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www.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06 Jan 2023 10:10:04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www.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www.ppss.kr 32 32 미치지 않고 현명한 갭이어 보내기: 5년차 마케터의 ‘프리 프로젝트’를 마치며 http://www.ppss.kr/archives/249251 Wed, 05 Jan 2022 06:11:13 +0000 http://3.36.87.144/?p=249251 2021년도 4월. 모두가 뜯어말리던 이직 없는 퇴사를 한 후, 8개월이 지났다. 이 사람은 8개월 동안 무엇을 탐구하였고, 무엇을 얻게 되었을까. 원하는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불안하고 힘들진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 있게 들고 온다던 12월의 결말은 어떻게 내렸을까. 뭐…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있으니 지금부터 자세하게 써보겠다.

1. 갭이어의 목적 세우기

퇴사를 할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이러했다. 마케팅의 올라운드를 다 할 줄 아는데, 정작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지? 마케팅을 전공하며 마케터로 사회에 발을 들인 후, 5년 반 동안 끊임없이 마케팅 직군 내에서 여러 일을 경험했다. 퍼포먼스 마케팅, 미디어 플래닝, 광고기획,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각 업무를 맡을 때마다 나의 상사와 동료들은 내게 그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분명 업이 다 달랐음에도 말이다. 감사하고 운이 좋게도 맡은 일에 대한 성과가 늘 좋았고, 꽤나 몰입해서 그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돌덩이가 속에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묵직한 문제들이 나를 눌렀는데, 그것은 내가 일을 하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의 방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하고 있는 일에서 굳이 내려 공백기를 갖겠다고 하는 후배나 동생을 본다면 나라도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고민해. 나가지 말고. 고민 없이 늘 만족스럽게 직장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하고 있는 일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나의 길이 보일 것 같았다. 대신 기간을 정해두고.

기간을 정해두는 것은 꼭 필요했다. 그래야 그 안에서 치열하게 답을 찾고자 더 노력할 것이고, 이후에는 찾은 방향대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8개월의 갭이어를 두었다. 봄에 퇴사를 한 후, 한 해가 다 가기 전에는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해놓길 바랐다. 하고 싶은 방향을 정한다면 그에 맞는 사업자를 내고 창업을 하던,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길 바랐다.

어차피 평생 어떤 일을 해나갈 거라면, 8개월의 재정비 시간을 나게 주는 것은 그렇게 큰 투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고 싶은지, 좋아하고 잘하면서 세상이 필요로 해서 돈이 되는 일의 가운데는 무엇인지 (이키가이), 오로지 나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움직여보는 나만의 8개월 프로젝트를 벌인 셈이었다.

  • 기간 : 2021년 동안 무소속으로 지내기 (2021.04 ~ 2021.12)
  • 네이밍 : 앤가은의 프리프로젝트, <잠시 집으로 출근하겠습니다>
  • 목적 : 10년, 20년 후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의 방향성을 찾기
  • 과정 : 다양한 제작 프로젝트와 마케팅 프로젝트, 개인 창작을 통해 정체성 탐구하기
  • 결과 : 12월에 방향성에 맞는 사업을 시작하거나, 방향성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결정하기

 

2. 다양한 경험과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창구 열어두기

갭이어(Gap year)의 사전적 정의는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한 후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그냥 쉬기 위해서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는 ‘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에 대한 경험 없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갑자기 수익이 끊긴다면 누구나 당황스럽고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반은 외주로 내가 잘해왔던 일로 돈을 벌고, 반은 내가 그간 해보고 싶었던 일을 벌이기로 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통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하면 일이 없어 고민인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들어오는 일조차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받았고, 궁금해했던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선명한 기준이 있으니 일이 있으나 없으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어디서나 일을 받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열어두니 오히려 색다른 제안들이 많이 다가와 주었다.

A. 노션페이지 오픈하기

퇴사 직후, 당분간 프리랜서로 지내겠다고 공표함과 동시에 그간 내가 해왔던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을 정리한 노션 페이지를 오픈했다. 프로젝트를 의뢰할 수 있도록 상세한 이력과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지도 명료화해두었고, 프로젝트 TF를 구하는 글도 함께 올려두었다. 8개월의 기간 동안 약 2,300명의 사람들이 해당 페이지에 방문했고 다양한 협업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다.

B. 기존의 프리워커들 인터뷰하기

기존에 프리워커, 개인 사업으로, 개인 창작으로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찾아갔고, 자문했고, 디깅했다. 영상 인터뷰로 기록물을 계속 남기려 했으나, 10년 차 프리랜서 다혜님 인터뷰를 한편 만들어보니 공수가 너무 많이 들어 한편을 끝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끊임없이 리뷰와 기록을 남겼다. (프리 낫 프리 다혜님 인터뷰) 이 기간 동안 나를 만나주고 귀한 시간을 내어준 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만날 때마다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나도 새로운 영감과 사고의 확장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나의 방향성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나도 누군가가 내게 이런 요청을 한다면 기꺼이 내어줄 거다. 누군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C. 개인 창작에 집중하기: 웹드라마 제작 참여 

나는 디지털마케팅의 강점이 있지만, 브랜디드 콘텐츠 기획과 제작에 목마름이 있었고, 기존에 하던 광고 제작에서 더 확장된 일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퇴사 직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영화제작자분과 팀을 이뤄 웹드라마 제작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받았고, 남은 시간에는 개인 창작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했다. 광고회사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영화제작자, 예능작가, 엔터사대표님, 드라마 제작감독님과 함께 팀을 이루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새로움의 연속이었고 이 일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게 만드는 물꼬가 되어 주었다. 감사하게도 초반에 참여했던 이 웹드라마는 12월 16일 티빙에서 웹 영화로 공개 예정이다.

D. 디지털 마케팅의 A to Z 정리하기

디지털 마케팅에 관한 외주는 사실 계속해서 들어왔고, 항상 팀장님들을 대동해서 갔던 미팅 자리에 홀로 서서 클라이언트를 상대하고 컨설팅을 하고 리포트를 주고 인사이트를 나누고 강의를 하며 돌아다녔다. 처음엔 떨리고, 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5-6년간 쌓은 내공과 인사이트는 창창한 실무자들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자료들이었고, 이 일을 하면서 나는 5년간 쌓아온 디지털 마케팅의 A to Z를 정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와서 알게 된 사실은, 직장인보다 프리랜서가 몸값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높은 퀄리티의 업무를 기존 에이전시보다 낮은 가격으로 진행할 수 있고,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직장인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니 이건 완벽한 win-win 구조다. 정말 프리를 위한 에이전트들이 많아져야 하는 시점이다.

E. 프리랜서 모임, ‘월간 프리’ 만들기

회사를 나오자마자 30명 정도의 프리랜서 모임 (월간 프리)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다양한 루트로 일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했다. 그 속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섞이며 벌릴 수 있었고, 이 안에서 만난 분들에게 또 다양한 제안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월마다 하는 정기 프리랜서 모임이었지만, 나와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는 홀로 일하는 사람 같지만, 절대 홀로 일할 수는 없다. 정신적, 물리적, 업무적 연대와 지지가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이 시장이라는 것을 이들과 함께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8개월간 가장 집중하며 재미를 느꼈던 것은 바로 내가 벌이는 프로젝트였다.

 

3. 남이 주는 일 말고 나만의 프로젝트 만들기

갭이어 동안 당신이 실컷 해야 하는 것은 ‘기존의 일’이 아니다.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기존 일을 하러 갭이어를 갖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목적은 다를 수 있지만,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건 정말 회사에서 해도 되는 것이다. 그 일을 너무 사랑해서 홀로 서려고 했다면 나오자마자 그 일을 하는 회사를 차리면 될 일이다. 대신 이건 갭이어가 아니라 창업이다. 창업. 그렇지만 ‘갭이어’는 ‘방향성’을 찾는 실험이기 때문에 기존 일과 다른, 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내가 갭이어 동안 하고 싶던 일은 이러했다.

  1. 나만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으로 퍼스널브랜딩하기
  2. 스몰 브랜드를 가볍게라도 만들어보기
  3. 크리에이터와 창작자로의 주제와 결을 찾기
  4. 오랫동안 하고 싶은 업의 방향성을 찾기
  5. 나의 비전과 미션을 새롭게 정의하고 30대에 집중해야 할 일을 찾는 것

위의 내용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고 얻은 인사이트를 미디어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방대하게 늘어난 시간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나는 기록에 습관을 들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A. 월마다 열리는 건강한 기록 체력을 기르는 프로그램

건강한 기록 체력을 키우는 뉴미디어 기록 클럽을 3달간 운영했다. 평일 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미디어에 자신이 하루에 얻은 영감,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기록하고 나누는 모임이다. 이곳에는 카피라이터, 에디터, 마케터, 제작자, PD, 프리워커,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일한 관심사를 갖고 들어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모임이었다. 정원 20명에 월 1만의 참가비가 있었고, 나는 이 모임을 운영하는 운영장으로 평일 매일 푸시 메시지를 보내는 역할을 하며 다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들은 나의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다. 돈을 벌면서, 누군가의 인사이트를 얻으면서, 클럽을 운영하면서, 나의 창작과 기록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넥스트에 집중하고 있어 중단되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모임을 운영 해나가 보고 싶다. 연대로 살아나는 창작의 열정과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는 모임!

B. 매주 금요일 찾아가는 에세이 뉴스레터 <앤가은 일과집>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집에서 일하고 일과를 보내는 순간들을 담은 나의 짧은 에세이집이다. 매주 한편씩 보내드리는 조건으로 나는 구독료 대신에 독자들에게 답장 한 번을 받기로 했고 10월 한 달간 시범 운영을 하였다. 얼마나 읽어주겠어 했지만, 구독자가 300여 명 가까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벌린 것은 책을 한편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수려하게 잘 쓰는 작가가 아니지만, 꾸준히 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글을 봐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서 나는 인생에서 해결하고 싶던 숙제들이 하나둘 해결되었고, 금요일마다 발송 버튼을 누르기 전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답장이 띠링띠링 도착할 때마다 나를 응원하고 공감해주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독자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아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일을 하고 싶구나. 이렇게 연대하고, 서로 응원해주고, 내 창작물을 봐주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창작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할 때까지만 해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뉴스레터를 보내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을 얻는 순간 나는 굳이 책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언제고 다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인생의 숙제를 풀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일과집>을 구독해준 독자들 덕분이다. 정말로 감사하다. 2022년도에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2022년도에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C. 홈오피스 1.zip 만들기

자신만의 키워드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는 항상 나만의 키워드가 없는 사람 같았는데, 갭이어를 통해 추가로 얻은 키워드들은 ‘홈, 집, 루틴’이라고 볼 수 있다. 홀로 일하기 위해서는 작업실이 필요했고, 홈오피스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택했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콘텐츠에 대한 영감과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집을 꾸미면서, 나의 취향과 새로운 공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집 메인에도 소개가 되면서 관련 브랜드들과 협업과 콜라보, 협찬과 브랜디드 콘텐츠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외주 일, 내 창작과 영상, 방향성을 확립하며 책도 읽고, 사랑스러운 응구와도 많이 놀며 쉴 수 있었다. (오늘의 집에 소개된 나의 홈오피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홈오피스 1.zip
콘텐츠 스튜디오 겸 커뮤니티 브랜드의 일집 1.zip

단순히 홈오피스를 꾸미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는 이 집을 콘텐츠 스튜디오처럼 만들어서 활용하기로 했는데, 처음 이 생각을 갖고 시작한 커뮤니티 브랜드가 바로 1.zip 이었다. 디자이너 친구와 같이 홈워커들을 위해 영감을 주는 아이템들을 소개하고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인물들을 담으려 했지만, 벌리고 있는 일들이 많아 잠정적 홀딩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친구와 여러 메시지를 뽑고 이 홈오피스를 콘텐츠 스튜디오로 탄생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서, 추후 언젠가 다시 추진력을 얻게 된다면 이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재하는 것으로…! 투비 컨티뉴…

D. 필름에세이스트 앤이웨이 (유튜브)

내게 새로운 콘텐츠 제작자의 길을 열어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유튜브였다. 개인 영상을 올리며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자로의 확장을 했고, 실제로 디지털 마케팅에서 광고 기획 제작자로 직무를 옮기기도 했었다. 회사 업무에 집중하면서 유튜브는 멈췄었지만, 퇴사 이후 8개월의 갭이어 동안 프리워커 라이프를 연재해보겠다며 호기롭게 다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현재 약 1,000명 가까운 구독자들이 모였다. 앤이웨이 유튜브 / 차가은 유튜브

하지만… 외주가 우선순위가 되고 나서는 2주에 한 개의 영상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고, 나의 게으름과 꾸준하지 못함에 실망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치만, 나는 유튜버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떤 순간이든 내게 영감을 준 생각, 사람, 물건, 대화들을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이 좋았던 것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글과 좋은 장면을 담아내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러니 업로드 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내가 맡은 브랜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경험한 하루, 소개해주고 싶은 스몰 브랜드를 담는 필름에세이스트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프리 기간 중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필름에세이스트 앤이웨이입니다. 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아닐까…!

E. 나의 5년간의 초년 일기를 엮은 독립출판

아직도 편집 중인 나의 초년일기 독립출판물. 앞만 보며 일을 하다 억지로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나에겐 나의 5-6년의 커리어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느꼈다. 서울로 상경해서 첫 직장을 잡고, 하우스메이트 언니들과 새로운 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떨리던 순간부터, 권태로움을 느끼며 새로운 일을 마구 펼쳐나가던 나의 5년. 업무적 스킬 셋을 정리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것을 위해 노력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노애락이 회사생활에 담겨 있었는지를 정리한 나의 초년일기 에세이을 만들었다. 간략하게 아래 브런치 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브런치북] 초년, 일터로 다시, 집으로

이 다음 5년의 일과 삶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5년마다 책을 내야겠다. 그때만 쓸 수 있는 생각과 감정과 글이 있는 법이니까!

F. 오디오북/오디오 드라마/오디오 콘텐츠 프로젝트

이것은 앤가은 일과집 에세이 레터를 보내면서 역으로 제안받아 생긴 프로젝트이다. 에세이 레터를 받는 독자분들 중에는 출판사 분들도 계셨는데, 내용이 상당히 드라마 대본 같아서 오디오북과 오디오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다가 목소리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심심찮게 성우로 수익을 내는 일도 해볼 수 있었다. 나만의 프로젝트가 ->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재능이 되고 -> 그렇게 계속해서 연결되어 가는 구조를 경험할 수 있어서 아주 감사했던 일들. 자세한 내용은 이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G. 스몰 브랜드와 함께하는 공간 콘텐츠 프로그램:

사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시청자나 청취자를 위한 웹프로그램을 만든다든가, 스몰 브랜드를 돕기 위한 공간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기획은 2019년 작은 카페 브랜딩을 위한 스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는데, 막상 이 일을 크게 벌려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하고 있던 일들이 많아서 크게 일을 벌리는 대신, 나는 작은 브랜드들에 먼저 컨택하여 직접 공간 콘텐츠를 만들어드렸다. 이 브랜드 프로그램 기획은 최근 만난 PD님과 좀 더 디밸롭 시켜보기로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주제 중 하나로 남게 되겠지만, 어쩌면 넥스트 스텝을 밟으며 함께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고 실행할 나의 프로젝트 1순위다.

 

4. 업무와 창작 사색과 쉼의 루틴 정하기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내가 미치지 않고 현명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미쳐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기한을 정해두니 여러 일을 경험하려다 망한 것도 있고, 새롭게 시작한 것도 있고, 그 속에서 얻고 깨달은 것도 참 많았구나 싶다. 그래서 일도 중요하고, 창작도 중요하지만. 이 기간에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적당한 일과 풍부한 휴식을 놓치면 안 된다…!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다행히도 나에게는 응구라는 실외배변견이 있었고. 오전마다 응구와 산책을 나가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시간을 기록했고, 기록을 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시간대와 떨어지는 시간대를 보고 쉬었다. 나는 아침 7시에는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나면, 오전에는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오후 3시쯤 그날 하려던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가까운 동네에 있는 작가님 집에 놀러 간다던가, 성수동으로 투어를 간다던가, 새로 생긴 팝업 스토어 전시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뺀질나게 찾아다녔던 것 같다.

프리의 장점은 낮에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니까. 이 기간엔 꼭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프리랜서들은 밤낮으로 일하기 바쁘다. 명심해야 한다. 낮에 한가롭게 다닐 여유 같은 게 사실 별로 없다. 나는 체험형 인턴 같은 것이었으니 조금은 더 여유가 있었다고 봐도 좋다. 나만의 루틴을 갖고 나서부터는 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일이 없다면 편히 쉬어라. 놀아라. 제발 놀아라. 그 시간도 일을 위해 나를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 자고, 잘 먹고,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끼고 살면서 원 없이 콘텐츠도 다 봤다. 새로 나온 책들도 일부로 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보고, 산책을 하러 갔다가,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행복한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8개월쯤 이러고 나면 몰입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른다. 영영 안 생길 줄 알았는데 정말 생기더라. 그러니 부디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5. 꾸준히 생각을 기록하고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기

이 기간 동안 나는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봤다. 유튜브에 원하는 일 찾는 법,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을 다 찾아서 보고, 자기계발 유튜브 재생 목록이 끝날 때까지 찾아본 것 같다. PDF도 결제해서 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바로 ‘be note’쓰기.

내 책상 옆에는 be note가 있다. 이 이름은 내가 만든 것이지만, 유명 해외 기업 회장이 썼던 방식이라는 영상을 보고 써본 것이다. be note에는 아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아주 디테일하게, 그리고 감정과 감각을 실어서, 상상을 하면서 답을 써두었고 나는 매일 아침 이 문장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해나갈 예정인데, 정말 놀랍게도 여기 쓰여있는는 20%를 이 8개월 동안에 이룰 수 있었다.


<be note 쓰기>

  • 당신은 5년, 10년 뒤에 어떻게 되어 있고 싶은가?
  •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경험해보고 싶은가?
  • 당신이 현재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의 어떤 라이프를 닮고 싶은가?
  • 당신이 늘 유지하고 싶은 몸의 상태, 건강, 감정은 어떤 것들인가?
  • 당신이 얻고 싶은 직무와 직업적 타이틀은 무엇인가?
  • 당신이 이루고 얻고 싶은 부의 크기는 어떻게 되는가? 어떤 것을 소유하고 싶은가?
  • 위에 써둔 것들을 왜 이루고 싶은가? 아주 솔직하게
  • 당신이 위에 써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이 어떻다고 믿어야 하는가?

핵심은 내가 정말 여기 써둔 것들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말 이 문장에 써둔 대로 하나 둘 일과 삶이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원하는 삶의 모양대로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여기 쓰여 있는 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야말로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 아닐까.

나를 탐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be note는 그냥 적어지진 않는다. 다양한 사람과 물건과 공간과 책과 경험을 하면서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원하는 장면들 모습들 사람들의 라이프를 새겨두어야만 강력한 문장이 완성될 수 있다. 처음에 막막할 순 있어도, 하나 둘 수정해서 고쳐나가다 보면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한 장의 노트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다 작성했다면, 이제 이걸 이루기 위해 하나둘 다음 스텝을 밟으면 된다. 이때부터는 명쾌하고 명료하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가는 삶을 살면 된다. 내가 이 기간 동안 건강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써둔 나의 be note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향성을 찾았다면,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6. 지금이 끝이 아니니까. 현재에서 결정하기.

나는 8개월을 나를 돌아보고 탐구하고, 원하던 일을 경험하고 시도하고,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다른 환경에 나를 놓고, 시간을 다르게 써보면서 나만의 방향성을 찾았다.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 나는 꾸준히 글과 장면을 담는 필름에세이스트로 살고 싶다.
  • 내가 만든 창작물로 대중과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다.
  • 브랜드를 돕는 스토리텔러이자 콘텐츠기획자 나아가 브랜드 디렉터가 되고 싶다.
  • 내가 경험한 것들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 5년 뒤에는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서비스/제품/공간/리빙/콘텐츠로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다.
  • 뉴미디어에 꾸준히 기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연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 그래서 자연적으로 부가 따라오는 삶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4월에 회사를 나올 때, 결심했던 것은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하자는 것이었다. 프리랜서로 이미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냐는 주위에 질문에는 애초에 나와 약속한 계획이 이렇다고 설명했다. 나아진 것들은 있지만, 내가 세운 방향대로라면 여기서 자유인의 생활은 멈추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 시점이 맞았다. 내가 세운 방향성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 문장들이 나의 다음 스텝을 명확하게 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걸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내게 필요한지, 어떤 일들 더 쌓고 커리어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래서 이 방향성에 맞는 조직을 골랐고, 감사하게도 내년부터는 함께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나의 5년은 꾸준히 내가 세운 나의 정체성을 가져가면서도 프리워커에서 프로워커로 성장하는 시간들이 될 것 같다. 5년 사이에는 또 어떤 얘기들이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행여 중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해도, 이 선택이 맞지 않는다고 하도 뭐 어떤가. 우리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니 노선을 수정해서 가면 그 뿐이다. 그저 한 걸음씩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으로 가기 위해 오늘도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갭이어는 2021 버전으로 막을 내린다. 언젠가 내가 다시 흔들리고, 나를 찾아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이 시기의 기록물을 들춰보면서 나를 다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갭이어 동안 정리한 초년의 페이지는 이제 덮고, 나는 새로운 여정으로 또 한 걸음씩 가보겠다. 그간 나의 기록물을 따스하게 봐준 이들에게도 모두 감사함을 전한다.

고마웠어. 나의 8개월!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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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싫지만 재택은 하고 싶어 http://www.ppss.kr/archives/246604 Thu, 21 Oct 2021 18:20:11 +0000 http://3.36.87.144/?p=246604 코로나 19가 확산되던 작년 8월, 코로나 거리두기 2.5단계를 발표하겠다는 뉴스가 나오는 화요일 오후였다. 거리두기가 단계가 격상되면 회사 내 필수인원은 제외하고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셈. 회사 분위기는 각자의 직책에 따라 뒤숭숭했다. 매니지먼트는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이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코로나는 진짜 싫은데, 재택근무는 하고 싶다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

단계가 올라가면 내일부터 당장 재택으로 전환되기에 나는 돌덩이 같은 회사 노트북을 어깨에 지고 퇴근을 한다. 그렇지만 괜찮다. 노트북이 무겁더라도 그저 재택만 되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며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면서도 내가 왜 재택을 바라는지 진짜 속마음을 들춰보진 않았다. 점심시간에 동기들과 밀폐된 회의실에서 점심을 먹으며 “지금 코로나가 얼마나 심한데, 재택 당연히 해야지! 코로나 진짜 너무 무섭다고!”라며 침 튀기며 말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저 웃길 뿐.

그래. 재택을 바라는 것이 순전히 코로나 감염의 위험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근데 왜일까. 우리는 왜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싶지 않은 걸까. ‘제발 입사만 시켜주세요’ 하고 왔던 곳인데 말이다.

 

1. 출퇴근의 늪

일을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일을 선택할 때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야만 잘할 수 있는 인간 부류에 속한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일의 재미’를 따지며 사는 것은 꽤나 피곤하고 고된 일이다. 그냥 ‘일은 일이지 뭐’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지금 회사 밖을 나와 이렇게 자유노동 실험을 하진 않았을 거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재택을 바라는 게 ‘일하기 싫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택은 ‘일을 안 할게요’가 아니라 ‘집에서 일할게요’지 않나. 그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출퇴근길에 다 써버리는 에너지’이다.

이런 기사까지 인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영국과 스웨덴에서는 ‘출퇴근 시간과 행복지수-건강-사망률과의 상관관계’를 꾸준히 연구하고 밝혀왔다. 결과는 당신이 예상하는 그대로다. 집과의 거리가 먼 것이 회사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일에 쓸 에너지가 출퇴근 길에 낭비되는 것은 사실이다.

출퇴근길에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설계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사색에 잠기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느낌은 첫 출근 후 2주 만에 다 사라진다. 5년 반을 때로는 야근에, 때로는 집에서까지 아이디어를 내며 광고회사와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나에게는 출퇴근은 전쟁이었다. 특히 지옥철에 탈 때면 옆 사람과 부딪히며 닿는 살의 느낌,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을까 조심하는 것도, 이제는 감염의 위험성까지 곁들여 그야말로 진 빠지는 시간들이다.

이렇게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는 아 이제 좀 쉬어볼까 하면 한숨 나오는 아침이 찾아온다. 직장인들이 충분한 휴식을 누리지 못한다는 증거다. 충분한 리프레시가 된다면 맑고 깨끗하고 상쾌하게 일의 기쁨을 누리며 지낼 수 있을 텐데.

어쩌면 우리는 하루 평균 2시간 반씩 이동에 에너지를 다 써가며 일의 능률을 낮추는 것은 아닐까. 인류에게 출퇴근 시간이 생긴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은 것처럼, 근시일 내에 사람에게도 회사에도 더 좋은 쪽으로 가는 노동의 새로운 형태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2. 업무시간을 조절할 자유

나는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2–3시에는 좀 졸리다. 아니 사실 모두 다 졸린다. 이때는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차라리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며 편안한 의자에 기대 조금 쉬고 싶다. 정—말 잠을 자고 싶다. 수평적이고 참신한 조직문화를 꿈꾸는 회사들은 대부분 쉬는 방, 안마실, 소파 등 편안한 자리를 제공하지만, 그 방에서 편안하게 한 시간씩 잠을 자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치가 조금 보이기 때문.

하지만 나는 일에 집중이 안 될 때, 두 시간씩 점심시간을 갖는다. 졸리면 낮잠도 편히 때린 후 일어나 오후에 집중하여 그날의 일을 마친다. 왜? 난 프리랜서니까. 퇴사한 지 4개월 차가 된 프리랜서는 이렇게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짜릿하다. 여전히 회사 일을 받아서 일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프리랜서나 직장인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마친다면 이렇게 자유도를 주고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업직종에 따라 편차는 있다. 개발자인 내 남편은 프리랜서인 나보다도 근무시간이 자유롭다. 머신러닝 쪽의 개발자라면 알겠지만 코딩을 마치고 나서 기계가 그것을 학습하고 가동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은 강제적으로 붕 뜨기도 하고, 할 일 다 하면 터치하지 않는 문화가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듯싶다.

나는 마케팅과 광고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에 있었으니 팀 단위의 미팅이 많았다. 쉬운 구조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크리에이티브 조직에서도 이런 형태의 업무가 가능하다고 본다. 회사가 조직원을 믿고, 팀원의 능력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3. 빌런이 없어진 환경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은 뭘까. 멋진 데스크, 해상도 높은 커다란 모니터, 쾌적한 회의실, 회사 내 스낵 바, 다 좋지만… 가장 좋은 환경은 존중과 신뢰가 기반이 된 동료와 리더의 존재다. 복지가 좋은 것도 좋지만,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복지였다. 하지만 늘 기억해야 하는 건 인간은 한 명 한 명 참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법도 생각도 성향도 참 달라서 스리슬쩍 하는 농담에도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다. 특히 직급과 권한이 주어진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데, 인지조차 하지 않고 던지는 말들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팀원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으로 누른다거나,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다 큰 성인인 아래 직원에게 혼내듯 화를 낸다거나 하는 일들로 우리는 회사에서 갈등을 겪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를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들로 인해 자질구레한 감정이 섞이고, 불편감이 발생하고, 일해야 할 시간에 저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에너지가 분산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어떤 사람을 빌런이라고 칭한다면, 재택을 할 때는 그 사람과 필요한 업무와 일정 체크만 주고받으면 되니 불필요한 감정 낭비가 일어날 일이 줄어든다.

갈등뿐 아니라 나에게 자주 말을 거는 친한 동료도 때로는 빌런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집중해서 이 일을 끝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저 동료는 지금 편의점에 가서 핫바를 하나 사 먹자고 한다든가 커피를 마시자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특히 리더가 이런 경우라면 따라가서 오후 시간을 다 날린 후 야근하는 사람은 내가 당첨된다.

재택할 때는 이런 일이 없다.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다. 물론 같이 열 띄게 회의할 때가 필요하면 그때는 출근 미팅을 하면 되는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매일 아침과 오후 시간에 항상 얼굴을 보며 해야 하는 일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4. 마크스 없이, 편안한 복장으로

집에서도 회사 출근할 때처럼 차려입어야 일이 잘되고, 능률이 올라간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차려입는 과정이 많이 생략된 채로 재택을 하는 것만큼 효율적이고 편안한 업무 환경은 없을 것이다. 특히, 마스크 착용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아주 크니까.

프리가 된 후 미팅이 많아져 여전히 회사에 나갈 때는 차려입지만, 집에서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순간에 나는 갑갑한 속옷 없이 일을 한다. 기초화장만 하고 머리를 질끈 묶고 오전 시간에 내게 주어진 그 날의 일을 모두 쳐낼 수 있다. 이후에는 운동을 가거나, 프리랜서 모임에 가서 낮 와인을 한잔한다.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서 월급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이전과는 아주 다른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간 노동 생활이다.

프리의 단점도 아주 많지만, 업무 환경만 놓고 봤을 땐 직장 생활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좋다. 다시 회사를 가고 싶어지는 시기가 온다면 꼭 주 1회 이상 재택을 하는 회사에 가고 싶다. 누군가의 일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며 돈을 버는 입장이라면, 프리랜서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도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는 환경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빠르게 이 형태의 환경을 실험하고 피봇팅 하는 조직이 아마도 더 길고, 빠르고, 오래, 잘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든 나의 홈 워커 커뮤니티 메시지

회사를 나와 8개월의 프리 실험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만들었던 홈오피스 아이템은 이 메세지를 담은 텍스트 포스터였다. 재택과 프리를 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홈 워커 커뮤니티에 관련 콘텐츠를 올려두었다.

No mask
No dress-up
No rush hour
No hate villain

이 네 가지가 적용된 환경은 나를 더 짧은 시간 일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회사를 나와 내 일을 만드는 것과 여전히 마케팅 외주,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일을 하면서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만들어주었다.

완벽한 조직과 환경이란 존재하긴 어렵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필요한 조직이라면 반드시 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 실험은 필요해 보인다. 일과 사람, 노동과 환경, 우리의 안전과 편안함을 둘러싸고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모든 워커와 나에게 안녕을 빌며.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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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했지만 출근은 합니다: ‘직장인’에서 ‘집장인’으로 http://www.ppss.kr/archives/241990 Fri, 04 Jun 2021 01:12:53 +0000 http://3.36.87.144/?p=241990

갑자기? 퇴사한다고? 어디로 이직하는데.

지금은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밖에서 프로그램 제작도 하고 디지털 마케팅 일도 하려고.

…. 야, 넌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건데? 커리어도 좀 생각해야지.

무슨 소린가, 나는 커리어를 너무 생각해서 탈이다. 하고 싶은 일은 꼭 덕업일치를 이루겠다는 그 생각. 근데 궁금하다, 당신은 언제까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 텐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온 마케터/제작자의 커리어

2021년 4월 5일부로 나는 처음으로 무소속 인간이 되었다.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늘 자발적으로 강력하게 소속되고 싶은 곳이 존재해왔다. 내가 합격했던 대학교가 그러했고, 생명과학부에서 전과했던 마케팅 학부가 그러하였으며, 5년 반 동안 다닌 두 곳의 회사가 그러했다.

첫 회사로 IT스타트업에 갈 때도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곳에서 신입을 뽑지 않자 나는 8년 차 홍보 담당 채용에 지원했다. 내 지원서를 보면서 어이없었을 텐데 감사하게도 퍼포먼스 마케팅 포지션으로 바꿔서 채용을 해주었다. 1년 반 동안 높은 러닝 커브를 그리던 시기가 지나자 브랜딩 관점의 성장이 필요해졌고, 늘 가고 싶어 했던 동경하는 광고회사로 이직을 했다. 운이 좋았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디지털 미디어 플래닝을 했다. 그러면서도 콘텐츠 기획과 제작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혼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다가 내부 프로젝트 TF로 범위를 넓혔고, 브랜디드콘텐츠팀 제안을 드린 후, 캠페인제작팀으로 팀 이동을 했다. 너무 좋은 회사여서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내 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을 해결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죽박죽처럼 보이는 커리어패스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디지털마케팅에서 다방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해주면 너무 고맙겠다. 실제로 5년 반 동안 나는 퍼포먼스·미디어 플래닝·콘텐츠 기획·제작을 해왔고 팀원들에게도 아쉽지 않은 성과를 냈다. (아쉬웠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그래도 퇴사 직후에 3년간 맡았던 클라이언트에게 불려 가 ‘너랑 일할 때 너무 만족스러워서 그 회사에 일을 더 주게 됐다’는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았으니 이것으로 조금은 믿어주면 좋겠다.

원하는 일을 발견하고 가까워져 가고 있는데 굳이 잘 달리고 있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이유가 있을까?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에 주위 사람들부터 디렉터분들까지 다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이 시국에 굳이? 정확히 뭐할 건데? 대책은 있어? 밖에서 꼭 고생을 해봐야 할까? 무수히 많은 질문에 명확히 대답을 할 순 없었지만, 나를 회사 밖으로 나오게 만든 질문에는 분명 내 안에 선명한 대답이 있었다.

 

10년 뒤 너는 어떻게 일하고 싶어?

이 질문을 받아 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침 7시 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때는 지하철이 뚝섬유원지를 지나고 있었다. 이 구간에는 모두가 자연스레 창밖을 보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는 모니터만 보고 있으니까. 빛이 있을 때 풍경을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지하철이 정거장으로 들어서고 빛이 반전되는 순간, 내 푸석해진 얼굴이 창 안으로 비쳤다. 깜짝이야. 그때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좌> 색감미술관의 사진 <우> 72초tv 오여정 1화의 스틸 컷

10년 뒤 너는 어떻게 일하고 싶어?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놈의 지옥철 없는 삶 좀 살아보고 싶다’였으나, 건설적인 대답으로 정리해보면 이러했다.

  1.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며 살고 싶어
  2. 따로, 또 같이 프로의 동료들끼리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멋지게 해내고 싶어
  3. 일을 하면서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
  4. 일 외의 시간을 잘 확보해서 건강한 일상도 영유하고 싶어
  5. 아 그리고 낮에는 응구(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싶어

나중에  이 개념이 프리에이전트로 일하는 방식인것을 알게 됐다.

10년 뒤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건데?

10년 뒤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해보고 싶은 일은 많았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일을 더 많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1. 브랜드를 위한 웹프로그램/웹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어
  2. 일에 관련된 개인 프로그램을 연재해보고 싶기도 해
  3.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진행도 하고 싶고
  4. 내 얘기가 꾹꾹 담긴 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
  5. 내가 배운 디지털 마케팅으로 더 많은 브랜드를 돕고 싶고
  6.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 브랜드도 만들고 싶지

그럼, 지금 상태에서 쭉 10년을 일하면 저렇게 일할 수 있어? 아니. 아니었다. 회사의 소속 유무의 문제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저 일들을 지금 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분명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멋진 CD가 되거나 CMO가 되는 것을 선망했다. 물론 되면 좋겠다. 근데 지금의 우선순위는 조금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건강한 일상이 유지되면 좋겠고, 내 하루를 내가 선택한 일과 사람과 시간들로 채워서 충만히 보냈으면 좋겠다.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독립적인 내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내 안에서 얘기했다.

그럼 너는 지금 뭘 해야 하지? 여기까지 독자분들이 스스로를 대입해서 읽었다면 아마 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무소속으로 2021년을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프리워커나 인디펜던트워커 자유노동자 비스무리한 거다) 대신 딱 8개월간.

언제까지고 회사에 가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조직으로 구성되어 일하고, 내가 조직을 만들기도 하며,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단 8개월간 내게 실컷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고 싶은 방향의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 환상이 깨지거나 현실이 되거나 할 기회. 그리고, 유치원 이후부터 서른까지 하루도 안 쉬고 무언가를 했으면 8개월 정도는 내 인생에 갭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지내도 내가 해온 5년 반의 커리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땅에 떨어지는 경험은 결코 없다. 이 시기를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더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다고, 더 밀도 있는 일과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결말을 꼭 들고 오고 싶었다.

Photo by elizabeth lies on Unsplash

… 라며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문제는 한 달도 안 되어서 발생했다. 현재는 무소속 신분이 된 지 2개월 차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일은 나의 게으른 생활과 매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감정의 요동침이었다.

타이트한 광고 제안 마감일과 파이널 보고일이 사라진 (전)광고인은 영 침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퇴사 시점에 붙여 쓴 한 달간의 연차가 다 지나갈 무렵에도 나는 도통 일어나지를 못했다. 잠깐 에어비앤비로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추진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들었다가도 금방 내려놨다.

하지만 이대로 8개월을 보낼 순 없었다. 이대로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면 나는 똑같은 갈증을 느낄 거니까. 적어도 같은 시행착오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선명하게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데 내가 보는 건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 뷰뿐이라니.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집으로 출근하기로.

 

퇴사는 했지만, 출근은 합니다: 직장인에서 집장인으로

나는 집장인이 되기로 했다. 무소속인간보다 집장인이 더 어감이 좋지 않은가. 누가 물어보면 약간 얼버무리면서 직장인인 척 할 수도 있다, 푸헤헤.

물론 어감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집에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오전에 출근 시간을 정해두고, 내 눈높이와 키에 맞는 오피스 아이템들을 세팅하고, 내가 계획한 일들을 집에서도 부지런히 꾸리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집장인은 집으로 출근하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만들고 정의한 개념이지만 코시국에 아주 확장성이 높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엔 직장인도 집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집장인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위한 일을 집에서 하는 사람’들이다.

  1. 코로나 시국에 재택근무를 하며 효율적인 업무 진행이 필요한 직장인
  2. 퇴근 이후에도 자신의 무언가(글·sns·사이드프로젝트 등)를 만들고 싶은 직장인
  3. 퇴사 후 자신의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는 프리워커/인디펜던트워커/자유노동자
  4. 육아를 마치고도 자신의 무언가(글·sns·사이드프로젝트 등)를 만들고 싶은 육아인
  5. 홈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그야말로 집에 대한 장인들
  6. 자신만의 홈오피스를 꾸리려는 사람
  7. 집에서도 건강하게 자신을 위한 하루 루틴이 필요한 사람

그러니까 직장인·재택러·프리워커·퇴사러·육아인 모두를 포함하여 집 어느 작은 공간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목소리를 내고, 사이드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집장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연대를 위한 집장인 커뮤니티를 개설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1.ZIP : 집장인 커뮤니티를 만들다

마침 내가 퇴사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집장인인 가족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개발자 남편. 코로나로 인해 판교로 출퇴근하는 게 아니라 매일같이 방구석으로 출근을 한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집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루틴과 장소가 필요했고, 우리는 거실 전체를 홈오피스 공간으로 만들었다.

앤가은의 일집(1.zip)

나는 이곳의 이름을 1.zip(일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일하는 집, 일 모음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나니 내가 집장인이 된 것처럼 누군가도 자신의 일을, 자신만의 루틴을 꾸리는 장치와 영감과 공간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1.zip을 더 확장하여 집장인 커뮤니티 클럽 (인스타그램 @1.zip_)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일을 꾸려나가는 1) 홈워커들의 이야기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하고, 2) 홈오피스를 꾸리기 위한 감도 높은 아이템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3) 건강한 일/일상 루틴을 위해 함께 루틴클럽도 열어보려고 한다. 또한, 퇴사 후 4) 홀로서기를 하는 나의 이야기나 게스트인 홈워커분들을 위한 <집장생활> 프로그램도 연재해 볼 계획이다. 이 모든 이야기와 여정들을 엮어서 연말엔 꼭 5) 일집앨범을 워크북이나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

아직은 인스타 계정만 만들어놓았으나, 앞으로 이곳에서 홈워커들의 다양한 아이템 소개와, 홈오피스 인테리어에 대한 영감과, 자신의 일을 만들어 간 다양한 홈워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은 꼭 팔로우해 두길 바란다.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꼭 찾아오겠다.

 

집으로 출근하는 마케터/제작자가 하는 일

그래서 대체 이 사람이 퇴사하고 집으로 출근하면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루틴을 만든 후 내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자신이 해왔던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정리하고 나니 기존의 스킬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와 하고 싶었던 새로운 일의 기회들이 찾아왔다.

1. 뉴미디어 기록클럽 : 일단기록 운영

일집을 만들면서 나는 건강한 기록 습관의 루틴을 제일 먼저 만들고 싶었다. 매일 불안한 마음과, 희망찬 마음을 오가며 하루의 생각들을 잘 정리해놓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집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루틴클럽은 바로 <뉴미디어 기록클럽 : 일단기록>이었다.

@ann_gaeun 인스타그램의 일단기록 모집글

5/10~6/4일까지, 뉴미디어에 자신의 기록물들을 꾸준히 내놓을 클럽 멤버들을 SNS로 모집했다. 원래는 8명의 소수정예로 운영할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20명의 사람들이 이 클럽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분들의 기록을 모두 읽고, 또 하루의 기록을 달성하기 위한 독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직장인 분들은 퇴근 후에 이 방에 자신의 기록물들을 공유한다. 뭉칠수록 힘은 커지고, 나의 기록을 누군가 봐줄수록 힘이 샘솟는 법이다. 귀찮음과 남 눈치를 내려놓고 자신의 생각들을 여러 뉴미디어에 알렸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누군가와 연대가 일어나고 공감과 지지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그 경험을 함께 하고 싶다.

다음 클럽에 함께하고 싶다면 @ann_gaeun 인스타로 DM하나만 날려주면 된다.

2. 브랜드의 디지털 미디어 컨설팅

미디어랑 제작을 어떻게 같이 하세요?

밖으로 나와 첫 번째 일을 준 클라이언트가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본업이었던 미디어 컨설팅일도 받고 있다. 특히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구글 애즈 운영이나 효율적인 미디어 플래닝 세팅이 필요한 실무진들에게는 내가 4년간 해왔던 미디어플래너 일이 아주 좋은 도움이 되었다.

미디어 플래닝과 콘텐츠 제작을 다 경험했다 보니, 브랜드 유튜브 채널 컨설팅에서 콘텐츠(브랜드 메시지)에 대한 의견과 데이터(타겟설정·잠재고객·예산분배·타게팅·광고운영·최적화)까지 볼 수 있는 2가지의 눈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해온 일들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노션 포트폴리오를 연 이후 큰 브랜드부터 작은 브랜드까지 미디어 컨설팅을 받고자 의뢰를 준다.

3. <집장생활 / 일집앨범> 웹프로그램 기획/제작

퇴사 후 집장인이 되어 홀로서기 실험을 하는 나의 이야기를 유튜브로도 연재해보려고 한다. 타이틀은 동일하게 <앤가은의 집장생활>. 내 브이로그를 마치 거창하게 포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 8개월간 자유노동과 방황 비스무리한 과정을 생생하게 담는다면 고민 많은 5년 차 직장인 누군가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또 이걸 하다 보면 웹 콘텐츠를 만드는데 연습도 되겠지 싶어서. 뭐 어떤가, 나는 눈치 볼 회사도 없다. 뻔뻔한 마음만 챙기면 된다.

<일집앨범> 프로그램의 경우, 1.zip의 인터뷰이로 소개될 사람들의 하루를 관찰예능(인터뷰이로그) 형태로 담아서 연재해 보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을 따면서도 그 사람의 하루 루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일을 꾸려나가는지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다! <독립만세>에 수현이 찬혁이 재재도 너무 재밌지만, 나와 관련된 혹은 일상을 훔쳐보고 싶은 사람들을 좋은 핑계로 촬영할 수 있으니 아. 얼마나 덕업일치의 삶인가.

어서 포맷을 정해서 게스트들 라인업을 해두고 섭외 연락을 돌려야겠다. 신난다. 즐겁다. 많이 봐줄지는 의문이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가서 하루를 잘 담아와 보겠다. 이 두 프로그램이 연재될 유튜브는 이곳이니 궁금하다면 미리 구독해두셔도 좋다..!

4. 웹드라마 제작 프로듀싱 / 마케팅

퇴사하자마자 가장 먼저 받은 일이 웹드라마 제작 프로듀싱 일이었다. 밖에는 곳곳에 프로들이 아주 많다고 느낀 프로젝트이다. 영화 제작사 감독님과, 웹드라마 제작 감독님, 캐스팅 디렉터 분과 초반 주제 선정을 위한 기획회의를 했었고 시놉에 집중하는 시기에 나는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어제 기점으로 뉴미디어 방송콘텐츠 제작 지원에 선정이 되어서 6월부터 열심히 캐스팅과 제작에 착수할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온에어 된다면 너무 감격스러울 것 같다. 이 콘텐츠를 기점으로 제작자로 살 것인지 디지털 마케터에 집중할 것인지를 결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반에 너무 배울 것이 많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감사한 요즘이다.

가이드 예고에 스틸컷으로 활용한 스카이캐슬 장면

5. 마지막으로는 집장인 커뮤니티(1.zip) 기획과 운영

나의 브런치 글을 보고 찾아온 디자이너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를 보며 나는 더 열심히 뉴미디어에 내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각자의 목표가 일치할 때 시너지가 나는 걸 느낀다. 이름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지은이다.

2021년은 각자가 원하는 길로 가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해로 정했다. 서로의 프로젝트를 돕고, 브랜드를 같이 만들면서, 서로에게 도움과 영감을 주는 파트너. 이 친구와 함께 앞에서 얘기한 홈워커 커뮤니티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홈오피스 아이템들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주간 정기적인 회의시간도 정했다. <일집앨범> 프로그램이 포맷화 되면 제작지원도 알아보면서 더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이 모든 게 불과 한 달 사이에 진행된 일이라니… 정말 집으로 출근하길 잘했다. 혹여 이 실험이 끝나 직장인이 되더라도 나는 집으로 잘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내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희망해보며.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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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할 때 늘 배가 고팠던 이유 http://www.ppss.kr/archives/233790 Fri, 22 Jan 2021 03:13:03 +0000 http://3.36.87.144/?p=233790 장보고 요리하고 차려 먹고 치우기

혼자 살면서 새롭게 존경하게 된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도 밥을 정성스레 예쁘게 정갈하게 잘 차려 먹는 사람들. 자취할 때 잘 살기 위한 요소 3번째는 ‘밥해 먹기’로 정했다.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김치수제비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이 한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배고파서 돌아왔어.” 치열하게 살던 서울살이를 내버려 두고 불편한 시골로 온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배가 고팠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울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혜원이가 저렇게 건강한 식재료를 예쁜 그릇에 놓고 먹는 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기도 하고, 오랫동안 알던 친구와 만나 활기를 되찾아가는 것도, 자신을 되찾아가는 그 과정도 어쩐지 너무나 위로가 되고 공감도 됐기에. 나도 배가 고팠고, 사람이 고팠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직한 광고회사에서 제법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자취방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오후 5시가 되자 하나둘 짐을 챙겨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애써 밝게 인사만 하고선 다시 우중충한 얼굴로 느릿느릿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야속하게도 내 반지하 자취방은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5시 반에는 도착해버리곤 했다.

야속하다고? 아침에는 10분 전에 나와도 지각 안 한다며 방방 좋아했으면서.

집이 나를 욕한 대도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이란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구나. 크게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했다.

내가 느릿느릿 걸을 때는 바로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을지로까지 왕복 3시간 출퇴근하는 딱한 남자친구랑 저녁을 먹게 되면 그 친구는 집 가면 녹초가 되어버리니 평일에는 되도록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나마 몇 없는 친구들도 퇴근시간이 7시여서 그들과 저녁을 먹으려면 내가 2시간은 쫄딱 굶으며 기다려야 했다.

굳이 약속을 왜 잡아? 혼자 자취방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편하게 쉬는 게 얼마나 좋은데.라고 나도 처음엔 생각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퇴근길에 마트에 들른 날이면 나는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마트를 2바퀴나 돌았는데 내 카트에 담긴 건 고작 첵스, 요거트, 냉동 피자 같은 것들이었다.

질리고 물리고 지친다…

엄마는 늘 내게 요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얘기하셨다. 사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 능력은 ‘요리’라던 엄마의 얘기를 학창 시절에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때는 그냥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내가 요리를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마트에서 무수히 많은 재료들을 봐도 나는 오늘 저녁에 어떤 요리를 해야 하는지 연결 짓지 못했다.

막상 <만개의 레시피> 같은 앱을 다운받아서 특정 요리를 하려고 하면 사야 하는 재료가 너무 많아서 배달시켜먹는 게 더 저렴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큰 맘먹고 재료들을 사면 손질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먹고, 치우는 이 과정을 하느라 저녁 내내 쉬지를 못했다. 남는 재료들은 냉동고로 넣었지만 한번 들어간 재료들은 결국 음식물쓰레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느릿느릿 퇴근하는 길에 늘 배달 앱을 켰다. 오늘은 삼겹살 덮밥을 먹고 싶어서 주문하기를 눌렀다. 삐빅- ‘최소 주문금액이 부족합니다.’ 하. 그럼 그렇지. 그래 하나 더는 오징어덮밥 추가할게. 됐냐?!

지금은 1인분 배달하는 집이 많아졌지만 3년 전 그때는 한 끼 배달해주는 곳은 정말 없었다. 결국 나는 2끼를 배달시켜서 하나는 다음 날 저녁에 맛없게 먹어야 했다. 이마저도 나한테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버려야 하는 음식들이 너무 많았다. 아으 지겨워. 배달음식 물려. 내가 외부음식을 물려 하는 날이 오다니. 진짜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쉐어하우스에 살 때는 줄곧 주방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서로 많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때 되면 느릿느릿 부엌에서 나와 뚝딱뚝딱 밥을 짓고 때꼰한 얼굴로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혼자 식탁에서 밥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티비를 보고, 누군가는 샤워를 했다.

아이구, 라면 먹으면 어떡해? 그걸로 저녁이 되나?

스윽 지나가다 한 소리 하며 김치를 꺼내 주시던 주인아줌마도 없으니 밥이 맛이 없었다. 입맛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간편식이나 데워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곤 침대에 누웠다. 어쩔 땐 그냥 과자만 먹거나 젤리를 먹고 잠에 들기도 했다.

방바닥만 뜨거운 온기 없는 일상. 청주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 지금이라도 하우스메이트를 구해볼까. 남자친구는 집에 가면 부모님도, 형아도, 강아지도 있는데. 같이 웃으며 티비보고 밥해 먹고 게임하고 놀겠지? 부럽다. 부럽다. 나도 어디든 껴서 저녁 먹고 싶다.

참 나. 독신주의가 좋다면서. 나는 참 모순덩어리구나. 다시 땅으로 꺼져가는 나를 애써 붙잡지도 않으며 하염없이 침대 안으로 들어가는 밤. 그렇게 자주 굶고는 우울함을 삼켜내는 밤. 자취할 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아니 사람이 고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밤 조림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어떤 유튜버가 한 말을 보고 깨달은 게 있다. 우울함을 치료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스스로에게 가장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 있다고 하더라도 수고롭게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예쁜 그릇을 꺼내어 플레이팅하고, 잘 먹고, 잘 치우는 이 과정들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사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머리를 띵 맞는 느낌이었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는데 굳이 그렇게 해 먹어야 해? 하면서 요리했던 프라이팬 그대로 집어먹다가, 귀찮아서 밀키트를 사다 먹다가, 나중에는 배달음식을 먹다가, 그마저도 안 먹거나 때우곤 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내가 먹는 음식을 그렇게 허술하게, 빈약하게, 영양가 없이, 소중하지 않게 보내버렸으면 안 됐던 거다.

그렇기에 그 시간들이 힘들었구나. 지나고 나니 자취할 때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나 혼자 대하는 게 처음이라 서툴렀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저 작은 밤 조림 몇 개 먹으려고 12시간 동안 새벽까지 밤을 휘휘 젓고 쳐다보는 혜원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너무 멋지게만 보인다.

자신이 먹을 것을 위해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멋지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은 남편과 같이 살고 있지만 혼자 먹는 날에도 열심히 해 먹어보려고 한다.

이제는 혼자서 긴긴 시간 우울함에 나를 졸이지 않을 거다. 그럴 바엔 차라리 밤을 졸여보자. 분명 배는 덜 고플 거니까.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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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에도 잘 맞는 MBTI가 있나요? http://www.ppss.kr/archives/232216 Fri, 08 Jan 2021 04:39:21 +0000 http://3.36.87.144/?p=232216 당신은, 혼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 주위에는 모두 자취를 원하거나, 자취를 예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난 자연스레 여럿이 사는 불편함에서 해방된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자취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직하면서 시작된 내 첫 자취 라이프는 엉망진창이었다. 바로 내 성향 때문에. 힘들었던 요소 반지하 공간편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는 바로 ‘라이프스타일 성향’에 관한 이야기이다.

혼자 살 때 좋은 점은 방귀를 빵빵 자유롭게 뀔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도 날 보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여기서 갑자기 쓰러져도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와도 같다. 극단적 예시지만 나는 그토록 원했던 자취생활 단 한 달 만에 혼자 지내는 건 내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집에 나 말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무섭게 짓눌러왔거든.

‘대체 그게 뭐가 힘들어? 그러려고 혼자 사는 건데.’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내가 이상한 성격인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이 시기를 겪으면서 분명 자취에도 맞는 성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버 슛뚜 님과 친구분의 식탁.

서울에 올라온 후 나는 줄 곧 하우스메이트 생활을 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 밥 먹듯 야근을 했기에 집에 많은 시간 붙어있진 못했지만 내가 퇴근하고 돌아가는 집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밤늦게 불 꺼진 집에 조심스레 들어올 때면 다른 방 언니들이 해먹은 저녁 냄새도 났고,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나 화장실에 물소리도 들렸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주말 점심이 되면 느즈막히 일어나 떼꼰한 얼굴로 주섬주섬 각자의 점심을 차려먹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내가 자는 중에도 옆 방에 서로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꽤 큰 안정감을 얻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취를 하게 된 이후로는 내가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나는 늘 불 꺼진 빈 집에 들어와야 했다. 혼자 있는 공간은 항상 조용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주 조용한 미세소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웅-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나 환풍구 소리 같은 거.

처음에는 그 적막을 즐기며 사색도 하고 멍도 때리며 지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누런색 천장을 바라보며 이 조용한 소리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도 점점 내가 꺼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고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지해 공간을 채워버렸다.

집 밖을 나서기 귀찮은 주말이면 종일 집 안에서 혼자 쉬다가도 ‘아 내가 오늘 아무와도 얘기를 안 했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방 밖에서라도 오고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으니, 가족이나 친구, 남자 친구에게 더 자주 전화를 걸게 됐다.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도 전화를 끊으면 또다시 적막. 세상과의 연결이 작은 전자기기 하나로 끊어지는 이상한 느낌.

그러면 나는 다시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떨어지는 감정들을 애써 잡아보곤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게 한심해서 속으로 외치는 말들. ‘야 니가 애냐? 혼자 있는 게 뭐 그렇게 힘들다고… 따흐흑… 따흑…’ 창피하게도 그렇게 많은 날들을 울며불며 지냈다.

근데 그게 사실은 힘들만했다는 거다. 나는 본 투 비 극외향인 ENFP 유형의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매우 매우 중요시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서로 공감해주고, 사람 옆에 있기 좋아하고, 나를 주목해주면 더 좋아하고, 넘어서서 좋은 뜻으로 ‘관종’기가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자취를 한답시고 혼자 있는 집에만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힘들 만도 했을 거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헤이조이스 같은 커뮤니티 모임이나, 트레바리 같은 것도 없던 시기였고.

기분이 쳐진다 싶으면 조금 부지런히 일어나 가까운 카페라도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돈 아낀다고 집에만 뒹굴거리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뤘다. 돌이켜보면 내가 쉐어하우스가 잘 맞았던 이유도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인공간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용공간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자취는 늘 좋다고, 옳다고, 자유롭고 최고라는 예찬만 들어왔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 힘든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정말로 확고했던 독신주의에서 ‘누군가와 함께 사는 라이프’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나처럼 혼자 지내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성향을 한번 점검해보면 좋을 것 같다. 독립을 했다면 가족과 다시 살아도 되고, 친구랑 살아도 되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꾸려도 되고, 반려견과 함께해도 되니까. 아니라면 쉐어하우스 입주라는 후보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고 그중에 내게 더 잘 맞는 삶이 분명 있을 거니까.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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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이 좋으려면 공간이 좋아야 해 http://www.ppss.kr/archives/230722 Wed, 16 Dec 2020 06:25:42 +0000 http://3.36.87.144/?p=230722 ※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1. 첫 직장 합격했는데, 집도 면접을 보래요
  2. 쉐어하우스에서 안 싸우고 살아남기

세 번째 집, 홀로 살아보는 역삼동 반지하

서울살이 1년 반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됐다. 1년 반 동안 나는 내 작고 귀여운 월급을 착실히도 모았다. 하지만, 내가 이직하는 광고회사 소재지는 강남구 논현동. 이 근처에 혼자 살 원룸 전세를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왜 광고회사들은 다 여기 모여있는 거야? 심통이 났지만,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집을 구하는 명확한 조건은 회사까지의 거리와 월세였다. 이전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야근은 밥 먹듯이 할 것이고, 나 같은 올빼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니 무조건 회사 도보 15분 거리 이내의 집을 찾길 원했다. 문제는 내가 내민 월세의 조건이었는데, 웃기게도 난 이 강남구 한복판에서 월세 40만 원대의 집을 원했다.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 전체를 (타의적으로) 40만 원대에 주고 살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차를 타고 회사 근처의 집을 빙글빙글 돌아보니 강남에서 이 조건의 원룸은 옥탑방, 반지하, 아니면 아주아주 시설이 노후화된 집들뿐이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가 집에서 잠만 잘 텐데 위치가 어딘들 상관없겠다 싶어 그중 가장 방 컨디션이 좋은 반지하 원룸을 골랐다.

이것이 바로 자취 대암흑기의 시작이라는 걸 이때는 몰랐다. 계단을 5칸 정도 내려가는 층수에, 9평의 분리형 원룸, 한 층에 3가구가 사는 좀 큰 빌라였다. 회사까지는 뛰면 10분 컷. 이 정도면 진짜 잘 구한 집이라 생각했다.

1년 계약을 쾅쾅 찍으니 한껏 마음이 들떠왔다. 오늘의 집과 집 꾸미기 앱을 들락날락거리며 남들이 한껏 뽐내놓은 인테리어를 내 원룸에 갖다 놓는 상상을 했다. 내가 진짜 혼자 쓰는 내 집이니 내 맘대로 꾸밀 거야! 한껏 행복 회로를 돌리고 집주인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저 101호 세입자입니다. 제가 집 내부 인테리어를 좀 하려고 하는데, 페인트칠이랑 시트지 좀 붙여도 되나요? 깔끔하게 바꿔놓을게요!”

“… 월세 처음 살아봐요? 이 집 나갈 때 처음 상태 그대로 원상복구 안 해놓으면 다 비용으로 배상해야 돼. 누가 남의 집에 인테리어를 해요. 허허. 그냥 지내세요.”

“아… 넵….”

남의 집엔 못질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인테리어는 좀 포기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말했던 아주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이 시작됐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유로움은 이런 거구나. 방을 마구 어지르고, 부엌 설거지가 좀 쌓여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1층이라 노래도 부르고 집에서 춤도 마구 췄다. 하지만, 혼자 살아서 가장 좋았던 건 방구를 아주 시원하게 빵빵 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와. 이것이 진정한 프리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의 유통기한은 내게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원룸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나는 심각하게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혼자 살아보는 인간이라 어색해서 그럴 거야, 라고 생각하기에 이 불편감들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거의 매일 밤 울면서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저녁 약속을 집고, 귀갓길엔 항상 집 주변을 빙빙 돌면서 배회했다.

왜? 그렇게나 혼자 살아보고 싶다던 내가 대체 왜? 뭐가 저렇게나 힘들고 슬펐던 걸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혼자 살 때 인간이 힘들 수 있는 4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힘든 요소들이 모두 뭉쳐있는 최악의 혼삶을 경험했던 거라는 사실도 함께.

 

혼자일수록, 더 좋은 공간에 머물러야 해

4가지 요소 중 첫 번째는 단연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기생충>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거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부잣집에 위장 취업을 한 가족 네 명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세제를 바꿔야 하나, 물빨래를 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기정이가 한 말이다. 반지하 특유의 꿉꿉한 냄새는 이사를 가야만 없어진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대사를 절절히 공감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다가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늘 아파트 아니면 빌라를 살았던 나는 ‘반지하 냄새’가 존재하는 줄 몰랐다. 뭐 다 같은 집 아닌가? 아예 지하실도 아닌데?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반지하는 지상의 냄새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하의 냄새가 반쯤 섞인 오묘하고 쾌쾌한 냄새가 난다. 그 안에 살다 보면 옷, 물건, 심지어 머리카락까지도 그 냄새가 스며든다.

하루는 회사에 늦을까 봐 뛰어가고 있는데, 내 머리카락이 휘날리면서 내 얼굴을 스쳤다.

아, 이게 무슨 냄새지?

분명 어제저녁 뽀송하게 감아뒀던 머리에서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후각에 민감했던 나는 회사에 앉아 겉옷, 티셔츠에 코를 대고 킁킁 맡아봤다. 모두 같은 냄새가 났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게 반지하 냄새구나.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아무리 팍팍 쳐대도 부족했다. 말릴 때 공기에 있는 반지하 냄새가 스며들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반지하의 또 다른 단점은 바로 빛이 반만 들어온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에게 햇빛이 그렇게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 몰랐다.

회사 다녀오면 어차피 저녁 아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라. 일찍 퇴근한 날, 반차를 낸 날, 아픈 날, 주말 낮 시간, 집에서 쉬고 싶은 날. 퇴근해도 해가 밝은 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주거 공간에서 보낸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빛이 반쯤 들어오게 되면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가 없다. 불을 켜놓지 않으면 낮에는 저녁 같고, 저녁에는 밤 같고, 밤에는 더 칠흑 같은 암흑이 된다. 낮 없이 밤이 계속되는 기분이다. 오랜 시간 있다 보면 내 기분과 감정도 점차 암흑으로 떨어지기 쉽다.

게다가 빛이 없으니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수분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해서 축축한 공기와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빨래를 한번 해서 말리려면 제습기는 필수다. 곰팡이와의 싸움에서도 필수적인 무기다. 빛이 잘 안 드는 집에 사신다면, 제습기는 꼭 챙기셔라.

하지만, 내게 있어서 가장 무시무시했던 점은 바로 벌레의 등장이었다. 이름하야 바퀴벌레.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반지하치고 벌레도 안 나와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그 친구들은 지하에 있는 하수구에 서식하기 때문에 언제든 가까운 구멍을 틈타 올라올 수 있다.

화장실 하수구, 부엌의 환풍구, 창문의 틈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나는 불을 끄기 무서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주인 아저씨께 몇 번이고 하소연했지만 그때만 약을 쳐주시는 정도에 그쳤다. 잠들기 직전까지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오래된 건물이라 화장실 전등도 자주 나갔고 변기도 자주 고장 났다. 철물점에 가거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집주인 아저씨께 수리를 요청했다. 그나마 좋은 집주인이었기 때문에 집에 문제가 있을 때 나서서 봐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집주인들도 많이 있다. 혼자 사는 건 자유로운 대신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절절히 느끼게 됐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정말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에 살았던 것 같지만, 사실 꽤나 좋은 컨디션의 방이었다. 9평에 부엌과 방이 분리되어 있고, 넓고, 외관과 내부도 깔끔했다. 엄마가 와서 보고도 오케이 한 집이었으니까. ‘오늘의집’에 나오는 집을 나름 흉내 내 예쁘게 꾸민,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인테리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그 집의 조건에서 오는 결함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견딜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걸,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혼자 자취하게 되는 주위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좀 더 돈을 주고서라도 좋은 집에 살라고 말해준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거기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처럼 잘 알지 못하고 덜컥 계약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꼭 말해주는 편이다.

누군가와 살 때보다 혼자 살 때 공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공간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공간은 내 심리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공간에서 좋은 마음과 영감을 얻기는 어렵다. 이게 바로 4가지 요소에서 공간을 먼저 소개한 이유다.

그러니, 혼자 사신다면 꼭 좋은 집 구하시라. 마음에 안 드는 공간이면 마음에 들게 바꾸시라.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면 반지하는 피하시길. 만약 살 수밖에 없다면, 제습기나 건조기는 어떻게든 장만하시길.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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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어하우스에서 안 싸우고 살아남기 http://www.ppss.kr/archives/230720 Mon, 07 Dec 2020 05:56:35 +0000 http://3.36.87.144/?p=230720 첫 번째 집, 한강뷰 아파트

어렵사리 합격한 한강뷰 아파트 생활이 시작됐다. 한집에 모르는 두 언니와 지내는 것쯤은 나에게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안방에는 면접관 주인장 언니, 큰 방에는 외국물 먹은 언니가 살았다. 주인장 언니는 본인이 쓰는 밥솥과 식기류를 제공해 주었고, 냉장고 칸을 3등분 해서 각자 반찬 넣을 공간도 나눠주었다.

한집에 살지만 철저한 공간 분리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하메의 룰이었다. 대학 때처럼 방순이들과 사이좋게 밤새 수다 떨고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 직장인 하메가 썩 마음에 들었다.

오늘의 집 @he._.ej 님의 주방

게다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첫 직장에서 대부분 야근을 해야 했다. 기본으로 오후 10시 퇴근, 일이 많으면 새벽 1–2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헤엑? 운이 나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고른 회사는 핀테크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예상한 일들이었고 스스로도 많이 성장해야 하는 시기여서 굉장히 즐겁게 일에 몰입하며 지냈다. 이렇게 늘 야근을 하다 보니 한강뷰 아파트에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에 들어갔고 내가 출근할 때쯤에는 집에 언니들이 없었다.

결국 처음 면접 볼 때 내가 말한 대로 나는 정말 조용히 잠만 자고 나왔다. 그렇기에 집순이 언니들과 마주치는 날은 주말밖에 없었다. 반면에 큰 방에 사는 외국물 먹은 언니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집주인 언니랑 약속한 영어도 알려줘야 했기에, 두 언니는 꽤나 긴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언니들 두 명은 입주한 지 두 달 사이에 서너 번 정도 크게 갈등을 겪었다. 싸우게 된 이유는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다.

물을 마시고 나서 물을 채워 놔야죠…!

방을 좀 더 깨끗하게 써주세요.

쓰레기 분리수거를 왜 이렇게 해요?

음식물 처리를 제때 안 하면 집에 냄새가 나잖아요!

에어컨을 끄고 다녀야죠. 왜 켜고 다녀요?

노래 소리 좀 줄여줄래요? 같이 사는 공간이잖아요.

6개월 계약이 끝나자 결국 집주인 언니는 큰방 언니에게 연장하지 말고 방을 빼라고 했다. 그 집이 시세가 아주 낮고, 좋은 집이었기 때문에 금방 다른 사람이 들어오곤 했지만 집주인 언니가 바라는 하메의 조건에 맞는 사람이 없었던 건지 내가 있던 시기에 한번 더 큰방 하메가 바뀌었다. 주인장 언니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하우스메이트를 하면서 꽤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하루는 본인의 생활방식이 많이 깐깐한 편이냐며 주인장 언니가 내게 물어왔다. 음. 나는 아주 잠깐의 고민을 하고서는 언니 집이니 언니 방식에 따르는 게 맞다고 돌려 얘기했다. 물론 욕실 청소할 때 수도꼭지에 물 자국이 남지 않게 닦아주라는 등의 깐깐한 요구사항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집주인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고 무엇보다 30만 원에 이 집에 살려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배운 사회생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휴.

언니도 당시의 나처럼 독신주의였는데, 본인은 10년이나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결혼하면 간섭받고 피곤할 것 같아서 오래 혼자 지내려고 이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방이 남다 보니 결국 이렇게 하우스메이트들이랑 같이 살게 됐다고 했다. 안 쓰는 빈방을 두기에는 아까우니까. 하지만 몇 개월 뒤 큰방 하메를 한번 더 떠나보내며, 언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 독신주의인데 어차피 누군가와 이렇게 맞춰가며 살 거라면 그게 ‘독신’이 맞는 건가? 하. 차라리 10년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남자친구와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다만 그게 결혼이 아닌 ‘동거’라는 사회적 시선들이 있으니 고민스럽다며.

그때 당시에는 언니가 어떤 얘기를 하는 건지 크게 공감하진 못했다. 나도 3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나이도 어렸고, 그냥 이렇게 일하는 게 너무 좋았고, 뭐 언니나 친구들과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36살이 되면 지금의 남자친구와 쭉 연애만 하면서, 이 정도의 경제력을 쌓아놓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부터는 똑똑하게 돈을 모아야 내 한 몸 잘 건사할 집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언니가 큰방 하메와 다투며 생활방식을 맞추는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나에게는 꽤나 이 하우스메이트가 만족스러웠다. 나만의 영역이 존재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함께 사는 안정감과 주거환경의 쾌적함이 좋았다. 하지만 직장이 여의도 63빌딩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한강뷰 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아쉬움으로 짐을 쌀 때 언니가 그랬다.

가은 씨처럼 잘 맞는 하메가 없었는데… 아쉽네요.

문득 든 생각. 글쎄… 내가 잘 맞는 하메였을까. 음. 난 그냥 집에 거의 없는 하메였을 뿐이다…

 

두 번째 집, 물기 없는 집이 될래요

스타트업이었던 핀테크 회사가 63빌딩으로 이사를 갔다는 건 시리즈 B 투자유치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고. 나는 한화 사람처럼 63빌딩 16층에 일하게 됐다. 한강뷰 아파트는 없어졌지만, 여의도 한강뷰를 보며 일할 수 있으니 이것으로 나의 전망 좋은 생활은 잘 유지되었다. 그러나 1년 스타트업에서 쌩 신입으로 일을 했다는 건 내 월급이 아주 작고 귀여웠다는 것이고. 여의도 근처 괜찮은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첫번째 하우스메이트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난 이번에도 아파트 하우스메이트를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방 크기가 좀 더 넓은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에 살게 됐다. 월세 40만 원에 넓은 거실과 부엌과 큰 방을 하나로 쓰면서 치안까지 안전한 아파트에 사는 것은 꽤나 좋은 조건이었다. 그 집도 주인 아주머니가 안방을 쓰고, 남는 두 방을 하메들이 쓰는 구조였다. 첫 번째 집과 다른 점은 아주머니가 하우스메이트 운영을 꽤 오래 해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 놀랍게도… 다른 방에 있는 언니와 집주인 아주머니가 또 싸우기 시작했다…

이 주인 아주머니는 특이하게도 ‘물기’를 병적으로 싫어하셨는데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세수를 하고 나면 반드시 물기를 모두 제거하고 나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수나 샤워를 하면 거울에도 세면대에도 욕조에도 물이 튀지 않는가. 항상 걸려 있는 물수건으로 이 물기들을 최대한 제거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쓸 때도 쾌적하고 곰팡이도 안피기 때문에 꼭 이렇게 해달라시며.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하메를 받으시면서 정한 룰이었기 때문에 그 룰을 최대한 잘 지키며 생활했다. 늘 물기와의 전쟁을 벌여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세입자였다. 가끔은 ‘아니 화장실에 늘 존재하는 물기까지 치우며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팍팍한 서울 생활 중 포근하고 쾌적한 아파트 방 한 칸을 위로 삼아 열심히 물걸레질을 했다.

하지만 건넛방 언니는 이 물기 제거의 룰을 자주 지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도 야근이 많았던 나는 늘 마지막 주자로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둘만 쓰는 화장실엔 늘 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매의 눈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런 점들을 눈여겨보고 계셨던 것 같다. 물기는 내가 마지막으로 치우기 때문에 이래저래 넘어갈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보일러 사건이 터지면서 아주머니와 언니가 아주 크게 싸우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자, 집주인 아주머니는 룰을 하나 추가했는데 바로 난방을 트는 시간이 정해놓자는 것이었다. 하우스메이트를 많이 운영해오시면서 아주머니는 난방비에 굉장히 예민하셨다. 춥게 지내게 하지 않겠지만, 회사에 나가 있는 낮과 초저녁 시간에는 난방이 꺼지도록 잘 조정해달라고 하셨다. 그 보일러는 켤 때 8시간 타이머를 맞추면 알아서 그 시간만 돌아가고 꺼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집에 거의 없는 유령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일러를 내 손으로 켜고 끈 적이 없었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는 누군가 보일러를 틀어놓은 채 모두 잠든 상태였고, 출근할 때는 이미 보일러가 꺼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낮 시간에 집에 돌아올 때마다 보일러가 계속해서 돌아가자 아주머니는 건넛방 언니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반차를 내고 오전에 자는데 부엌에서 아주머니와 언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넌 대체 왜 보일러를 네 멋대로 트는 거야?

아니 제가 안 틀었다니깐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보일러를 트는 사람이 누가 있어? 쟤는 여기서 잠만 자는데!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예요? 아주머니?

그럼 이게 왜 돌아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 보일러는 고장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언니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평소에 물기도 제거 안 하는 걸 보면 보일러도 자기 맘대로 트는 게 분명하다며 씩씩대셨다. 하루는 일찍 퇴근한 나를 보자마자 언니가 방으로 달려와 하소연을 했다. 회사에 있을 때도 그 아주머니가 본인에게 전화를 해서 ‘네가 또 보일러를 틀었다, 물기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등의 잔소리를 해댔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이 집에 살면서 너무 스트레스받는다며 돈 더 주고서라도 혼자 살겠다고 집을 나갔다.

그 시즌에 아주머니는 자기도 하우스메이트 관리하느라 힘들다며 다른 방 하메를 몇 개월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달 아주머니의 손녀가 태어나자 아주머니는 아기를 봐주러 주중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시지를 않으셨다.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쓰레기나 집 청소를 하러 들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그 큰 아파트 전체를 월세 40만 원을 주고 독차지하며 살았다는 거다. 언니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 펴고 잘 잤다.

하메를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드는 이익과 수고로움 중 어떤 게 더 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 서로의 룰을 따라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7개월 정도 지냈을 때, 나는 강남에 있는 광고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고 이 물기 없는 집과도 작별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떠날 때 아주머니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아흉 아쉬워서 어떡해. 난 정말 이런 하메만 있었으면 좋겠어~

음… 그러니까 집주인들은 집에 없는 세입자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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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합격했는데, 집도 면접을 보래요 http://www.ppss.kr/archives/230718 Tue, 01 Dec 2020 02:30:54 +0000 http://3.36.87.144/?p=230718

지방러의 ‘서울 방’ 구하기

20대 중반에 들어서니 내 주위에도 한둘 집에서 독립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먼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던 친구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난 혼자 사는 게 너무 좋아. 자유롭고 편안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난 혼자 지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까지는 가족들이랑 등교 전쟁을 벌이며 학교를 다녔고, 대학에 가서는 한 방에 4명이서 지내는 기숙사에서 방순이들과 복작대며 지냈다. 그래서 저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로망 같은 게 몽실몽실 커졌다. 왜 그 드라마에 나오는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의 까리한 삶 있잖나.

Market B의 원룸 인테리어 이미지. 나도 이렇게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쁘게 자취방을 꾸며놓고 혼자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맘에 드는 소품들로 방을 채우고, 퇴근하자마자 좋아하는 크러쉬의 음악을 틀고,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싹 한 다음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편안히 앉아 먹고는 먹는 삶…

상상만 해도 즐겁고 짜릿했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첫 직장을 잡고 올라오면서 이 상상들은 처참히 깨졌다. 마케팅을 전공한 나는 IT회사 마케팅팀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시작한 계기도 호기롭게 0년 차인 내가 8년 차 PR담당자를 구하는 파트에 지원을 하면서 연이 닿았다. 보통이라면 무시 할 수도 있을 텐데 첫 직장의 매니지먼트는 나에게 맞는 마케팅팀으로 직무를 바꿔서 채용해 주었다.

첫 직장을 정한 기쁨의 순간도 잠시, 서울에 지낼 곳을 알아보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월세방을 알아보니 50만원, 60만원이 기본인데다가 전셋집은 보증금이 몇천은 있어야 했다. 대학 4년 중 마지막 학기 정도의 학자금 빚이 있던 나에게는 수중에 몇백의 보증금도 없었다. 물론 더 저렴한 방들도 있었지만, 그 방들은 반지하 혹은 옥탑방이었다. 처음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을 고르기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자들끼리 사는 ‘하우스메이트’로 눈을 돌렸다.

서울살이를 하는 친척 언니의 조언으로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앱을 알게 됐다. 이 앱은 월세, 전세부터 룸메, 하메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거환경을 팔고 사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다.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온 탓에 공동체 생활에 만랩이 되어있었지만, 방은 혼자 쓰고 싶어서 하메 게시물을 주로 찾아봤다. 하지만 여기에도 치열한 방 경쟁이 있었다. 깔끔한 집인데 방값이 저렴하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첫 직장의 출근 일자는 다가오고 나는 청주에서 온통 방 구하는 글만 찾아 헤맸다. 서울에 집이 없다고 출근을 미루는 천치로 보이긴 싫었다. 30분마다 들어가서 새로고침을 하던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강 뷰 아파트, 같이 살 하메 구해요.

그 글은 다른 글보다도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집은 36평대에 한강이 보이는 신축 아파트였다. 그중 큰방 하나를 하메를 주고 싶다는 글이었다. 게다가 살고 있는 언니가 인테리어 관련 부업을 하고 있어서, 그 집이 담긴 사진은 정말 예뻤다.

내가 앞으로 10년간 일해도 이 아파트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왜 슬픈 예감은 자꾸 들이맞는 걸까. 4년이 지난 지금 그 아파트는 내가 살 수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그 언니가 제시한 방값은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이었다.

 

생애 최초 ‘하우스메이트’ 면접 보기

그 집의 하메 경쟁률은 매우 셌다. 우선 시세가 말이 안 됐고, 그렇게 좋은 컨디션의 거실, 부엌, 화장실, 방 한 칸을 내 집처럼 쓸 수 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청주에서 여러 집들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잡고 엄마 손을 잡고 서울로 올라왔다. 집은 6군데 정도 봤는데, 정말 다리가 너무 아팠다. 지하철 노선도도 헷갈려서 더 많이 걸었던 것 같다. 집을 하나둘 볼 때마다, 이런 시설의 집에 방 한 칸을 쓰는데도 이렇게나 비싸구나 싶었다. 서울에 집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 지금은 더 부럽다.

그 한강뷰 집에 들어갔을 때, 속으로 감탄이 나왔다. 모델하우스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아파트 집주인 언니는 생각보다 나이가 어렸다. 36살 정도 됐다고 했는데, 주식이 대박나면서 이 집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막상 집을 사니 혼자 쓰기에는 방이 너무 남아서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자 글을 올렸는데, 올리고 나서 폰에 불이 난 것처럼 연락이 많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한명 한명 면접을 보면서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은 친구와 살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꺼냈다.

아니, 이제 겨우 첫 직장에 합격했는데, 집 구하는 것도 면접을 봐야 하다니..! 취업스터디에서 단련되었던 나의 면접 스킬을 꺼내야 되는 건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빠르게 면접관의 동태를 살폈다. 언니는 고급스러운 찻잔에 티를 내려주며 이렇게 엄마랑 같이 온 친구는 없었다고 했다. ‘오호라. 엄마 손을 잡고 올라온 지방 소녀의 이미지가 신선하게 먹혔군.’ 나는 오늘 아침 9시에 청주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어필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게 돼서 2주 뒤 출근인데 아직까지 집을 구하지 못했다고. 4년 내내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동체 생활을 배웠다며 조용히, 없는 사람처럼, 방만 쓰고 살 수 있다고 얘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말들이었지만, 그때 나는 너무 간절했다. 서울에 내가 마음에 드는 방 하나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나의 처절한 독립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안타깝게도 지금 내놓은 방은 본인에게 영어를 알려준다던 외국물 먹은 친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같이 생활하며 영어도 배우고 좋을 것 같다고. ‘아… 영어를 잘하는 건 이럴 때도 쓸모가 있구나..’ 영어에는 자신 없던 내 자신에게 1023번쯤 실망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그 집 구조는 다용도실까지 방이 4개였는데, 집을 둘러보니 작은 방 하나에 커다란 옷장 하나만 두고 쓰고 있었다. 언니는 나의 사정을 듣더니 물어봤다.

혹시 그 방도 괜찮으면 옷장을 뺄까 생각 중인데 괜찮나요?

나는 처음 보는 그 집주인 언니 손을 덥석 잡고는 정말 깨끗하고 조용히 잘 쓰겠다며 적극적으로 돌진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스킨십에 언니는 하하 웃으며 곧이어 몇 명의 면접자가 더 올 테니 다 보고 나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엄마와 나는 퉁퉁 부은 다리를 시외버스에 싣고 청주에 내려왔다. 이제야 돈을 좀 버나 했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보증금도 필요하고, 월세도 내야하고, 혼자 식대도, 관리비도 다 해결해야 하다니. 게다가 학자금은 언제 다 갚는담. 돌아오는 버스에서 혼자 사는 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문자가 도착했다.

와아악! 엄마 나 합격했대!

좋아서 엄마랑 방방 뛰다가 서로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직장도, 첫 번째 하우스메이트도 합격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청약도 아니고 하우스메이트 합격된 일이 이렇게나 좋은 일이라는 것을. 어쨌거나 그날 나는 두 다리 뻗고 잤다.

상상했던 시작과는 조금 다른 서울살이가 곧 개막을 앞두고 있었다.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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