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연말을 혼자 보냈던 것은 어쩌면 지금을 위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마치 잘 숙성된 포도주처럼. 나란 남자는 당신과 한 잔을 기울일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음료가 소주, 맥주가 아닌 와인이라고 믿고 있다. 내 머릿속엔 연말, 와인, 로맨틱, 성공적.
당당하게 도착한 마트. 하지만 마트에서 와인코너는 던전 오브 던전 같은 곳이다. 정장을 장착한 직원의 “찾으시는 와인 있으세요?”라는 한 마디에 우리의 정신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이지? 와인 이름도 모르는 나 따위가 와인을 마실 자격은 없어!
1. 퀘스트: 저희 매장에 그런 와인은 없는데요?

2. 속성: 포도면 포도지 레드는 뭐고 화이트는 뭐야?

연인을 위해 특별한 와인을 보여주고 싶다면 로제와인 쪽을 노려봄이 어떨까? 적당히 달달하고 가볍다. 무엇보다 분홍빛의 색깔이 너무 매혹적이다.
3. 현질: 비싼 와인이 더 맛있냐? 네 사실입니다

감히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마트 와인 중 3만 원 이상은 무엇을 골라도 맛있었다. 하지만 초보의 입장, 그리고 졸부가 아닌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1만 5,000원 내외의 와인이 처음 접하기에 종류도 다양하고 도전하는 재미도 있다. 직원에게 1만 5,000원대 와인을 물어보되 욕심이 생기면 예산을 늘리기로 하자.
가끔 몇몇 사람이 말한다. 비싼 와인과 싼 와인의 차이가 없다고. 물론 사실 아니다. 하지만 가격대가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면 차이가 크게 나진 않는다. 고수들은 미세한 차이를 즐기는 법이지만 최고의 와인이 아니라서 천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린 그냥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와인을 많이 즐기는 것이 더욱 좋다.
4. 맵 설정: 같은 값이면 비유럽으로!

와인은 당연히 프랑스 아니면 이태리지! 라고 고르는 분들은 유명세 스튜핏!을 드린다. 같은 가격이면 유럽이 아닌 곳이 가성비가 좋다. 역사와 전통 유명세 프리미엄이 없기 때문이다. 와인 초보라면 신세계라 구분되는 칠레나 미국, 호주 등의 와인을 공략하자.
5. 결정: 최종 결정! 제 와인은요…

“그래서 이 와인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아 그거! 네 물론 처음 들어봐요.”
우리는 검색의 민족이 아닌가. 비비노(Vivino)를 비롯한 와인 애플리케이션으로 라벨사진을 찍으면 해당 와인의 별점이나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번거로운 일. 독해도 어플도 싫다면 관상을(?) 보자. 라벨에는 여러 정보가 있지만 생산자명. 와인명. 빈티지(연도)만 적혀있어도 마트 와인에서 보통은 하겠거니 판단할 수 있다.
좋아 너로 정했다! 드디어 마트 와인코너를 클리어했다. 뿌듯함에 신나서 집에 가기 전에 오프너와 잔은 집에 있는지 돌이켜보자. 나는 오프너가 없다는 사실을 중요한 순간에 알아서 로맨틱보다 차력 쇼를 한 적이 있다(…)
6. 엔딩: 마트 와인을 맥주처럼 마시는 그날까지

마트에서 판매하는 와인은 이런 ‘와인의 막연한 고급 이미지’를 지워줄 수 있다. 잘 찾아보면 가격대도 낮고 맛있는 와인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첫발이 어렵지 자주 찾다 보면 생활에 스며든다. 와인 문화란 이렇게 발전해야 하는 것 같다. 쪼랩… 아니 와인 초보여, 용기를 갖고 마트에 가자.
연말 와인 공략은 드디어 엔딩을 맞았다. 그녀가 좋아할 멋진 로제와인을 골랐으니. 이제 남은 것은 와인을 함께 마실 그녀를 찾는 일이다. 하하. 생각해보니까 순서를 잘못 알았네… 잔이라도 하나 덜 살걸. 하하.
원문: 마시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