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에서 최초로 ‘생태농장’ 그리고 ‘퍼머컬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언뜻 살펴본 그들은 말 그대로 전기 없는, 인터넷 없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살고 있었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다. 궁금했다. ‘자연 속의 날 것의 삶’, ‘삼시 세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전기 없는 한 달. 진짜 생태공동체의 삶 말이다.
- 국가: 태국
- 방문한 곳: 태국 북부 생태농장 'Sahainan'
- 체류 기간: 2015년 12월
저 3무(無) 가 바로 이 공동체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유일한 전기는 태양광 패널을 통해 공급되는 부엌에 위치한 전구 한 개였다. 자연스럽게 해가 지는 동시에 불을 피워서 모닥불을 만들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수다를 떨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뭐 당연하지만, 와이파이가 없다. 인터넷이 없다. 나의 필수 아이템인 아이폰은 이곳에선 럭셔리 카메라일 뿐이었다.

흙집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려보내면, 차곡차곡 쌓여서 거름이 된다. 그래서인지 화장실 뒤쪽에 나무들이 무럭무럭 잘 자란다. 샤워도 마찬가지로 대나무 통에서 졸졸 나오는 물로 잘 씻으면 된다. 전기가 없는 관계로 당연히 따듯한 물은 구경도 할 수 없다. 밥 해먹을 땔감도 부족한데 어떻게 물을 데워서 온수로 샤워를 하겠는가.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함께 수확하고 요리하고, 먹었다. 당시 생태농장에 거주하는 식구는 약 12명 정도였는데, 식사 준비는 항상 다 함께였다. 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수확부터 시작해야 한다. 텃밭에 가서 호박, 콩을 따오고, 바나나 잎을 준비한다.샐러드를 먹으려면 여린 잎들을 일일이 따서 모아야 한다. 그사이 다른 멤버는 불씨를 피워야 하니까, 열심히 훅훅 바람을 불고 땔감을 준비한다. 그렇게 냄비 한가득 밥을 하고, 그사이 각종 호박, 파파야, 바나나, 콩, 양파 등등을 다지고 썰고 볶아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한다. 커다란 바나나 잎 위에 코코넛으로 만든 그릇과 대나무로 만든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하면. 식사 준비 마침내 완료!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죄다 먹은 사진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먹어대니 맨날 고민은 아놔 오늘 저녁을 뭐 해 먹지, 내일 아침 먹을 파파야 남았나, 점심은 일단 호박을 따서 요리해보자 등등… 그 고민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꽤 치열했다.
눈곱을 떼며 투덜투덜하며 불을 피우고, 매캐한 연기에 쿨럭거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화장실 앞에서 안에 누구 없냐고 소리를 꽥 지르고, 급하니까 근처 나무 뒤로 후다닥 뛰어가서 일을 보고, 해가 쨍하니까 얼른 손빨래로 빨래를 하고, 땔감 떨어져서 나무하러 산 타러 가고, 바나나 심으러 돌아다니고, 새까만 하늘에 동전처럼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용변을 보던 시간…
땅처럼 정직하게,꽃처럼 아름답게,
벌처럼 부지런하게
- 무명

자연 앞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리는 쌩얼이 되었다. 도심 속의 가면들은 사라졌다. 명함이나 타이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바나나를 잘 심고, 불을 잘 때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이러한 생태농장이 너무 좋아서, 나는 한동안 농사일을 배우고 진지하게 농장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6개월을 농장에서 지낸 후에야 알아차렸다.
내가 푹 빠진 건 바로 농사일 자체가 아니라, 바로 ‘정직함' 그리고 ‘단순함'이었다. 내가 찾던 커뮤니티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도심 속의 가면과 껍데기가 아닌, 자연 속의 맨발과 맨손, 쌩얼의 시간 말이다.원문: Lynn의 브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