히 서로 부딪힐 것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 일하는 환경에서는 은근히 적잖게 갈등이 일어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유자들이라 하더라도 결국 일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 간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를 역할별로 한 가지씩만 언급하고자 한다.

PM: 오지랖 금지

많은 경우 PM들이 프로젝트 시작 전에 준비하는 PRD(Product Requirement Document)를 보면, 이미 디자인 솔루션의 대략적인 설계 모습까지 포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늘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봐, 우리 아직 디자인 시작도 안 했는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제품과 시장의 전문가인 PM은 시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분석할 때 이미 머릿속에 ‘이렇게 하면 좋겠어’라는 아이디어로 가득하며, 그 아이디어를 끝내주게 실현해줄 디자이너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 시작 후에 진행된 디자인 리뷰를 디자이너와 PM이 같이 하면, ‘어…? 이거 내가 의뢰했던 디자인이 아니잖아요.’라고 하는 PM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PM은 디자이너와 일할 때 본인이 클라이언트가 아니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임을 인식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PM이 기획한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서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PM의 의도대로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은 아니다. PRD에서 ‘예상되는 디자인 솔루션’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디자이너: 공부 좀 합시다

반면에 디자이너가 PM과의 관계에서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디자인하는 제품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PM은 디자이너에게 쓸데없는 디자인과 관련된 오지랖을 많이 부리는 것이 문제라면, 디자이너는 그 반대로 PM에게 할 말을 안 한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수동적으로 그림 그려주는 역할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역할론적인 관점에서 PM에 의해 길들고 진화된 디자이너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거 PM 역할 아닌가요?’라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제품 디자인은 제대로 된 제품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너무 꼰대 같은 소리일까. 제품의 기본적인 정보도 알고, 시장 데이터도 파악하고, 제품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디자이너 스스로의 역할을 단단하게 세우는 방법이다.

PM이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듯이, 디자이너들도 (그만큼은 못 하겠지만)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내용, 범위, 제품의 기능 등에 의견을 갖고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입 다물고 PRD에 적혀있는 대로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좋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잘 지내봅시다

출처: trupsfolio의 Medium

한 때 링크드인에 본인을 풀스택(full-stack) 디자이너, 풀스택 개발자, 풀스택 PM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만능 디자이너, 만능 개발자, 만능 PM 같은 의미인데,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굉장히 협소한 느낌이 든다. 그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나름의 자격요건이라 하면 어떤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고 스펙’이라는 말의 영어 버전인 듯하다.

하지만 요즘은 이 용어를 예전만큼 자주 접하지 못한다. 아마도 풀스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조직 내에서 그다지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회사 내에서 풀스택 고용자를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협업이 점점 더 중요한 성공의 열쇠로 받아들여지면서 디자이너와 잘 협업하는 PM, PM과 잘 협업하는 디자이너들이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실무에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문: se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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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노멀: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일상의 변화 http://www.ppss.kr/archives/215236 Wed, 29 Jul 2020 06:43:15 +0000 http://3.36.87.144/?p=215236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Bay Area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아마도 몇 년 후쯤에는 지금 겪는 여러 변화들 중의 몇몇은 일상화되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적인 기록의 차원에서라도 한 번 정리해본다.

 

재택근무의 일상화

Be Safe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 3월 초부터 재택근무를 하라는 회사의 공지가 있었다. 이는 Santa Clara County의 건강 관리 규정과 궤를 맞추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의 감염자들이 하루 한두 명, 많게는 10명 안팎으로 보고되는 수준이었다. 일찍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니 상황도 금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는 목적도 ‘현 상황에서 조금만 견디면서 건강을 지키고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집에서 일하자’였다. 말 그대로 ‘조금만 버티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Be Equipped

지금이 7월 말이니까,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서 일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올해 말까지 재택근무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5월 말 정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 왔다. 내가 일하는 이베이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6월까지만 재택근무를 진행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올해 말까지로 정책을 변경했다. 상황 변화에 따라서 기간이 더 연장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황이 길어지자, 초반에 ‘조금만 버티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지금 상황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자’라고 생각을 바꿨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기 위한 제품들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웹캠, 스탠딩 데스크, 마이크, 모니터 등등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다름없는 환경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곳도 있다. 나 또한 스탠딩 데스크를 구매 후 회사에 정산 처리를 했다.

 

Be Flexible

페이스북은 얼마 전 이렇게 발표했다.

모든 직원들이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트위터의 경우 직원이 원할 경우 평생 집에서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공격적인 회사 정책을 발표했다. 몇 달간 해보니 대면 업무가 사라진 불편함은 있지만, 업무 퍼포먼스와 전체적인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좀 더 유연한 업무 환경이 조성된 듯하다.

트위터는 빈말하지 않는다 / 출처: CNBC

이는 머지않아 고용 정책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가령 이전에는 Bay Area에 있는 테크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와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매니저도 얼마 전에 1:1 미팅을 진행하면서 ‘너도 원한다면 올해 말까지 한국 가서 일해도 좋아’라고 했다. 물론 마음이야 정말 그러고 싶지만, 여러 가지 부수적인 문제들(비자 신분 문제, 세금 문제, 시차 문제, 연봉 조정 문제 등등)로 인해서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문제들도 해결되리라 본다. 이곳에 있는 회사에서 소속되어 있지만, 실제 일하는 곳은 한국(혹은 그 이외의 국가)이 될 수도 있겠다. 연봉은 미국 기준, 세금은 한국 기준으로 했으면 좋겠다.ㅎㅎ

 

배송 서비스의 변화

미국 살면서 불편했던 서비스 중 하나는 단연 배송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배송을 시키면 배송비가 물건값만큼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배송 시간도 며칠이나 몇 주씩 걸리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은 미리미리 주문하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다. 약 $100 정도 되는 아마존 프라임 연간 멤버십에 가입하기도 했다. 1~2주씩 걸리는 유료 배송이 1주일 이내로 단축되고, 많은 경우 무료 배송도 해주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유학생들이 가입했다. (학생은 50% 할인)

그래도 아마존은 엄청나게 큰 회사고 물류망도 넓고 촘촘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음식 배달이라든가 식료품 배달 같은 상대적 소규모 서비스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많이 없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느리고 요금도 비쌌다. 최근 들어서 Uber Eat, Door dash, Grubhub 등 다양한 음식 배달 서비스가 생겨났고, Instacart, Amazon Prime Now 등 식료품 배달 서비스도 늘어났지만 역시 비용이 꽤 비싸다. 물건 또한 내가 직접 가서 고르는 편이 정확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굳이 사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으로 인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고, 외식과 쇼핑을 못 하게 되자 배달 서비스들은 경쟁적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송 비용과 팁을 따로 지불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일정 금액 이상을 주문하면 무료로 배달해주는 것이 흔해졌다. 예전에는 배송의 관점이 ‘내가 너 대신 물건을 배달을 해주니까, 네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지’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제품/서비스를 이용해 주시니 배송비는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마인드로 바뀐 듯하다.

아마도 이러한 배달 서비스 문화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쉽게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무료배송 및 빠른 서비스를 경험한 사용자들에게 다시 일정 수준의 비용을 내라고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집안에서

4개월 넘게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공간을 꾸리는 것 말고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가령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나 기계, 도구를 준비한다든가 맛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기를 구입한다거나, 아이들의 교육 자료를 출력하기 위한 프린터기, 집에서 직접 여러 가지 채소나 과일을 심고 가꾸기 위한 도구들(미국은 마당 있는 집이 흔하다), 가족들끼리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게임기, 보드게임 등등. 예전에는 집 밖에서 하던 많은 일들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려니까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제품들은 쉽게 품절되어서 구매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평소에는 할인해서 팔던 것들도 요즘에는 정가 주고도 구입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닌텐도 스위치 대란’이 일어났던 바 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또 다른 분야는 캠핑이다. 예전 같으면 비행기 타고 가서 호텔에 머물며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겠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 가족들이 여행 내내 위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캠핑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나처럼 캠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한번 해볼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작년 가을 11월에 포틀랜드에 4일간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Bay Area와는 다른, 코가 시릴 정도로 바스락거리는 아침 공기와 스웨터 사이로 스며드는 늦가을의 기운을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출장 기간 내내 기꺼이 30여분씩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생각했다.

내년에는 꼭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와야지.

스스로 약속했던 그 ‘내년’은 올해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약속을 올해 내에는 지키기 힘들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을 좋게 이야기해서 뉴 노멀이라 말한들, 내게는 절대 노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이란 아내, 아이와 함께 마스크 따위를 쓰지 않고도 늦가을의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보는 것이니까.

그때까지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원문: se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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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과 사회 초년생을 위한 조언 http://www.ppss.kr/archives/222145 Mon, 20 Jul 2020 05:10:39 +0000 http://3.36.87.144/?p=222145 브런치에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기다 보면 적지 않은 분들로부터 다양한 주제로 연락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취업을 앞둔 분들이 고민하는 진로, 커리어 초반의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질문입니다.

여기서 나누려는 이야기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식의 주제넘은 조언이라기보다는, 제가 10년 넘게 한국과 미국에서 일해 오면서 느꼈던, 그리고 개인적인 문의가 올 때마다 거의 매번 공통적으로 건네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는 동시에 제가 스스로를 리마인드하기 위한, 나를 위한 조언이기도 합니다.

 

Be Fresh

입사 후 첫 1–2년은 아주 중요합니다. 신입으로 혹은 경력으로 새로 입사한 회사에 여러분의 시각과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중한 기간입니다. 신선한 시각으로 회사의 오래된 문제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이를 개선할 역량 및 열정이 있으며,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더 나은 방향으로 도전할 좋은 기회입니다.

출처: Entrepreneur’s Handbook

이를 통해서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은 것은 신입이든 경력이든 회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드는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에 분명 회사의 누군가는 여러분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에이… 그거 우리도 해봤는데 안 되는 거야.’라는 말로 여러분들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 때가 올 겁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절대 낙담하지 마시고, 옳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힘을 합쳐서 무언가에 기여하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에도 삼성전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처음으로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수억을 써가면서 결과물을 완성한 기억이 납니다. 프로젝트 초반 당시에는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유무형의 이득을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았던 분들이 50:50이었으나,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에는 대다수 팀원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주었고, 그 결과물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그룹 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을 저 혼자 해낸 것이 아니라, 제가 추진했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 선배의 귀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이디어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에 여러분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인정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실력 있는 고참도 회사에 여럿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언가 갖고 계신다면 우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로 달 착륙을 했던 아폴로 11 우주선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엔지니어들의 평균 나이가 28세였다고 합니다. 무모해 보였던 달 착륙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니어 엔지니어들의 경험과 노련함보다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열정과 새로운 생각들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그렇게 추진되도록 기회를 열어준 고참들의 헌신도 있었을 테고요. 회사의 시스템과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여러분의 시각과 의견이 가장 날카로운 초반의 1–2년 동안에 어떤 프로젝트에서든지 열정과 실력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Be Curious, Keep Learning

수년 전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에서 졸업생 축사를 했던 연설은 지금까지 회자할 정도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의미 없어 보이는 경험이나 지식이라도, 후에 그것들이 많이 축적되면 서로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지식이나 인사이트를 만들어낸다(Connecting dots)’고 했던 부분은 적어도 제게는 ‘그거 정말 맞는 이야기야!’라고 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진실입니다. 셀 수 없는 다양한 점(dot)이 지금까지 제 삶 속에 있었습니다.

입시 미술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나름대로 미술과 디자인계에서는 ‘비주류’였던 제가 단지 그림 그리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뒤도 안 돌아보고 디자인 학부를 선택할 수 있던 것(당시에 다른 대학교에는 경제학부나 신문방송학부 같은 곳을 지원했습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UI/UX라는 분야를 접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가 생긴 것, 카투사(KATUSA)로 군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가깝게 익힐 수 있던 것, 60일 정도의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기존에 가진 생각과 가치관이 뿌리부터 통째로 바뀔 수 있었던 경험, 첫 회사 입사 이후에 제품 디자인(Industrial Design) 교육 과정을 통해서 실제 여러 제품을 만든 기회, 회사 내에서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면서 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던 것, 석사 과정 동안에 얕은 수준의 코딩을 배운 뒤 기존의 디자인 지식 및 경험에 접목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수 있던 것 등…

이 각각의 경험이 당시에는 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후에는 기가 막히게 연결되어 여러 다양한 기회들을 운 좋게 잡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과정 중에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으니, 제게는 연결된 다양한 점이 보물인 셈입니다. 점을 만드는 원동력은 결국 호기심(curiosity)입니다. 저는 나이와 상관없이, 직급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여러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배움을 지속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 원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가서 다시 더 높은 수준의 학문을 공부하듯이, 대학교 졸업 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후에 연차만 쌓이는 소위 ‘짬’이 높은 직장인이 되지 마시고,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에 따라 자기 계발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배움에서 얻는 인사이트들로 인해서 미래에는 그 흩어져 보였던 점이 연결되어 보일 것입니다.

 

Discover Your Best Role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했던 이어달리기 경주를 생각해보면, 각각 역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을 뽑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 스타트가 좋은 친구, 중반에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 지구력이 좋은 친구,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가 좋은 친구들을 고르면서 최고의 팀을 만듭니다.

출처: BizSmallBiz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도 긴 달리기 경주라고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은 회사라는 커다란 팀 안에서 어떤 역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디자이너이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회사에서의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어달리기 경주의 역할에 비유해서 적어봤습니다.

  • First runner: 새로운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기 좋아하며, 다양한 시도와 그에 따른 다양한 실패에도 유연한 사람. Dreamer.
  • Second runner: 비현실적인 여러 아이디어들을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만들 수 있으며, 여러 다양한 제품과 분야에 대한 연결을 잘 시키고 디자인 프로세스 및 프로젝트 계획에 능통한 사람. Maker & Builder.
  • Third runner: 실제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디테일에 강하고 프로젝트 매니저, 개발자 같은 다기능 팀원(cross-functional team member)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결국 시장에 제품을 선보이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 Deliverer.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가장 빛낼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새로 시작하는 커리어 초반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역할들을 두루 경험해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닌 과정

몇 년 전 영화배우 매슈 매코너헤이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 중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15살 되었을 때 누군가 ‘너의 영웅, 혹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 누구니?’라고 물었고, 나는 ’10년 뒤 나의 모습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10년 뒤 다시 나에게 왔고 또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너는 이제 너의 영웅이 되었니?’. 하지만 나는 ‘아직 턱도 없는 것 같다'(Not even close. No, No.)라고 대답했다.

저도 대학교 때부터 막연히 미래의 내 모습을 나의 영웅 혹은 롤모델로 그리면서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왔습니다만, 그의 말대로 그걸 평생 제가 실제로 다 이뤄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삶의 자세는 제가 계속해서 좀 더 나은 역할, 환경, 삶으로 향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임에는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이 정의하는 성공이 어떤 것인지는 다 다르겠지만 언젠가 성공으로 정의한 것에 도달해 삶에 안주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음에 게으르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조언 아닌 조언을 드립니다.

원문: SE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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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자이너 이직 관련 팁, 그런 건 딱히 없습니다만 http://www.ppss.kr/archives/214820 Thu, 14 May 2020 10:51:46 +0000 http://3.36.87.144/?p=214820

1. Disclaimer

한국에서는 한 회사만 8년 정도를 다녔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에서의 이직 경험이 없어서 이곳과 한국을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곳에서 3년간 일한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다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떤 회사는 초반의 전화 인터뷰에서 고배를 마셨고, 어떤 회사는 최종 합격을 했는데도 오퍼를 받지 못해서 떨어져 나갔다.

다행히 이 모든 시행착오가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는 원하던 복수의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을 정도로 나름 능숙한 인터뷰어가 되긴 했다. 사실 ‘능숙해졌다’라기보다는 ‘인터뷰가 지겨워서 긴장도 덜 하고 차분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다시 이직 시장에 뛰어들라고 하면? 여전히 긴장할 것 같다.

나는 디자인 쪽에서 근무하고 있다. 흔히 실리콘밸리라고 부르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굉장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곳의 구직, 이직 프로세스가 완벽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앞선 기술과 서비스로 미래를 선도하려는 많은 기업들이 있는 까닭에, 구직·이직 프로세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

이 글에는 이미 다른 많은 글들(내가 예전에 썼던 글 포함)에서 볼 수 있는 인터뷰 프로세스나 인터뷰 시의 팁 같은 내용을 담진 않는다. 그보다는 일반적 관점에서 이직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 인터뷰에 익숙해지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의 단계들을 나눠본다.

인터뷰 후 받아든 좋지 않은 결과를 본인의 부족함이나 실수로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쓰고 있다. 분명 많은 것들은 노력이 해결해 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몇몇 요소들은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열심히 노력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2. 실력의 문제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실력이다. 여기서 ‘실력’이라고 하지 않고 ‘실력의 문제’라고 한 건, 실제 실력의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보다는 채용하는 곳에서 원하는 실력의 범위와 종류, 능숙도와 내가 가진 그것과의 매칭(matching)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가령 어떤 부분에 있어서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채용하는 회사에서 그 분야를 주요 기술이나 필수 경력으로 치지 않는다면 의미가 적다는 말이다.

내가 인터뷰를 보러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타인을 인터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터뷰 전 이력서도 꼼꼼히 읽고 지원자의 프로젝트를 상세히 살펴본 뒤 질문할 것을 미리 생각해 가면 좋겠지만, 나도 실무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라 미리미리 스펙과 실력을 알아보고 들어가는 일은 미안하게도 거의 없다. ‘x월 x일 x시에 xx회의실로 들어가세요’라는 인터뷰 통보 이메일을 받아 늦지 않게 가기만 해도 다행인 경우가 많다. 물론 리크루터들은 나 같은 면접관에게 미리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주지만, 미리 검토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이 몇 주, 혹은 몇 개월을 투자해서 준비하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지 않은 건가?

역설적이게도, 포트폴리오를 눈여겨 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대해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상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를 되짚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A. 느긋하지만 확실한 한방

연애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자. 연애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전부터 상대방에게 본인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면 십중팔구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다. 모든 내용을 다 드러내기보다는, 본인 작업 내용의 큰 줄기만 하이라이트로 굵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디테일을 어필할 만한 시기는 연애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온다.

B. Not your skill, but your story

본인의 실력을 드러내는 비주얼만 기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본인만의 이야기나 생각을 담는 편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효과적’이라는 말은 면접관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는 말도 되고, 본인이 프레젠테이션 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디자인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고 억지로 말도 안 되는 독특한 이야기를 끌어다 붙이지는 말자. 평소에 생각하는 가치관,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 인생의 모토, 커리어 방향성 등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면 본인만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평소에도 진정성 있게 고민해보면 좋을 듯하다.

C. 언어의 문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쌓았고, 그것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데 계속 좋지 않은 결과를 손에 쥐게 된다면, 1차적으로 언어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UX 디자이너의 업무 특성상 다른 실무자 및 이해 관계자들과의 회의가 자주 있는 편인데,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떨어지게 된다.

예전 디자이너 직무는 언어가 좀 부족해도 디자인만 잘해도 인정해줬지만(이 경우에도 많은 회의들은 시니어 선임이나 매니저들이 커버했을 것이다), 요즘은 팀의 막내 디자이너들도 회의를 직접 뛰어다니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본적인 언어의 장벽은 뛰어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기본적 수준’은 직급이 높을수록 까다로워진다.

예전에 어떤 언어학자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한 말이 있다.

Learning a foreign language is not about studying, it’s about familiarizing.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영어를 대하는 자세를 바꿔 주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서 단어를 외우고 기사를 읽는 것보다, 출퇴근 시간에 관심 있는 분야의 영어 팟캐스트를 듣는 게 도움이 되었다. 여전히 영어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고 스트레스도 있지만, 분명한 건 1~2년 전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에는 올해보다도 능숙해지는 것이 목표다. 디자이너든 엔지니어든, 언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에.

 

3. 이해의 문제

또 다른 문제는 프로세스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가장 극복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인터뷰 준비에 관한 팁이나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은 이미 인터넷에 꽤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 또한 채용 프로세스가 낯설었기 때문에 앞으로 겪을 사람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인터뷰를 제대로 준비 못 하는 경우는 막아야 하니까.

이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다. 사람들은 문화 차이라는 것을 ‘한국은 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고, 미국은 신발 신고 들어간다’ 정도로 생각하는데,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대화 대상, 주제, 방법, 타이밍 등등 일상 구석구석에 널려있다.

미국 채용 과정에서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가령 링크드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제는 한국에서도 제법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곳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여기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배우고 싶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리낌 없이 1촌을 맺어 대화를 이어나간다. 내가 이직하고 싶은 회사, 팀에 재직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연락해서 그 회사나 팀이 하는 일을 알아볼 수도 있다. 반대로 회사의 리크루터나 매니저라면 필요한 사람을 채용할 때 먼저 연락을 주기도 한다.

한국이라면 ‘이거 학연·지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공채라는 제도가 없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원하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타겟팅하여 알아보는 것이다. 반대로 구직자 입장에서도 본인과 가장 잘 맞는 복수의 회사들을 타겟팅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고 대화를 이어 나간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잘 못 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영어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남들은 자연스럽게 취하는 과정이다. 이를 모르고 지나친다면 많은 기회를 날려버리게 될 것이다.

 

4. 운의 문제

필자가 상단의 Disclaimer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최종 인터뷰까지 합격한 후 TC(Total Compensation) offer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복수로 진행되던 후보자와 먼저 계약이 체결되었다며 프로세스가 종료된 적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최종 인터뷰 초대까지 받고 날짜를 조정하던 중 해당 회사가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기업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 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판매하기 시작하는 것) 진행을 하면서 모든 채용 절차가 멈춰버린 적도 있었다.

결국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고 해도, 타이밍과 운이 나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러니 인터뷰 과정에 실패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는 말길.

원문: SE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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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에 관하여 http://www.ppss.kr/archives/213284 Wed, 04 Mar 2020 09:05:51 +0000 http://3.36.87.144/?p=213284 얼마 전에
출처: Nature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었던 일이다. 그리 큰 규모의 작업은 아니어서 새로 들어온 경력 디자이너 A와 들어온 지 2년 정도 된 주니어 디자이너 B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팀을 꾸려주고, 나는 주기적으로 프로젝트 진행만 점검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하는 일은 아니었고 이들이 디자인을 잘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문제 발견, 콘셉트 도출, 디자인 진행, 의사결정까지 그들의 손에 맡겨볼 심산이었다. 게다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업을 해나가면서 협업에도 좀 능숙해지기를 원했다. 내심 새로 들어온 A가 B를 데리고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랬다.

A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경력직이어서 그런지 책임감 있게 일을 진행할 줄 알았다. 작업의 결과물도 좋았고, 무엇보다 일을 적극적으로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A가 B랑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나에게 이따금씩 하소연했다. 이유인즉슨, B의 프로젝트 기여도가 너무 낮고, 반면에 회의를 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는 사사건건 딴지를 건다는 이유였다.

A의 말만 들어보면 B의 잘못이 너무 명백했지만, 그래도 B의 의견을 좀 들어보기 위해서 따로 1:1 미팅을 갖기로 했다. B도 역시 A를 향해 불만이 많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A가 여러 결정을 하는데 자기 의견은 묻지도 않고 본인 마음대로 해버린다는 것이었다. 몇 번인가 그런 일이 반복된 이후에는 B도 본인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맘에 안 드는 결정들에 딴지를 걸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결정이 맘에 들지 않으니 프로젝트의 기여도가 자연스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의 마지막에는 결국 A와 B가 갈라져서 A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마무리하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결과와는 별개로 협업의 차원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이 일로 인해서 제삼자 입장에서 둘 다 지켜본 나 또한 올바른 협업,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협업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협업에 대한 흔한 오해

출처: Elium

협업이라는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화합할 협(協), 일 업(業)’. 글자 그대로 여러 명, 여러 조직이 함께 화합해서 일한다는 의미다. 다른 종류의 능력과 경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함께 협력해서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협업이고, 단순한 일을 여러 명이서 나누어 조그만 분량으로 쪼개어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도 협업이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A와 B의 협업은 좋지 않게 마무리된 것 같다.

A가 오해한 협업

A는 경력직이다 보니까 전문성이 있었고, 프로젝트를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우리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었지만, 혼자 일을 끌고 나가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다만 일을 진행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B에게 의견을 나누지 않았고, 혼자서 결정한 방향에 대해서 B에게 통보하는 형식을 취했다.

물론 A는 나에게 이런저런 일로 여러 가지 의견을 구했고, 본인이 생각하는 디자인 방향과 그에 따른 결과와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미리 알려왔다. 보고받는 내 입장에서는 편했지만, 그 의견이 A와 B가 함께 고민했던 내용이 아니라 A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A는 본인보다 경험도 적고 스킬 레벨이 적은 B가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A는 B를 단지 일이 많을 때 손을 나눠줄 수 있는 ‘돕는 일꾼’ 정도로 생각했다.

이는 협업에 임하는 올바른 마인드가 아니다. 물론 경험 많은 A가 결정 내리는 방식이 여러 가지 측면으로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한 측면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차단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도 B가 나중에 이야기했던 여러 디자인 아이디어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쓸모 있는 게 있었고, 반면에 A는 그 아이디어에 ‘그거 이 프로젝트 기간 중에 실현 안 되는 거잖아’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B가 오해한 협업

B는 경험이 적고 스킬 레벨이 낮았지만,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 업무뿐 아니라 본인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전략에도 본인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넘치는 열정으로 여기저기 신경 쓰고 미팅을 하고 다니느라, 본인의 주 업무인 디자인 업무를 소홀히 했고, 결과물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초라했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와 양, 그리고 높은 질까지 보여주는 A 덕분에 B의 퍼포먼스는 미미하게 보였다.

모든 일에 참여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 하는 것이 협업이 아니다. 협업이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레버리지(leverage) 하는 것이다. 지렛대 작용의 원리처럼 적은 힘으로 최대한 이용해서 팀 단위에서 함께 성과를 내야 한다. 가령 엔지니어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내가 개발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것처럼, 같은 디자이너라도 B는 A가 가진 전문 영역, 경험을 존중할 줄 알아야 했다.

A가 결정 내리는 프로젝트의 전략이나 방향에 이래라저래라 신경 쓰고 딴지 거느라 시간의 대부분을 허비하기보다는 본인의 디자인 업무를 통해서 B의 역량을 보여줘야 했다.

 

Win-Win 하는 컬래버레이션

출처: Builder Magazine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디자이너, 개발자, PM, 리서처 등 여러 다양한 역할의 사람이 함께 일하게 된다. 위의 사례를 통해서 본,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골을 공유하라 Shared Goal

프로젝트 초반에 프로젝트의 목적과 달성하고자 하는 성공 지표(Success Metrics)를 공유해야 한다. 이는 구성원들이 업무에 임할 때 가장 중요한 업무의 중요도, 긴급성, 투여 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 사이에서 업무를 위한 자원 할당량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팀원 간 필요 이상의 갈등이 생기기 쉽다. 나아가야 할 정확한 방향과 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 장소 제공 Provide a Safe Place

구성원들이 각자 가진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기에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 어느 의견 하나라도 쓰레기통에 쉽게 버려지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직급과 경험 유무에 관계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분위기가 팀 안에서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프로젝트 시작 시에 전체 리더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전문 지식 활용 Leverage Expertise

모든 사람이 의견을 동등하게 낼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의사 결정권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의사 결정 시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만, 몇 가지의 안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있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분야에 어떤 한 사람이 전문성을 지니고 있을 때는 전문가의 의견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의사 결정권자가 모든 의견을 동등하게 놓고 검토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결정에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신중함을 요한다.

원문: SE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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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디바이스에 관한 잡념 http://www.ppss.kr/archives/162808 http://www.ppss.kr/archives/162808#respond Tue, 15 May 2018 05:17:00 +0000 http://3.36.87.144/?p=162808 내 기억이 맞다면, 2003년쯤엔가부터 스마트 디바이스(Smart Device)라는 용어와 개념을 사용했던 것 같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마트 디바이스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개념이 등장해서 ‘미래의 생활을 이렇게 바꿀 것이다’라는 식의 미래 라이프 스타일 관련 동영상이나 논문,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듯한 것도 있었지만 다소 과장되거나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스마트 디바이스는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마스터키 같은 역할이었다. 가령 ‘이런 것들을 과연 어떻게 구현할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미래의 스마트 디바이스로는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우습게 보이는 그림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얼핏 현실화된 게 많다.

무려 2008년에 예측한 미래(현재)의 쇼핑 모습

그로부터 지금이 약 15년 정도가 흘렀는데, 우리는 그 허무맹랑한 일을 할 스마트폰을 대부분 이미 가지고 생활한다. 그렇게 보면 ‘미래의 생활은 스마트 디바이스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라는 한 연구가의 예측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존 고(Amazon Go) 소개 동영상. 위의 2008년 동영상에서 나온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과거에는 ‘스마트폰’이라는 말 대신에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 결합한 전화기라는 뜻의 ‘컨버젼스폰’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했다. 가령 MP3 플레이어와 전화기가 합쳐진 형태, 지금은 당연한 기능으로 여겨지는 카메라가 전화기에 합쳐진 형태 등.

이후 이메일, 인터넷 등의 기능이 추가되면서 지금 같은 스마트폰의 형태가 자리 잡아갔다. 제품과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스마트폰은 ‘여러 가지 기능을 하나로 묶어서 사용자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똑똑한 제품’을 지향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었다.

 

과연…?

이런 (쓰잘데기없는) 것부터 상세히 가르쳐주는 자동차 매뉴얼

비록 스마트폰만큼 많은 기능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자동차가 구현하는 기능은 굉장히 섬세하며 다양하다. 위에 보이는 설명서의 두께를 보면 알겠지만 스마트폰보다 기능이 적은 자동차도 저만큼 두께의 설명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그 안에 설명서가 없다. 그만큼 사용하기 쉽다는 이야기일까?

학습 곡선(Learning curve) 관점에서 보면 연령대가 젊을수록 스마트폰의 사용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짧아지지만 연령대가 높은 사용자 그룹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스마트한’ 기능을 제대로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익숙한 사용자의 설명이 없이는 특정 기능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스마트폰의 목적이 ‘사용자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똑똑한 제품’이었는데,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조차 배우기 어렵다면 정작 그 똑똑한 제품은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닐까.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스마트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마트한’ 제품들을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어르신 스마트 과거시험’ 같은 것도 열린다(…)

 

사용성도 ‘스마트’해야 한다

최근의 스마트 디바이스는 이러한 ‘스마트하지 못한’ 부분에서 조금씩 탈피하기 시작했고, 그 방향으로 전통적인 제품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많이 보인다. 한 예로 위의 아마존 대쉬(Amazon Dash Button)는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일상용품을 단지 버튼 한번 누르는 것으로 주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걸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과연 편리한가, 이 디자인이 과연 좋은 가에 대한 논의는 넘어가자. 어떻게 이런 기능이 구현되는지 기술에 관한 것들은 알 필요 없이 사용자는 그저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세탁 세제가 모자란 경우 위에 부착해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세제가 배달된다.

다른 예로 구글 홈(Google Home)이나 아마존 에코(Amazon Echo)는 복잡한 인터페이스 없이 오로지 사용자와 대화하면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들려주거나 보여준다.

지금의 제품도 초창기 버전에 비하면 많은 기능을 제공해주는데 앞으로 머신러닝 및 인공지능 기술과 더욱 결합되고 사용자가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디자인 분야가 더 깊숙이 참여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제품의 흐름은 앞으로의 스마트 디바이스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국내·외 큰 IT 회사는 이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너도나도 비슷한 제품(때로는 많은 경우에는 필요 없는 혹은 과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집안의 모든 환경을 음성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구글 홈(Google Home)

지금은 많은 브랜드의 첨단 기술을 앞세운 여러 가지 제품이 좋은 사용성을 보여주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불필요한 액션을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과정도 있고, 때로는 자연스러운 멘탈모델(Mental Model)에 어긋나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존재한다.

앞으로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전 방향은 간결한 사용성(Simple-Use)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사용자에게 얼마나 간결하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해 각자의 브랜드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느냐, 그리고 다양한 제품 간의 상호 의존 대화방식(Interdependent communication protocol)이 얼마나 유연한지 여부가 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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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에서 배울 점들 http://www.ppss.kr/archives/129006 http://www.ppss.kr/archives/129006#respond Sun, 14 Jan 2018 07:03:11 +0000 http://3.36.87.144/?p=129006

이제는 무척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대학교 4학년 가을이었을까, 졸업 작품을 슬슬 마무리할 때 즈음에는 며칠을 연속으로 집중해서 작업하느라 밤도 많이 지새웠다. 며칠간의 밤샘 작업 후에 스스로에게 주는 꿀 같은 휴식으로 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TV를 봤었는데, 그게 SBS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영했었던 『세계의 명문 대학』이라는 시리즈였다.

세세한 내용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확하게 기억나는 장면 하나와, 마음에 강하게 도전을 준 꿈 하나가 있었으니- 지구 반대편 세계의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정말 죽도록 공부하는 장면이 있었고,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꼭 한번 그들과 같이 죽도록 공부하면서 경쟁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TV를 보고 나서 나는 휴식을 하기로 했던 마음을 이내 접고 다시 작업실로 향했었다.

그 날 이후 꽤나 시간이 흘러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8년 넘게 다니고서야 다시 미국으로 대학원을 올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의 그 꿈이 다시 떠올라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지나고 보니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체험했던 학교 교육, 그리고 교육과 산업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들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한국에서 내가 겪었던 교육 시스템, 문화와 비교하며 어떤 것이 다르고 좋았었는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었다.

Design & Tech 부분 교육에서 세계적으로 선도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대학원)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많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1. 주입식 교육은 20세기 산업 발달의 근간

주입식 교육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처음 체계화시켰을 때 어느 나라의 어느 시스템을 참고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때의 것이 그대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그 교육방식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주입식 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으며 요즘에는 많은 부분 개선되는 중이지만, 내 생각에는 주입식 교육은 그 시대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지나고 짧은 시간 내에 고도화된 경제 성장을 이룬 과거를 생각해 보면, 효과적인 주입식 교육만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서구의 발달한 산업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풀어내는가가 관건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의 초기 성장 동력이었던 ‘Fast-Follower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그 당시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의 인재상은 ‘일을 효과적으로 빨리 해결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학교는 주입식 교육으로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학생들의 능력을 키워줘야 했을 것이다.

 

2. 변화된 시대에 맞춰 변화되어야 하는 교육

며칠 전 뉴스에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뉴스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들었던 이야기라 ‘역시 우리나라 아이들이 똑똑하네’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래전에 보았던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우승했던 수학 영재들이 거의 대부분 의대를 선택한다‘는 씁쓸한 뉴스 기사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는 영재들이 왜 결국에는 의대로 몰리는 걸까. 왜 세계적으로 걸출한 수학자나 물리학자, 엔지니어가 배출되는 일은 의사가 되는 일보다 드물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유학 온 한국 학생들 대부분의 학기 초반 학업 성취도가 꽤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 몸에 밴 학습 태도가 오히려 외국 학생들과 경쟁하는데 나름대로 무기가 되는 것인데, 보통의 경우 언어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을 ‘성실과 끈기’로 이겨내는 듯하다. 내 경우에도 유학 초반에는 외국 학생들은 10분이면 읽을 Reading Material을 최소 30분은 꼼꼼히 읽어야 할 정도로 시간 투자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몇 번의 학기가 지나가고 여러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난 뒤에 졸업할 때쯤에는 결국 ‘일 잘하는 사람’ 보다는 ‘일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굳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방향성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생각과 방향을 다듬어내는 것. 그리고 의견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얻어내는 시너지 효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은 특정한 프로젝트 몇 개를 잘 끝마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

이는 졸업 후 회사에서도 비슷한데, 주어진 일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핵심적인 일을 만들어내고 잘 조직해서 이끌어내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그런 교육 덕분인지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명한 대기업에 다니다가도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올바른 정답을 빠르게 구하는 데에만 우리나라 교육이 열중하다 보니, 알파고가 개발한 인공지능의 연산 능력과도 경쟁할 수 있는 영재들을 키워내기에 바빴지, 정작 알파고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인재를 키워내는 방법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유학기간 동안에 개인적으로 보고 배우고 느꼈던 부분들 중에 우리나라 교육 문화와 시스템에 부족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짚어볼 생각이다.

 

3. 눈에 보이는 예절보다는 보이지 않는 신뢰

지금은 한국 학교 강의 분위기가 어떤지 몰라도, 한국에서 학교 다녔던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수업 시간에 뭔가 먹다가 혼난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한 번이라도 미국 수업 풍경을 본 적이 있다면 ‘자유로워 보이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수업 중에 커피나 간단한 간식을 먹기도 하고, 의자에 비스듬이 앉아서 다리를 꼬아서 교수에게 질문하거나, 책상 위에 앉아서 수업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처음에는 ‘저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들이 단지 ‘미국인들에게는 무례함으로 느껴지지 않는 문화 차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좀 더 깊은 관계가 설정되어있던 것이더라. 교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본인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그들이 수업 중에 뭔가를 배울 수만 있다면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 같다.

수업 중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수업 중에 예의 없는 일’이 아니라, ‘카페인이 필요할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무언가를 먹는 일도 ‘강의실에서 매너없게 뭐 하는 짓이냐’가 아니라, ‘끼니를 거를 정도로 공부하느라 바빴나보네’라는 기본적인 신뢰가 교수와 학생간에 설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중에 ‘교수님 커피 한잔하고 와도 되나요?’ 는 질문 따위는 전혀 필요 없는 셈이다.

앉은 자세로만 보면 모두가 교수님들

학생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교수는 학생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최대한 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는 덜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교수와 상의를 하게 되면 ‘음… 그건 좀 아닌것 같은데? 이런 방향은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을 텐데, 여기서는 단 한 번도 그런 교수를 본 적이 없었다. 학생이 낸 아이디어에 대해서 교수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학생의 능력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다해봐라, 내가 도울테니’ 라는 적극적인 교수의 지지가 학생들의 잠재 가능성과 능력을 최대한도로 이끌어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신뢰의 관계는 나중에 회사 생활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이어지는데, 예전에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에도 적어둔 것처럼, 본인의 업무 퍼포먼스에만 집중하고 출퇴근 시간 같은 부수적인 것들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도 회사와 조직원, 매니저와 팀원들 간에 깊은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한 번이라도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4. 완성도 높은 작품? 실험적인 도전!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녔을 때에는 한 학기당 3~5개의 수업을 들었고, 각 수업은 2~4개의 프로젝트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팀을 이루어서 장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마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식이었다. 크게 보면 내가 겪었던 한국 대학교 강의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잖게 다른 점들이 보인다.

Design & Tech 쪽을 공부했던 나의 경험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는 주로 교수님이 앞에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그 내용을 보고 듣거나 받아 적는 등의 이른바 ‘진도’를 나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진행 후에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은 미국의 학교와 비슷하다. 프로젝트의 주제가 학생들에게 주어지면 학생들은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발표를 한다. 그런데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 보이게 되어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결과가 된다. 결국 교육이 학생들 작업의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게 된다.

반면에 내가 다녔던 대학원에서는 커다란 테마에 관하여 교수가 화두를 던지거나 큰 컨셉을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여주면, 학생들은 서로의 생각을 아무런 제한 없이 나누고 덧붙이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때로는 토론만 하다가 강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역시 다양한 시각으로 이루어져서 학생과 교수 간의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프로젝트의 주제도 교수가 던져주기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찾아서 교수와 1:1 상의를 하며 본인이 정한다.

당연히 다양한 주제만큼이나 결과물도 천차만별인데, 교수는 작업물의 완성도를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완성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긴 하는데, 결과물의 완성도보다는 아이디어와 생각의 전개의 탄탄함, 그 프로세스의 완성도에 대해서 주로 언급한다.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해서 자유롭다 보니, 프로젝트에 임하는 학생들의 아이디어에는 날개가 달린다.

교실과 교실 사이에 마련된 작업공간

프로젝트가 끝까지 잘 완성해서 마무리되든지, 아니면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끝까지 완성을 못 하고 마무리되든지 교수는 ‘너 이따위로 해서 성적 받을래?’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 부족했지?’, ‘초반 기획 단계에서 알 수 없었던, 실제로 작업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뭐였지?’라고 물어본다. 프로젝트에 대한 꾸지람보다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워나가길 원하는 셈이다.

내가 무척 좋아했던 한 교수님은 실패에 대해서 늘 이렇게 강조하셨다.

“실패는 너가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험이다. 만약 너가 실험으로부터 뭔가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패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없고 배움이 없는 학생은 꾸지람을 듣고 비판을 받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아이디어 실험은 언제나 환영받았다.

 

5. 관심 없는 성적표

위에 적어놓은 소제목이 너무 이상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정말 그랬었다. 학기 중에 아무도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단순한 이유였는데- 성적 시스템이 P/F(Pass or Fail) 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월등히 뛰어나게 잘해도 Pass, 적당히 잘해도 Pass, 좀 못했지만 Mininum Requirement를 충족시키면 Pass를 주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남들과의 경쟁이 무의미해진다.

이렇게 되면 공부를 별로 안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였다. 다른 학생들과 경쟁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끼리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고, 각자 아는 것들과 잘 하는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문화가 생겼다.

그 예로 우리 학과의 경우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수업 이후 밤 9:00부터 한 시간 동안 학생들끼리 Skill Share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가령 어떤 날은 디자이너가 비 디자이너들에게 포토샵을 가르쳐 준다던가, 또 어떤 날은 프로그램에 능한 학생이 초보자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코딩의 팁들을 알려주는 세션이 있었다. 정규 수업시간에 배우지 못했던 디테일한 내용들을 이 시간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밤늦도록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필요에 따라 “혹시 XXXXX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고 메일 리스트에 질문을 올리면, 이전에 경험했던 사람이나 혹은 같은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메일 thread를 만들어 가면서 지식이 축적되기도 한다.

쌓여가는 이메일 Threads

대학원 성적 시스템이 A/B/C/D/F가 아니라 P/F가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학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산업 현장에서도 성적표가 필요 없는 환경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 예로 졸업 즈음에 몇 군데의 IT기업에 입사 지원을 했었는데, 성적표 제출이 의무가 아니었고 졸업 증명서만 첨부하면 되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서류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입사가 확정된 뒤에 신분 확인차 참고 서류로 별도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회사가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할 때 성적표가 당락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6. 모두를 위한 기록

학기 중에 들었던 모든 수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Documentation이었다. 일종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각했던 아이디어, 발견했던 문제점, 읽었던 참고 서적, 여러 가지로 시도했었던 실험 내용들을 가감 없이 개인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2학년 선배들이 Information Session을 열어서 어떻게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고 운영하는지 상세하게 안내해주었다. 특히나 인터넷 관련하여 웹서핑만 할 줄 아는 ‘컴맹’들을 위해서 도메인을 구입하고 서버를 개설하고 홈페이지를 설치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무척이나 상세하게 영어로 어렵게 설명해주었다.

개인 블로그에 남긴 Project development process는 담당 교수들이 해당 프로젝트들을 매주 확인하면서 학생과 1:1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어차피 성적도 의미가 없는 마당에 학생들 모두가 그렇게 블로그에 documentation 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와의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아이디어로 접근했는지 들여다보면서 본인의 생각을 나눠줄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 답을 얻게 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documentation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역으로 본인의 아이디어나 생각의 전개 과정이 탄탄하게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글을 남긴다는 것은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형식과 흐름을 정리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내가 했던 프로젝트 과정들이 오롯이 내 것으로 흡수된다. 디자이너인 내게는 특히 프로젝트 진행 과정의 상세한 기록들이 나중에 포트폴리오 제작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7. 정답을 찾지 않는 토론

블로그를 통한 공유만큼이나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 바로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토론이다. 한국에서는 수업 중에 누군가 질문을 하는 모습도 찾기 어려웠지만, 반대로 이곳에서는 질문하지 않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뭐 저런 것까지 물어보나…’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나중에는 토론에 깊게 빠져들 정도로 토론의 과정은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다.

수업시간 중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토론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많은 가능성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정답이 없이 토론이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정답이 없는 토론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들과 정답과는 멀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더 새로운 아이디어, 더 새로운 문제, 더 새로운 해결책들이 떠오르게 된다.

처음부터 토론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해버리면, 토론 참여자 스스로 정답이 아닐 것 같은 이야기를 재단해버리기 때문에 토론의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진다.

실제로 꽤 진지한 수업 중이다.

한두 시간 격론을 벌이다가 끝내지 못한 채 수업 후에 강의실 뒷편에 서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하면서 생각은 나누어지고 보태져서 힘을 얻게 된다. ‘정답이 뭘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고, 질문자 스스로 그 안에서 정답을 찾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생기게 된다.

 

8. 팀 프로젝트 단위의 수업

한 학기에 보통 4~6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었는데, 대부분 팀 프로젝트로 2~3명씩 팀이 꾸려지곤 했다. 내가 디자이너 역할을 했으므로 다른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 혹은 그 외의 다른 전문 지식을 가진 학생들과 작업을 했었다.

팀원들이 불어나니 많은 경우 초반에는 의사 결정에 시간이 좀 늘어지게 되면서 프로젝트 진행이 더디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탄력이 붙고 프로젝트 결과물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지게 되었다. 내가 좋은 팀 멤버를 만나서 그랬을까? 라고 반문하기에는, 내가 팀으로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들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팀 멤버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처음에는 혼자 작업을 하는 것이 일정 관리나 일의 집중도 면에서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몇 가지 프로젝트는 혼자 진행했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오지만 결국 디자이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히 코딩 부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혼자 진행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결국 못 만들게 된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팀 멤버의 힘을 자연스레 빌리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생각이 맞는 팀 멤버들을 찾게 되었다.

팀 단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졸업 후에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미리 배우게 된다. 비록 결과물의 규모나 완성도 면에서는 회사에서 하는 것들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테스트, 디자인 검증, 프로토타입 제작, 그리고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무척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9. 좋은 팀 플레이어(Good Team Player)가 되기

팀 단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한 명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보다는 함께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이끌어 갈 사람을 더 선호한다. (물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좋은 팀 플레이어라면 어느 곳에서나 스타가 된다)

좋은 팀 플레이어를 찾는 것은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많은 회사들이 인터뷰 시에 ‘다른 팀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개발자와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을 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팀 플레이어를 추려 나간다.

몇 군데의 회사들과 몇 번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학력과 성적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여기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를 보건대 단언컨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요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팀 플레이어의 요건은 무엇일까?

강한 팀이 되려면?

첫 번째로는 앞서 썼던 글처럼 팀 멤버들과 모든 것을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 심지어 사적인 부분도 프로젝트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팀원들 간에 서로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 신뢰는 팀워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주춧돌이 된다. 소위 ‘될 만한’ 프로젝트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찮게 보이는 프로젝트라도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탄탄한 ‘될 만한’ 팀에서는 멋진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팀 안에서 ‘내가 전문가다’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예전에 나까지 포함해서 4명으로 이루어진 팀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 팀 리더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어떤 방향이나 일정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4명 중에 2명은 미국인 학생, 한 명은 중국인 학생, 그리고 한 명은 나였는데, 뭐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팀이 두 명의 미국인에 의해서 마지못해 이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잘 이끌어 간다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는데, 명확한 방향성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의견을 냈고 너네가 반론을 내지 않았으니 이대로 간다’라는 식으로는 프로젝트의 예상 결과물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 프로젝트를 리딩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되는 프로젝트 일정, 필요한 리소스들, Task List를 세분화해서 계획을 세우고 거의 매일 팀원들과 1:1로 연락하면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챙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동양인이 뭔가 이끌어가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에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그들도,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며 무언가 하나둘씩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내게 ‘캡틴’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면서 신뢰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팀 멤버 모두에게 각각 다른 역할을 부여했고 (코딩 담당, 그래픽 디자인 담당, UX 디자인 담당, 제품 전시 디자인 담당), 큰 방향성과 일정을 보여주고 무한 신뢰와 함께 멤버들 스스로에게 맡기니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본인이 팀 안에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기여하는 모습은 다른 팀원들에게도 자극이 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의 팀으로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 관련 팀 워크샵 진행 중 모습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남자가 필자)

마지막으로는 ‘굿 리스너'(Good Listener) 여야 한다. 이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다른 팀 멤버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는데, 팀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상대방의 의견을 아무런 편견 없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이것을 ‘Active Listen'(적극적으로 듣기)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Active Listening’에 관한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Active listening is a communication technique used in counseling, training, and conflict resolution. It requires that the listener fully concentrate, understand, respond and then remember what is being said. This is opposed to reflective listening where the listener repeats back to the speaker what they have just heard to confirm understanding of both parties.

다른 의미로써의 ‘굿 리스너’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팀 멤버들끼리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내가 상대방에게 가르쳐줄 때도 있고, 상대방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적극적이 되기 쉽지만, 남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이 있다.

함께 학교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할 정도의 동료라면, 최소한 본인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회사에서도 내 주위에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면, 신입사원이든 본인이 모시고 있는 상사든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것들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0.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닌 문제 발견 능력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라는 어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디자이너라면.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개념이었는데, 요즘은 좀 다르다. 왜냐하면 위에 적었듯이 이제 문제는 ‘팀’이 함께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에 디자이너에게 특히 더 많이 요구되는 능력은 ‘문제 발견’ 능력이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발견되지 않으면 애초에 해결되지도 않기에, 제대로 된 문제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정의하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에서 공부했을 때에도,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질문했던 것은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발견했니?’, ‘왜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라는 것이었고, 발견한 내용이 대단하게 들리던지 혹은 사소하게 들리든 간에 크게 호응해 주고 다음 단계로 함께 발전시켜주었다.

비단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은 회사에서 일할 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보통 해야 할 일들이 윗사람으로부터 주어지게 되면 그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대부분 프로젝트는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발견해내서 더 좋은 디자인으로, 더 좋은 기능으로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리소스들(자료, 인력 등)을 찾아내는 것도 스스로 찾아내야 할 영역이다.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면 일을 할 것이 없으므로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마치며

짧게나마 미국에서 공부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미국 교육의 장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만약에 더 좋은 점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억이 미치지 못해서 이 글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이 있었다면,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대로 별도로 정리하겠다. 짧은 시리즈를 읽어주심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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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C vs. B2B, 디자인 과정의 차이 http://www.ppss.kr/archives/144255 http://www.ppss.kr/archives/144255#respond Sun, 10 Dec 2017 01:19:39 +0000 http://3.36.87.144/?p=144255

지난 8여 년간 소비재(가전제품)를 만드는 B2C(Business to Consumer) 영역에 있었다면 현재는 2년 가까이 데이터 솔루션을 만드는 B2B(Business to Business) 영역에서 일한다. 요즘은 O2O(Online to Offline)라는 용어까지 나온 마당에 B2C와 B2B는 꽤 전통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을 위해서 개념 정리를 아주 간단하게 하고 넘어가자.

B2C의 영역에는 흔히 ‘회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회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회사는 물건 및 서비스를 만들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파는 것. 간단한 예로 삼성전자, LG, 애플과 같이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나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BMW 같은 회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B2B는 회사가 물건 및 서비스를 만들어서 그것을 또 다른 회사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어떤 회사가 물류 정보를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삼성전자에 판매한다든가, 또 다른 회사가 딜러들이 사용하는 고객관리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만들어서 자동차 회사에 판매하는 것 등이 해당한다. 요즘에는 회사 사업도 다각화되었기에 한 회사가 B2B와 B2C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삼성에서 가전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건 B2C 영역에, 반도체를 만들어 애플에 파는 것은 B2B 영역에 해당한다.

모든 프로젝트의 특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특정한 프로젝트를 구체적인 예로 들어서 설명하기보다는 좀 더 큰 개념으로 설명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IT 테크 회사 기준). 비단 UX 디자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제품 디자인, 비주얼 디자인 등 전반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1. B2C 디자인 과정

애플 스토어에서 제품을 살펴보는 사람들. B2C 회사는 고객과의 접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1. 프로젝트 시작

새로운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시장의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프로젝트 리더(Project Leader, PL)는 시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목표 결과물, 범위, 기간, 인력(디자인, 개발 등)을 선정한다. 디자인의 경우 보통 발상(ideation) 단계부터 참여해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선정된 후에는 그중 몇 가지 키 아이디어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간다. 프로젝트의 중요도 및 규모에 따라 실패의 가능성을 철저히 줄이고자 아이디어 검증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테스트(User Test, UT)가 진행되기도 한다.

1-2. 프로젝트 진행 및 완료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르면 디자이너들도 점점 바빠진다. 아이디어로 선정된 몇 가지 안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내부 리뷰, 외부 UT 등도 병행하면서 점차 디자인을 확정시켜 나간다. 디자인을 확정 짓기 전에 개발팀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개발 시의 문제점을 사전에 발견하려 노력한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발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디자인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빠른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디자인은 회사 내에서도 보통 비밀리에 진행되며 최종적인 디자인이 완성될 때까지 개발팀에서 풀 스펙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 반복적인 ‘디자인 → 테스트 → 수정 → 검증 → 디자인 → (…)’ 같은 프로세스가 지나고 드디어 디자인이 완료되면 보통의 ‘디자인 프로젝트’는 여기서 종료된다. 완성된 디자인은 개발팀으로 이관되어서 정식 제품화 단계 절차를 밟는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씩 걸리는 제품화 단계에서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이후의 단계를 팔로우 업(Follow-up)이라고 일컬으며 디자인 원안이 제대로 제품화될 수 있도록 개발팀 옆에서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다.

1-3. 피드백 및 업데이트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고객이 제품을 만져보고 사용하고 구매하면서 여러 피드백을 온·오프라인으로 남긴다. 그걸 예전 회사에서는 VOC(Voice of Consumer)라고 했다. VOC 중 정말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다음 제품 업데이트에 참고해 디자인한다. 예전에는 1년에 몇 차례씩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기간이 있어서 일정 기간 취합된 VOC를 반영한 변경된 디자인을 시즌별로 출시했는데 요즘 디지털 제품 및 모바일 앱은 그런 시즌이 따로 없이 중요한 VOC를 즉각 제품 업데이트에 반영해 시장에 출시하기도 한다.

1-4. 특징

B2C 사업에서의 디자인은 한마디로 일이 끝이 없다. 초기 디자인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시장에 출시하더라도 시장의 VOC가 제품을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계속해서 진화시켜간다.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본격적인 디자인은 오히려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 시작하는 느낌이다. 때문에 B2C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디자이너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로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게 아니라 그건 그거대로 계속 내 업무 목록에 남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그 위에 더한다.

또 다른 특징은 고객이 왕이라는 점. 개발팀이 예산 및 역량을 문제로 구현 못 했던 기능이더라도 고객이 ‘강력하게’ 원하면 어느 날 이미 구현이 되어 있다(그럼 그동안 왜 안된다고 한 거야?). 그 때문에 디자인 팀에서는 리서치 결과물을 굉장히 중요시 생각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는 논리를 쉽게 거스를 개발팀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디자인 완료 후 시장 반응을 즉각 살펴볼 수가 있다. 버튼 모양을 바꾸거나 제품의 특정 부분의 기능을 추가/삭제하면 고객으로부터 즉각 피드백이 들려온다. 아마도 B2C 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이자 동시에 두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지켜보고 있다(They are always watching your design)….

 

2. B2B 디자인 과정

2-1. 프로젝트 시작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은 우리와 거래하는 회사들의 요구사항이나 내부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B2C 회사처럼 시장에서 들려오는 직접적인 VOC의 형태는 아니고 내부 고객,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등이 이슈화시킨 아이디어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판매했던 제품에 ‘이 기능을 추가시키는 것이 어때?’라고 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식이다. 심지어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아무런 VOC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B2C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제품이 있으면 그 제품의 디자인 및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기도 한다. B2B는 보통 디자인 및 기술 트렌드가 B2C의 그것보다는 보수적이어서, B2C에서 한번 검증받은 것들로 제품을 기획하는 경향이 있다.

2-2. 프로젝트 진행 및 완료

제시된 아이디어 중 몇몇 좋은 제안을 구체화하면서 동시에 개발팀과의 조율도 바빠진다. 디자인 프로젝트의 끝은 ‘디자인의 완성’이 아니라 ‘제품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제품이 완성되고 판매되면 현장에서 바로 오류 없이(희망 사항이지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저 테스트도 이루어지긴 하지만 B2C 디자인의 그것처럼 자세하게, 자주 이루어지진 않는다.

고객의 의견이 중요한 것은 B2C와 같은데 B2C 디자인할 때처럼 요구가 광범위하지는 않다. 아마도 회사에서 사용하는 제품은 한정적이고 전문적인 기능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적인 측면은 조금 덜 고려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하고 탄탄한 디자인이 중요하다.

2-3. 피드백 및 업데이트

디자인이 시작되고 최종 디자인이 완료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과 풀 스펙이 개발팀과 공유되기에 제품화 과정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디자인이 완료된 후 팔로우 업 과정을 거치는 B2C 디자인 과정과는 좀 다르다.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제품이 출시되면 대부분의 경우 즉각적인 피드백을 디자인 팀에서 받을 일은 별로 없다. 많은 경우 개발팀에서 관여하며 제품을 수정/업데이트한다. 디자인 수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무척 드문 케이스이며, 수정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제품에 반영해서 업그레이드하기보다는 다음 버전 출시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표하기도 한다.

2-4. 특징

제품 출시 이후 고객사에서 문제없이 바로 사용해야 하는 제품이기에 B2B 디자인은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개발팀의 제품 구현 능력이 프로젝트 성패의 가장 큰 요인이다. 아직도 1990년대에 제작된 UX 디자인 요소를 가진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면에서는 고객보다 개발팀이 왕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고객의 VOC를 직접 듣지 못하기 때문에 내 디자인이 현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적은 장점도 있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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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들 http://www.ppss.kr/archives/141658 http://www.ppss.kr/archives/141658#respond Thu, 23 Nov 2017 06:57:51 +0000 http://3.36.87.144/?p=141658

3년 전 처음 뉴욕에 갔을 때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부 이외에는 신경 쓸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실리콘밸리로 넘어와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고 살 곳을 구하며 이리저리 생활의 틀을 마련하다 보니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라든가, 누군가 미리 말해주었다면 좋았었을 텐데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더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직도 미국 생활에 적응 중이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간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 미국 생활을 계획하는 분들, 특히 실리콘밸리 부근으로 오실 분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려주고 정착하는 데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궁금한데 가장 물어보기 어려운, 돈과 연봉

솔직하게 까놓고 시작하자. 한국을 떠나서 미국 생활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한국보다 높다고 들었던’ 연봉일 것이다. 요즘 들어 인터넷이나 TV를 통해서 실리콘밸리 및 해외에 정착해서 생활하는 한국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긴 쉬워졌지만 어디에도 연봉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는다. 과연 한국에 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도 나아지긴 하는 걸까?

나도 한국에 있을 때 그 점이 궁금하긴 했다. 아무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대기업에 다니면서 월급 받는 생활을 하루아침에 끊고 미국에 오기 전에 스스로 생각했던 것은 ‘한국보다 적은 월급을 받더라도 새로운 삶에 만족하자’는 마음으로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보다 많이 벌긴 하는데 정작 남는 건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연봉(Total Compensation)은 기본급(Base Salary)과 보너스(Bonus)가 있다. 회사에 따라 주식을 주기도 하고 입사 때에만 1회 제공하는 사이닝(Signing) 보너스, 다른 주나 다른 나라에서 이사 올 경우 제공하는 초기 정착비용(Relocation Fee)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기본급과 보너스만 다루기로 한다.

기본급은 보통 매달 15일과 30일, 혹은 1일과 15일로 한 달에 두 번 나오며 1년에 24회 나온다. 한국처럼 별도의 명절 보너스는 없다. 보너스는 일 년에 한 번 나오는데, 오퍼 레터(Offer Letter)에 명시된 액수를 연말이나 연초에 한 번 받게 된다. 연봉은 한국처럼 본인의 은행 계좌로 입금시킬 수도 있고 원한다면 우편을 통해 수표(check) 형태로 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회사가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 공식적으로는 잘 모르는 반면에 여기서는 글래스도어(Glassdoor)에 가보면 익명으로 본인이 받는 연봉을 공개해서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업무 내용과 직급에 따라 얼마를 받는지 모두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공채’라는 제도가 있어서 함께 입사한 신입사원의 경우 같은 연봉을 받지만 여기서는 같은 직급이라도 능력에 따라 혹은 리쿠르터와의 협상(Negotiation)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

회사에 입사할 때에는 글래스도어에 나온 연봉을 기준으로 본인의 연봉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이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참고 사항이 된다. 요즘은 글래스도어에서 ‘Know your market worth’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학력, 경력 및 본인의 업무스킬을 입력하면 시장에서 형성된 본인의 몸값을 대충 알려준다.

단순히 ‘UX 디자이너’로 검색한 평균 연봉. 여러 검색 기준으로 본인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세금을 많이 뗀다던데, 실제로는?

연봉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금이다. 한국에서 월급을 받을 때면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갑근세, 주민세 등을 떼어가는데 공제 비율이 (연봉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S전자 연봉의 기준으로) 15-17%였던 것 같다. 연봉이 6,500만 원이라면 한 달에 받는 월급이 세전 약 540만 원, 세금 공제 이후 받는 실수령액은 약 460만 원이다.

한국 연봉 실수령액 계산표 (2017년)

미국에서도 기본적으로 한국처럼 연봉의 액수에 따라서 세금의 비율도 달라지는데 한국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연방 세금(Federal Tax)과 주 세금(State Tax)이 있다는 것, 세금을 공제할 때에도 가족 구성원에 따라서 비율이 정해진다는 점, 그리고 그 비율이 한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기준으로 연봉이 10만 달러(약 1억 2,000만 원)이면 한 달에 약 8,300달러가 세전 월급이다.

싱글로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연방 세금으로 약 28%, 주 세금으로 약 9.3%, 대략 38-39% 정도를 세금으로 떼어가니 실수령액은 5,000-5,100달러 정도다. 같은 연봉이라도 결혼한 커플일 경우 연방 세금은 25%, 주 세금은 8% 정도이므로 총 약 33% 정도를 세금으로 내니 실수령액은 월 5,560달러 정도로 싱글인 사람보다 수령액이 조금 많아진다. 연봉에 따른 연방 세금의 자세한 구간을 알고 싶으면 여기, 캘리포니아주 세금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면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다.

 

‘월급’은 ‘월세로 나가는 급여’의 줄임말이다

연봉 10만 달러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더라도 월 5,100달러(약 600만 원)를 받을 수 있다고 위에 썼는데 아마 ‘그래도 여전히 한국보다 꽤 많이 버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지출다운 지출은 지금부터. 바로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있다.

실리콘밸리 기준으로 2인 가족이 살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 수준의 1 침실(1 Bedroom) 아파트는 2,300-2,900달러 정도, 3인 가족이 살 수 있는 2 침실(2 Bedroom) 아파트는 2,800-3,800달러 정도를 줘야 한다. 월급의 최소 절반이 월세로 나가는 셈이니 결국 5,100달러를 월급으로 받아도 손에 남는 것은 2,500달러 미만일 확률이 높다.

많이 사용하는 아파트먼트닷컴(apartments.com) 에서의 매물 검색 화면.

그래서 실리콘밸리에는 연봉과 월세에 관한 룰(Rule)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2주일 치 주급이 최소한 월세의 금액 정도는 되어야 기본적으로 먹고살만하다는 것이다. 위에 적었던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 결혼한 가정의 경우 세후 월급이 약 5,500달러니 2주일 치 주급이 2,750달러 정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최대 월세가 2,700달러인 곳에서 살아야 경제적으로 그나마 안정적일 수 있다. 아직 월세 말고도 돈 들어갈 곳이 더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비싼 전기, 물, 인터넷

월세를 납부하고 나면 각종 공과금도 납부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또 만만치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요금 등을 납부해야 한다. 먼저 전기세부터 보면 당연히 본인이 얼마큼 전기를 사용하느냐가 전기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북부 캘리포니아의 경우 1998년부터 전기 공급자가 민영화되면서부터 PG&E(Pacific Gas & Electricity)가 전기와 가스를 공급한다.

PG&E 웹사이트에 아이디를 만들고 본인이 거주지를 등록하고 2-3일 기다리면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전기 및 가스 사용량을 운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주방에 가스 대신 전기를 사용하므로 가스요금을 납부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므로 화재 위험을 미리 방지하려는 목적인 것 같다.

전기세는 기본적으로 사용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본인의 사용 패턴에 따라 어떤 요금제를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사용 시간에 관계없이 요금이 일정한 상품이 있고, 특정 시간에는 비싸지만 특정 시간대엔 저렴한 요금제도 있다. 아무래도 에어컨과 히터를 많이 사용하는 한여름과 한겨울이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경험상 한 달 평균 적게 나올 때는 30-50달러, 많이 나올 때는 80-100달러 정도 나오는 듯하다. 수도세도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워터 서비스(California Water Service) 웹페이지에 아이디와 집 주소를 등록하면 된다. 한 달에 평균 20-40달러 정도 나왔던 것 같다.

인터넷은 서비스 제공 업체가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금액은 대충 비슷하다. 품질이 조금 더 좋은 서비스를 사용하면 요금을 조금 더 내야 하는 건 한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이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는 엑스피니티(Xfinity)와 AT&T를 주로 사용하는데 내 주변은 엑스피니티를 많이 사용한다.

인터넷 요금은 케이블 TV와 묶어서 파는 패키지 상품이 많고 인터넷 단독 상품도 있다. 나는 어차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아내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 TV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에 인터넷 단독 상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새로 가입하면 1년간 프로모션이 적용되고 그나마 가장 저렴한 요금제는 한 달에 40달러 정도의 금액을 내야 한다.

인터넷 속도, TV 채널 사용 여부 등등을 고려해서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이미지는 엑스피니티의 선택상품.

초반 설치 시에 모뎀을 구입하거나 대여해야 하는데 대여하면 약정 기간 내내 매달 요금이 부과되므로 아마존을 통해서 모뎀 하나 구입하는 편이 좋다. 약 20달러의 툴킷(tool-kit)을 구매해서 혼자 설치(Self-Install)하거나 약 50달러의 설치 기사 방문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 속도를 생각하면 안 되고 적당히 쓸만한 속도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VOD를 볼 때 아주 가끔 발생하는 화질 저하나 끊기는 현상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401k

한국에서는 월급을 받을 때 국민연금을 일정 부분 공제하는데 이곳에서도 비슷하다. 401k는 ‘401k’라는 법률에 의거해서 운영되는 연금 플랜인데 일반적으로 그냥 401k라 불린다. 직장인이 가입할 수 있는 은퇴연금의 일종으로 한국의 국민연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일괄적인 비율로 월급에서 떼어가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에서는 직장인이 각자 떼어가는 비율을 원하는 만큼 정할 수 있다. 본인 연봉의 0-25%까지 낼 수 있지만 1년에 최대로 불입할 수 있는 금액은 1만 8,000달러다(2015-2017 기준). 본인의 연봉이 20만 달러고 25%를 401k로 납부하면 5만 달러지만 최대선에 걸려서 1만 8,000달러까지밖에 못 낸다는 이야기다.

401k의 경우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회사에서 돈을 매칭(Matching)해준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달에 500달러씩 401k을 납부하고 회사의 정책이 매칭 50%라면 내가 납부하는 500달러의 50%인 250달러를 회사가 내 401k 계좌로 넣어줘서 매달 총 $750씩 입금되는 것이다. 회사마다 매칭 비율이 다르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니 기본적인 개념은 이렇다고 보면 된다.

회사에서 근로자에게 공짜 돈을 넣어주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401k 기금운용의 안정성을 위해서고 두 번째는 피고용인(근로자)을 안정적으로 고용하기 위해서다. 매칭 금액을 아무런 조건 없이 피고용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근무(보통 2년) 기간이 지나야 100% 온전히 피고용인의 돈이 되게 한다. 그 기간 전에 회사를 그만두면 매칭 금액에서 상당 부분 금액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회사마다 규정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401k를 관리하는 관리자(투자, 증권, 은행 등)를 선정하여 401k를 운영하는데 여러 포트폴리오의 목록을 가입자에게 제시하면 피고용인이 선택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포트폴리오는 꽤 다양해서 주식, 채권 등 본인의 목적과 투자 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한국에서 펀드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401k 포트폴리오 구성. 각자 투자성향에 맞게 펀드 구성 및 투자비율을 다르게 할 수 있다.

401k로 모은 금액은 일반 은행 계좌가 아니라 은퇴연금 계좌이기 때문에 60세가 되기 이전에 찾으면 이익금의 일정 부분 및 원금의 일정 부분에 불이익이 있다. 도중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60세가 되면 묵혀두었던 401k를 찾을 수도 있다(그때의 법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보험, 렌터 보험

한국에서 10년 넘게 운전을 했지만 이곳에서는 초보 운전자로 분류되기에 초반의 보험료는 꽤 비싼 편이다. 한국이랑 비슷하게 보험 상담사를 통해서 가입할 수도 있고 웹사이트를 통해서 가입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많은 서비스가 웹사이트를 통해 제공되기에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게이코(GEICO)라는 곳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용 대비 커버리지가 좋은 보험 상품을 제공한다. 내 경우 올해 기준으로 월 115달러 정도 납부한다. 6개월마다 보험이 갱신되며 그동안 사고 유무에 따라 보험료가 변동된다.

자동차 보험료 내역의 일부분. 한국의 자동차 보험과 기본적으로 내역은 같다고 보면 된다.

렌터 보험(Renters Insurance)이라는 것은 월세 가입자가 사는 집과 본인의 재산에 대해서 드는 보험이다. 천재지변 및 홍수, 화재 등으로 인한 금전적인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도둑이 들어서 재산에 피해가 생겼을 때도 일정 금액만큼 커버해 줄 수 있는 보험이다. 아파트에 살 경우 아파트를 관리하는 대부분의 리싱 오피스(Leasing Office)에서 계약할 때 렌터 보험을 가입하게 하고, 그것을 증명할 사본을 제출하라고 한다.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서 1년 치를 일시불로 납부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신뢰할만한 사람입니까?

이제 관공서, 특히 은행의 시스템과 서비스에 대해서 적어볼까 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금융 관련 서비스는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고 복잡한 부분이기도 한데 문화, 시스템, 언어가 다르니 초반에 적응하는데 스트레스가 꽤 크다.

수년 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에 했던 일이 은행 계좌를 새로 개설하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묵던 호텔 근처의 체이스(Chase)은행에서 친절한 직원 덕분에 계좌를 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사용할 신용카드도 더불어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대뜸 그 직원이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신용점수(credit score)에 대하여 혹시 알고 있습니까?”

신용점수라는 단어도 굉장히 위압적으로 느껴지고, 내가 자세히 알 리가 없으니 당연히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계좌를 열어준 그 직원은 내가 미국에 처음 도착한 것을 알고 물어본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 미국에 온 사람은 이전에 다른 나라에서 갖고 있던 신용 기록과 무관하게 말 그대로 제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신청해봐야 거절만 당하고, 거절당하면 떨어질 것도 없을 신용점수가 더 떨어진다. 직불(Debit)카드를 만드는 것은 신용도와 상관없으니 그걸 만들었다.

보통 신용점수가 700-750이면 굿, 750 이상이면 엑설런트로 인정된다.

신용점수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가자. 간단히 말하면 금융기관이 개인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다. 당연히 점수가 높을수록 ‘당신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증명이 된다. 기관이 개인의 신용점수를 조회하는 것에는 소프트 인쿼리(Soft Inquiry)와 하드 인쿼리(Hard Inquiry)가 있는데, 소프트 인쿼리는 정보 조회가 목적으로 크레딧 리포트에 나타나지 않으며 신용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드 인쿼리는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주택 모기지(Mortgage) 등을 신청한 경우 금융기관이 소비자의 신용 상태를 체크할 때 이뤄진다. 소프트 인쿼리와 달리 신용점수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는데 신용 상한선을 넘어 신청할 때 그렇다. 일부 신용기관은 신용점수를 1-10점 정도(혹은 그 이상) 낮출 수도 있다. 또 하드 인쿼리 기록은 크레딧 리포트 상에 최장 2년 나타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드 인쿼리가 크레딧 리포트에 많아질수록 신용점수에 부정적이다. 특히 단기간에 많은 하드 인쿼리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신용점수가 실생활에 크게 와닿은 적이 별로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종종 사용된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충분한 자금력으로 차량을 구입하고 싶어도 신용점수가 일정 수준 이상 높지 않고 일정 기간 이상 높은 신용점수가 유지된 기록이 없다면 특정 브랜드를 좋은 조건으로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근데 요즘 주변에 새로 정착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만큼 까다로워지지 않다고 한다. 돈만 있다면…). 집을 구매하기 위해 모기지를 신청하는 것은 더욱 까다롭다. 모기지 신청을 했는데 은행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신용점수를 높이려면

신용점수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상세한 부분까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가령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이 대출이자 이율이 낮아질 수 있고, 신용카드 한도금액을 높일 수 있고, 대출금액 한도가 높아지는 등, 한국에서의 그것과 혜택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신용점수는 단기간에 오르지는 않지만 단기간에 떨어지… 아니, 꾸준히 올릴 수 있다. 내 경우 은행에서 체크카드를 발급받아서 꾸준히 사용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가장 만들기 쉬운 연회비 0달러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자주 사용하고 돈을 밀리지 않고 납부하는 신용기록을 남기면서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적은 금액의 신용카드 사용이라도 자주자주 갚아주는 것이다. 신용점수를 쌓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납부했는데 여기서는 사용자 마음대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납부하는 편이다. 그러면 은행 입장에서도 ‘이 녀석은 꾸준히 우리와 신용거래를 하고 있군’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천조국 신용카드의 스케일 큰 혜택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고려할 혜택이 많았다. 카드 포인트 적립, 영화 할인, 레스토랑 할인, 항공 마일리지 적립, 프리미엄 서비스 등 본인의 생활방식에 따라서 혜택을 주는 카드를 선택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를 고를 때 여러 혜택을 비교하는데 그 스케일이 천조국답게 꽤 크다.

카드사마다 혜택의 디테일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카드사 적립 포인트를 생각해보면 0.5-4% 정도 적립된다. 1,000원을 사용하면 최대 40포인트가 쌓이는 것이다. 사용 시에는 가맹점 결제금액의 10-20% 정도 내에서 포인트를 사용할 수도 있고, 기프트 카드나 백화점상품권처럼 다른 구매수단으로 교환도 가능하다. 하지만 교환 시 포인트와 금액 간의 1:1 매칭이 되지 않아서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현대카드 M포인트를 예로 들면 15만 포인트를 신세계백화점 상품권 10만 원권으로 교환하거나 3만 5,000포인트를 대한항공 1,000마일리지로 전환하는 게 가능하다. 포인트 적립 이외에도 영화관 및 레스토랑 기본 할인 등이 좋은 혜택들이다. 다른 카드사 혜택도 이와 비슷하다.

웹사이트에서 신용카드 신청시 카드마다 혜택을 잘 봐야 한다. 특히 사이닝 보너스가 중요하다.

한국에서의 신용카드 혜택이 아기자기하게 많은 영역에서 사용된다면, 이곳에서의 신용카드 혜택은 90% 이상이 포인트 적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회비가 없는 신용카드라도 가맹점에 따라 1-5% 카드사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달러를 사용하면 최대 0.05포인트 적립이 된다. 1포인트당 1달러로 현금 전환이 가능하며 항공사 마일리지와도 1:1 매칭된다(체이스 카드 기준).

호텔 숙박 포인트, 다양한 항공사 마일리지, 쉬운 현금 전환 등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카드 신규 가입 시에 받는 사이닝 보너스다. 은행마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카드 신청 시에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는데 체이스은행의 경우 프리퍼드(Preferred) 카드 신규 가입 후 3개월 안에 4,000달러를 사용하면 5만 점의 카드사 포인트(5만 점 항공 마일리지로 전환 가능)를 받는다. 내 경우 2년간 몇몇 특정 카드 가입 시에 받은 보너스 마일리지만 모아서 미국-한국 왕복 여정을 3번 정도 유용하게 사용했다.

 

연말정산은 알아서, 잘못하면 책임도 알아서…

한국에서 회사 다녔을 땐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웹사이트에 접속 후 클릭 몇 번 하면 필요한 서류들이 출력되고, 몇 장의 서류에 서명한 뒤 회사에 제출했다. 그마저도 바쁜 회사 일정 중에 하라고 하니 짜증 내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제출 시기를 놓치는 동료들도 있었다(한국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늘 2차, 3차의 제출 시기가 있다). 별생각 없이 제출하긴 했지만 딱히 아주 편리하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그냥 일반적이고 당연한 공공기관의 웹서비스잖아? 다만 웹사이트의 UX 디자인이 구닥다리라고 혀를 끌끌 찬 적은 있었다.

이곳에서는 회사 차원의 연말정산 서류 취합 같은 것은 없다. 개인이 각자 알아서 연말정산을 준비한다. 회사에서는 ‘당신의 계좌로 들어간 월급이 세전 얼마이고, 세후 얼마이다’라는 W2라는 서류를 보내줄 뿐이다. 연말정산은 터보 텍스(Turbo Tax)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혼자 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회계사를 만나서 진행할 수도 있다.

꽤 세세하게 체크를 해야 할 부분도 있고 미국의 연방 세법과 주 세법 등등을 우리가 모두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초반에는 잔뜩 긴장하지만 사실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하다 보면 또 어찌어찌하게 된다. 다만 그 과정이 꽤 어렵고 번거롭기 때문에 세법에 정통한 회계사를 고용하는 사람도 많다. 몇백 불 정도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 정도는 회계사의 능력으로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에 비하면 미미한 양이다.

연말 정산 후 몇몇 항목이 잘못 기재되거나 허위 기재될 경우 IRS(Internal Revenue Service)에서 회계 감사(audit)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꼼꼼히 작성하고 여러 번 검토해야 한다. 운이 나쁘면 올바르게 작성했는데도 회계감사 케이스에 선정되기도 한다. 대상자를 정하는 알고리즘은 모르겠다. 그럴 경우에는 IRS에서 우편으로 개인에게 왜 선정되었는지 내용을 보내주는데 꼼꼼히 읽어서 필요 없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회계 감사를 대비해서라도 연말 정산 관련 서류들은 최소한 4-5년씩 출력물(hard copy)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IRS에서 오는 메일은 연애편지보다 소중히 다뤄야 한다.

 

DMV에만 가면 한국이 그립다

미국에서 살다가 유독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로 1년에 한 번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우리나라로 치면 운전면허시험장에 갈 때 그렇다. DMV에 면허를 갱신하거나 차량 등록을 갱신하러 가면 기본 평일 중 하루(운 좋으면) 반나절 정도는 걸린다고 보면 된다. 그래선지 회사에도 ‘나 내일 DMV 가야 해’라고 하면 ‘Oh, man… good luck and take care’라며 안쓰러워할 정도로 DMV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악명이 자자하다.

특히 나 같은 외국인이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서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도 4-5가지 필요하고, 면허시험(필기 및 주행)에 통과해서 면허증 받기까지도 1-2개월이 소요된다. 게다가 첫해 발급된 면허는 유효기간이 불과 1년이라 1년 뒤에 이 지옥 같은 DMV에 또 가야 한다. 참고로 필자는 올해 갱신했는데 유효기간이 2년으로 늘었다. 점점 늘어나는 건가?

아침 일찍 8시쯤 가도 이렇게 줄이 길다.

가장 속 터지는 건 일 처리가 정말 느리다는 점. 미국에서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종이 서류를 중심으로 일 처리가 돌아가고 관련 결과도 우편으로 받아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면허 발급을 허가받고 면허증을 받을 때까지 두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임시 면허증이 있었는데 만료될 때까지 정식 면허증이 도착하지 않아서 임시 면허증을 갱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국제 운전 면허증을 10분 만에 발급해주던 강남 운전면허 시험장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DMV에서 정말 한숨만 나올 것이다.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DIY

마지막으로 생활 관련한 이야기다. 앞에서 살인적인 월세와 세금 등을 주로 다루어서 미국 생활의 두려움(?)을 미리 알려줬다면 이제부터는 ‘그럼에도 미국에서 살만한’ 요인들을 다룬다.

앞서 연말 정산을 각자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미국에서 대부분의 일은 DIY(Do It Yourself)이다. 홈디포(Home Depot)이라는 큰 창고형 매장이 미국의 DIY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다. 집의 인테리어, 익스테리어를 꾸미고 공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와 정보들이 총망라된 곳으로 작게는 수도꼭지부터 크게는 지붕 수리를 위한 다양한 소재 및 도구 등 모든 게 구비되어 있다. 단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다.

홈디포 매장 안. 창고형 스타일로 집 내·외부 공사를 위한 모든 재료가 총망라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배송 서비스도 무료(사실 무료라기보다는 제품 가격에 포함된 형태)고 공사하는 것도 개인이 하기보다는 전문 업체를 통해서 시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인건비가 비싸서인지 이런 DIY 영역이 많다. 한국보다 퇴근이 빠르고 주말에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기니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요금 및 전기요금을 납부하기 위한 계정 세팅, 인터넷 설치, 자동차 번호 신청 및 번호판 교체,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도로주행 시험 시 본인이 직접 시험 볼 때 사용할 자동차를 가져가야 하는 등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처음에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생각 없이 깜빡하고 놓치는 것들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세세하게 번거로울 것 같지만 사실 하다 보면 오히려 내 생활을 내가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물론 여러 진보된 IT 기술 덕분에 맘 편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사람 손을 직접 거치게 하고 그것에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문화는 겪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안 그래도 나름 꼼꼼한 성격이라 자부했는데 더욱 세심하게 챙기게 된 (잔소리도 느는) 것 같다.

 

다양하고 합리적 가격의 오가닉 제품

요즘은 환경오염이 워낙 심해서 먹거리 쇼핑을 할 때 특별히 질 좋은 물건을 찾게 된다. 제품 포장지에 ‘오가닉’이라고 쓰여 있고 관련 공인 인증 마크가 있다면 안심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물건 가격을 보면 또 그리 안심할만하지는 않았던 게 한국에서의 경험이었다. 이곳에서는 천조국의 스케일답게 식재료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저렴하다. 오가닉 제품이라도 한국의 일반적 식재료보다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

 

다양한 오가닉 제품들을 판매하는 홀푸드 마켓.
홀푸드 매장에 진열된 오가닉 채소들.

오가닉 제품을 주로 다루는 마트들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대표적으로 홀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과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가 있다. 이 두 곳의 제품은 코스트코, 세이프웨이 등 다른 마트에 비해서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하고 물건의 질이 워낙 좋아서 손님 중에는 매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내 경우에도 쥬스와 유제품만큼은 꼭 트레이더조에서 구입하고 과일, 커피, 간식 및 샴푸, 로션 등은 홀푸드 마켓에서 구입한다. 한 번 구입했던 제품이 좋아서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좋은 제품이 다양하니 가능하면 늘 새로운 물건을 경험해보는 것을 선호한다.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가장 그리울 곳이 다름 아닌 오가닉 제품들을 파는 마트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어느 회사의 제품이 좋은지 나쁜지 명확하게 정보를 소개해주는 곳이 없어서 개인 블로그나 제품 리뷰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러 경로로 어느 제품이 친환경적인지 아닌지 관련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곳은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라는 비영리 단체인데, 유아용품, 화장품, 욕실용품, 식재료 등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인증받으면 ‘EWG 베리파이드(EWG Verified)’라는 명예로운 레이블이 수여된다. 미국에는 제품에 관해 거짓 정보로 선전 및 홍보를 하다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어느 정도 이상은 신뢰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렇게 제품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생겼으면 한다.

바디로션을 하나 사더라도 꼭 EWG에서 정보를 확인한다.

 

다양하게 특화된, 편리한 쇼핑

미국에 살면서 초반에 가장 그리웠던 서비스 중 하나가 밤늦게 시켜먹는 배달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혹은 더 월등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우버이트(UBER EATS)나 아마존 레스토랑(Amazon Restaurant) 서비스는 집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준다. 단순히 음식 배달뿐 아니라 음식의 진행 상황, 배달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만하면 배달음식은 더 이상 한국만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물론 한국 배달 음식의 퀄리티는 또 다른 넘사벽이긴 하다).

한국의 배달 음식과는 조금 개념이 다른데, 한국은 음식을 판매하는 업자가 배달하는 시스템이라면 이곳은 음식을 판매하는 업자가 우버나 다른 배송 업체를 통해서 음식을 배달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자 측면에서는 배달을 위해 따로 많은 자본금을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자본의 음식점에서도 배달이 가능하다. 우버 같은 배달 업체 입장에서는 손님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택시들을 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다.

 

우버이트 서비스 화면.
아마존 레스토랑 서비스.

음식을 배달시키는 서비스 이외에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시키는 서비스도 도입되었다. 인스타 카트(Instacart) 아마존 프레시(Amazon Fresh)를 통해서 위에 설명한 다양한 오가닉 제품들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아마존은 정말 세상을 지배할 셈인가 보다. ‘온라인 식재료를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것이 뭐 그리 큰 대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빠르고 정확한 배송이 이루어지게 된 것도 아마존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금방 상하기 쉬운 식재료까지 아마존을 통해서 구입할 수 있으니 큰 혁신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이마트(E-mart) 온라인 쇼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스토어에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마트마다 입점한 상품이 대체로 비슷한 편인데 이곳에서는 마트마다 입점해있는 제품들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보니 온라인 쇼핑 시에 다양한 제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은 큰 매력이다.

 

온라인 쇼핑 시 집 주소 근처에 있는 스토어를 선택할 수 있다.
아마존 프레시를 통해 매일 사용하는 식재료 및 용품을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주문 가능하다.
아마존 알렉사를 이용해서 간단한 음성 인식으로도 물건 주문이 가능하다.

이외에 아마존 대쉬라는 간단한 쇼핑 디바이스가 있다. 자주 구매하는 소비재를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재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새 제품이 집으로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온갖 물류를 장악한 아마존이니까 가능한 거만한 서비스인 듯하다. 의외로 주변에 사용하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꽤 편하다고 한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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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진행했던 몇몇 프로젝트가 쇼케이스로 공개되고 제품화되는 걸 보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신없이 지내온 탓에 그 과정을 따로 정리해둔 것은 없었는데 머릿속에서 잊기 전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와 조언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이 글도 누군가에게 도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준비 시기

개인적으로 구직 활동이라는 것은 거의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S사에 입사했을 때는 그즈음에 유학 준비하며 어차피 영어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별도의 준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 구직 활동이라는 것을 처음 할 때 느낀 것은 생각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체적인 전략이 없으면 기회를 손에 쥘 확률이 떨어진다. ‘구직 활동’도 ‘취업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전체 일정을 세웠다. 2016년 5월~7월 사이에는 입사해야 하고, 5월에는 석사 논문(Thesis)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고, 리서치해보니 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석사 예비 졸업생들을 채용시키는 프로그램(New Grads Program)이 1~2월에 있긴 했는데 내 경우 경력직 지원이라 그런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5~7월 사이에 입사하고
  • 4~5월에는 석사 논문 발표 준비에 매진하려면
  • 2~3월 정도쯤에는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아야 했다.
  • 그러기 위해서는 1~2월에는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니
  • 그 전년도인 2014년 11~12월부터 회사 지원을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입사 지원부터 입사해서 일을 시작하는 데까지 대략 5~6개월 걸린다는 이야기다.

 

회사 지원하기

회사에 입사하는 가장 순조로운 방법은 전년도 여름방학 동안에 인턴을 했던 회사로 가는 것이다. 여기는 여름방학이 약 3달 정도 되기에 웬만한 큰 회사들은 인턴십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다. 「인턴 준비 경험기」라는 글에도 적어두었지만 인턴십으로 함께 일했던 인력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졸업 후 입사 계약을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많은 구직자가 소수의 회사에 입사하려고 경쟁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많은 회사가 좋은 인력을 서로 뽑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시스템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미리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든든한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구직자 입장에서도 미리 입사할 곳을 정해두고 다른 더 좋은 곳을 찾아볼 수도 있으니 서로 윈윈인 셈이다.

처음에 ‘유니콘’으로 불리는 두 군데 정도의 유망한 스타트업에 지원했다가 “저희는 H1B(취업비자)를 지원해주지 않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은 다음부터는 H1B를 지원해주는 규모 있는 회사를 찾았다. 외국인 유학생은 가장 먼저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중국인, 인도인 등 많은 유학생 졸업생이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에 많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1) 웹사이트 지원

지원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의 ‘대기업 공채’ 같은 시스템이 없고 필요한 인력들을 상시로 채용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가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 수시로 회사 웹페이지에 접속해서 사람을 뽑는지 알아봐야 한다. 구인 공지가 있으면 웹사이트에 본인의 이력서와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웹사이트를 통해서 지원했다. 이력서를 보내면 바로 연락이 오는 곳도 있지만 1-2달이 걸릴 수도 있다. 프로세스가 느리게 진행되기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입력된 정보를 모두 HR(Human Resource)에서 검토한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서는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2) 내부 추천 방식

가고 싶은 회사에 이미 다니는 사람을 통해서 지원하는 내부 추천(Employee Referral) 방식도 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하고 실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G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통해서 내부 추천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리쿠르터로부터 1~2주 안에 연락이 왔다.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나 아무래도 학생이고 외국인이다 보니 내부 추천을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협소할 수밖에 없다. 사용 가능한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서 내부 추천을 받을 루트를 만들어두면 굉장히 효과적이다.

이런 기회도 놓치지 말자. 출처: 벤처스퀘어

3) 정보 세션 이용

졸업 전이라면 학교에 회사들이 찾아오는 정보 세션(Information Session)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들은 전국적으로 디자인&테크(Design & Tech)가 강한 학교들에 리쿠르터들을 차례로 방문시킴으로써 좋은 인재들을 졸업 전에 미리 채용하려고 한다.

우리 학교에도 학기 중간에 A사, G사, M사, Z사에서 리쿠르터들이 방문했다. 재미있는 건 외국인 유학생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정작 미국인 친구들은 ‘재미없게 그런데 가서 뭐해’라며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다채로운 회사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4) 회사로부터 발견되기

링크드인(Linkedi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회사에 지원할 때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링크드인을 애용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이력서에 적힌 내용의 참/거짓을 판단하기 위한 개인정보의 참고 자료로만 쓰고, 어떤 회사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력서 제출을 링크드인 프로파일 링크로 대체하기도 한다.

왜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가 링크드인 프로파일을 점점 더 신뢰하는 것일까? 한국에 있을 때도 링크드인이라는 사이트를 알았고 해외 취업을 알아보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의 정보를 링크드인 프로파일에 올렸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는 본인의 최신 회사 경력을 웹상에 올려두는 것은 이직하고 싶다는 ‘불순한 의지’의 표현이었기에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서 무척 한정된 정보만 올려두었다. 정작 올라오는 정보들도 헤드헌터들이 나와는 관계없는 구인 정보만 잔뜩 올렸기에 별로 쓸모도 없었다. 그랬기에 링크드인은 직장인들이 개인정보와 이력을 올리고 서로 쪽지 주고받고 하는 ‘직장인의 싸이월드’ 정도로만 생각해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링크드인이 왜 중요한지는 링크드인 콘텐츠의 속성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일단 미국은 ‘신뢰’가 생명이다. 은행 거래, 집 계약, 차량 구입 등 모든 질문은 ‘이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가?’로 시작된다. 은행거래의 경우 금융사가 점수를 매기는 신뢰 점수(Credit score)를 사용하지만 사람을 채용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바로 링크드인을 사용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개인의 학력, 경력 등을 게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나의 정보가 최대한 공개적이어야 나를 전혀 모르는 회사의 리쿠르터들에게도 정보가 노출된다. 따라서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공개적으로 정보를 올려두는데, 디자인 쪽은 업계 바닥이 워낙 좁아서 두세 사람만 건너면 모두 알 수도 있는 ‘잠재적 일촌’ 관계이기에 본인의 학력, 경력에 거짓말할 수 없다.

잘 정리된 링크드인 프로파일은 ‘이 사람은 믿을만함’을 보증하게 된다. 예전에는 거짓으로 작성된 이력서를 판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링크드인으로 인해서 그런 우려는 없어진 셈이다. 입사가 결정되면 회사에서 별도의 배경 체크 프로세스(Background Check Process)를 진행하는 곳도 있지만 요즘은 링크드인의 영향 때문인지 안 하는 회사들도 많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링크드인 프로파일을 잘 정리해두면 리쿠르터에게 역으로 연락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구직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실리콘밸리의 회사 또한 항상 좋은 인력을 찾아 헤맨다. 링크드인에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리쿠르터 전용 기능이 있다는데 회원 가입도 구직자와 구인자로 나누어 받는 걸 보니 제공하는 기능도 사뭇 다를 것 같다.

리쿠르터가 보내는 쪽지의 내용은 대략 ‘너 프로필 봤는데, 우리랑 잘 맞는 것 같아! 시간 되면 짧게 대화할 수 있니? 연락 줘’라는 식으로 가볍게 시작된다. 작은 스타트업부터 학교, 큰 대기업까지 아직 꽤 많은 기회가 디자이너들을 기다린다. 링크드인 프로필만 잘 정리해 두어도 이런 기회를 자주 접할 수 있으니 꼭 한 번은 깔끔하게 정리해봐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전화 인터뷰

대개 첫 번째 진행하는 리쿠르터와의 인터뷰 때는 기본적인 정보만 오고 간다. 리쿠르터는 주로 ‘후보자가 사전에 제출한 정보가 정확한가’를 파악하고‘앞으로 채용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설명해준다. 그 과정에서 후보자의 영어 실력도 간접적으로 판단한다. 대부분 이 과정은 그냥 정보 세션의 성향이 강해서 큰 문제 없으면 통과한다.

하지만 리쿠르터가 느끼기에 후보자가 지원할 때 냈던 이력서와 전화상으로 말하는 정보가 상이하다거나 전화 통화하는 동안에도 의사소통이 불편해서 업무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탈락시키기도 한다. 전화 인터뷰 경험이 많이 없는 유학생의 경우 종종 리쿠르터에게 열심히 본인 어필을 하고 포트폴리오 작업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데 비전문적이거나 너무 필사적으로 보여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리쿠르터는 디자인 작업물에 상세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전반적인 역량을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작업물 관련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상세하게 하기보다는 큰 그림 내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 위주로 설명하는 편이 좋다.

보통은 30분 내외로 진행되고,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경우 말미에 다음 단계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전화 인터뷰를 처음 했을 때는 긴장도 많이 하고 통화 품질도 안 좋아서 망치기도 했는데 반복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어렵지 않게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경험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원하는 회사 말고 연습 삼아 여러 다른 회사의 인터뷰를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두 번째 화상 인터뷰

첫 번째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면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 단계의 목적은 본인의 역량을 인터뷰어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나중에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므로 그들에게 ‘당신과 같이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회사마다 인터뷰 포맷이 다르지만 그간의 작업 내용 리뷰는 무조건 빠지지 않는다. 보통 후보자의 포트폴리오 웹페이지를 각자 화면에 띄워두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때로는 행아웃(Hangout)이나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서 컨퍼런스콜을 한 뒤 화면 공유 기능을 사용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여기서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종종 의욕이 앞서서 내가 얼마나 좋은 작업을 했으며 얼마나 훌륭한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지만 인터뷰어들은 후보자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랑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아보려 한다. 인터뷰어와 그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을 분명하게 보이고 ‘내가 당신이 찾는 그 인재입니다’라고 설득하려면 입사하고자 하는 포지션에서 원하는 능력, 프로세스, 경험에 대한 설명을 그들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보통 동일 레벨의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먼저 하고 나중에 매니저급이랑 진행한다. 앞선 인터뷰에서는 디자인 능력 및 팀워크 능력처럼 코워커(co-worker)의 자질을 주로 판단하고 매니저와의 인터뷰 때는 부하직원으로서의 역량, 협업 태도, 리더십, 성장 가능성을 판단한다. 보통은 1명당 45분씩 2회를 연이어 하고(중간에 휴식 15분) 인터뷰 결과는 2-3일 후 처음에 연락했던 리쿠르터로부터 이메일로 받게 된다.

 

디자인 실기 과제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이제 반은 건너온 셈이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디자인 실기 과제(Design Exercise)가 주어지는 곳도 있다. 실기 과제는 본인이 인터뷰 시에 설명했던 능력, 보여줬던 포트폴리오의 작업물이 본인이 했다는 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증명하는 단계다. 최소한 포트폴리오 작업물의 퀄리티만큼은 나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통 ‘알람시계 재디자인(Re-design alarm clock)’ ‘TV 리모컨 재해석(Re-think TV remote contoller)’처럼 일상 제품을 재해석하는 과제를 준다. 실제 필드의 모든 프로젝트는 기한이 있기에 실기 과제 역시 주어진 시간 내에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일정을 연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xx시간(또는 x일) 동안에 작업하시오’라고 가이드라인을 주긴 하는데 실제로는 정해진 시간을 넘겨 공들여 작업해서 제출한다. 재택 과제라 본인이 사용한 시간을 아무도 모르니 가능한 한 시간을 많이 써서 작업물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디자이너를 뽑을 때는 매체에서 가끔 접하는 ‘구글 채용 면접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 11가지‘와 같은 난해한 질문은 안 물어보는 편이다.

 

온사이트 인터뷰

한국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서류전형 – (삼성의 SSAT 같은) 인적성검사 – 실기시험 및 프레젠테이션 – 임원면접이 대표적인 프로세스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임원면접은 약간 형식적인 면이 짙다. 3-4명의 임원 앞에 후보자가 앉아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데 크게 결격 사유만 없다면 거의 합격이라고 봐도 무방한 단계다.

미국에서의 임원 면접은 온사이트(on-site) 인터뷰라고 부르며 굉장히 치열하다. 하루에 약 3~4차례의 인터뷰를 각각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디자이너 4-5명을 모아놓고 40분 정도 포트폴리오 발표를 진행한다. 이후 디렉터급 디자이너, 함께 일하게 될 개발자, 마케터, 매니저 등등 순차적으로 함께 1:1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들의 평가를 종합해서 일정 점수 이상을 넘어야 리쿠르터를 통해 오퍼 받는다.

이때는 ‘뭔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다 온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단계까지 왔다면 일단 디자인 실력은 검증이 끝난 것이고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회사마다 다르니 이 단계에서 간단한 실기 과제를 해야 하는 곳도 있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아 결과물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워낙 여러 사람과 긴 시간을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하므로 체력 소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체력적으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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