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끝이 보일 때가 있다. 특별히 싸우거나 마음이 상한 일처럼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서서히 관계가 식어가는 게 살갗으로 느껴진다. 그 낯선 온도가 느껴져도 나는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시간도 감정도 흘러가는 대로 지켜본다. 예전의 나였다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라며 같이 쌓아온 그 시간이 아까워 악착같이 인연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제 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이게 마음이 딱딱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걸까? 언젠가, 사수였던 … [Read more...] about 우린 이제 그만 만나겠구나: 인연의 유통기한에 대하여
투명해지는 중입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난 서툰 것투성이다. 혼자 자전거 타는 것에도 서툴고,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것도 서툴고, 날생선을 먹는 일에도 서툴다. 서툰 것투성이인 내가 가장 서툰 건 말로 내 마음을 투명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난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내향적인 성향을 품고 태어났다. 사 남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오면서 욕심은 독이고, 양보는 미덕이라고 배웠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눈치가 생명이다. 부모의 지치고 고된 삶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 [Read more...] about 투명해지는 중입니다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준 언니들
※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1. 대학 시절, 학교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학교와 멀지 않은 번화가에 있던 작은 음반 가게였다. 난 버스 정류장 앞 음반 가게에서 3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기 중에는 주말, 방학 때는 주 6일 동안 일했다. 평소 음악 듣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큰 물리적 힘이 필요하거나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은 일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내향적 성향인 나와 잘 맞았기에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시작해 졸업하고서도 … [Read more...] about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준 언니들
돈과의 분리불안에 대처하는 어느 프리랜서의 자세
십수 년째 사회생활을 했지만 난 내 통장을 배불리 먹여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과식을 해 본 적이 없다. 불쌍한 내 통장은 늘 배가 고팠다. 집이나 차를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품을 사며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닌데 내 경제 상태는 늘 아슬아슬했다. 지금은 일하지만 당장 내일 일이 끊길 수도 있는 불안정한 날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윗선에 앉은 고용자들의 한마디에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날아가기 일쑤였다. 약속했던 페이는 늘 그놈의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쉽사리 … [Read more...] about 돈과의 분리불안에 대처하는 어느 프리랜서의 자세
보리차를 끓이는 마음: 우리의 삶에는 분명 보리차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얼마 만에 마시는 집에서 끓인 보리차일까? 지방에 사는 큰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건 투명한 유리병에 가득 담긴 보리차였다. 먼 길을 온 탓에 갈증이 났던 난 언니가 건넨 보리차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먼저 구수한 향이 코에 닿았고, 끝으로 갈수록 살짝 달달한 맛이 혀 끝에 스쳤다. 탄수화물과 수분의 콜라보 덕분일까? 갈증은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졌고, 배도 든든해졌다. 가게를 운영하는 언니는 하루의 대부분을 가게에서 지낸다. 그래서 가게에 정수기를 놓고, 잠만 … [Read more...] about 보리차를 끓이는 마음: 우리의 삶에는 분명 보리차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옷장 정리할 때마다 반복하는 그 말
어느새 겉옷이 거추장스러워진 계절이 왔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면 묵은 계절을 보내고 새 계절을 맞이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미뤄뒀던 일을 시작한다. 지난 계절, 나와 한 몸이 되어 추위와 칼바람을 막아주던 두툼한 옷들에게 잠시만 안녕을 고한다. 행거에 걸어둔 코트와 패딩 점퍼를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리곤 옷장 깊숙이 넣어 둔 박스 속 여름옷을 꺼낸다. 서랍 속의 겨울옷들을 꺼내 여름옷들과 배턴 터치를 시킨다. 늦은 봄과 늦은 가을이면 반복되는 연례행사,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고장 난 … [Read more...] about 옷장 정리할 때마다 반복하는 그 말
굳어 못 쓰느니, 차라리 닳아 못 쓰는 게 낫더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기약 없는 셀프 자가 격리의 날들이 이어진다. 만남이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집 근처 산책로를 걷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서일까? 원래 지극히 집순이적 성향을 가진 친구들도 이 숨 막히는 상황에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0과 1, 그것은 천지 차이다. 평소 활동량이 0이었던 한 친구에게 1 정도의 움직임은 몸에 무리였나 보다. 분명 격한 운동이 아니었음에도 작은 … [Read more...] about 굳어 못 쓰느니, 차라리 닳아 못 쓰는 게 낫더라
매일 10km씩 걸으면 살 빠져요?
브런치를 시작한 후 늘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내 브런치에 들어올까? 그 궁금증 때문에 브런치의 통계 탭을 눌렀을 때 내가 더 유심히 보는 부분은 조회 수나 유입경로가 아닌 유입 키워드다. 그 단어들만 훑어봐도 최근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에 꽂혀 있는지, 또 내 브런치의 어떤 글에 혹해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습관처럼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지만 상위권은 거의 변동이 없다. '10km 걷기'와 '다이어트' 혹은 '10km 걷기 다이어트'가 돌아가며 1위를 다툰다. 얼마나 … [Read more...] about 매일 10km씩 걸으면 살 빠져요?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낭만이 사치인 시대, 저는 사치스럽게 살겠어요
1. 이제 제법 낮이 길어졌다.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해는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입에는 마스크를 장착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후 사람들과 아름다운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해가 있을 때는 분명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바람도 저녁이 되니 제법 차고 날카롭게 목 사이를 파고들었다. 추위에 약한 난 점퍼의 지퍼를 쭉 올려 찬 봄바람을 막았다. 내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는데 집중하는 사이, 차가운 봄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봄 한가운데에서 내리는 … [Read more...] about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낭만이 사치인 시대, 저는 사치스럽게 살겠어요
나는 오늘도 심심해지기 위해 산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 10살 조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아우 심심해! 이모 심심해요. 할머니 나 심심해요! 엄마 나 심심하다고오! 조카의 ‘심심해요 타령’은 시도 때도 없다. 본인 집에 없는 TV를 보러 외할머니 집인 우리 집에 와서 몇 시간이고 각종 만화 프로그램을 순례를 한 후에도 심심하다고 한다. 가족여행으로 다 함께 캠핑장에 갔을 때도 한참 근처 산을 뛰어다니며 밤을 줍고서도 돌아서면 심심해 죽겠다고 말한다. 우리 집 앞 문방구에 신나게 뽑기를 하고 돌아와서도 금세 … [Read more...] about 나는 오늘도 심심해지기 위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