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달력의 날짜를 보지 않아도 연말이 왔다는 걸 느끼는 시그널이 몇 가지 있다. 핼러윈 장식이 빠지기 무섭게 크리스마스 장식이 선수 교체를 한 상점의 쇼윈도를 볼 때. 또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을 보자며 송년회 약속을 잡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영화의 예고편을 볼 때. 나는 올해가 또 마무리되어가는구나 느낀다. 동시에 쓸쓸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묘한 상태가 되곤 한다.
사실 연말을 알리는 여러 시그널 중 내 마음의 살갗에 확 와 닿는 신호는 따로 있다. 바로 별다방의 다이어리 이벤트가 시작을 알리는 앱의 알람. 커피를 한 잔 마실 때마다 프리퀀시라는 이름의 스티커를 주고, 17개의 스티커를 모으면 다이어리 혹은 다른 이벤트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다. 열성 팬이라 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연말이 되면 좀 더 자주 별다방에 가게 된다. 이왕 먹는 커피, 스티커를 모아 다이어리를 받을까? 하는 마음이 자꾸 날 그곳으로 끌어당긴다.

매년 쓰지도 않을 다이어리에 왜 이리 집착을 할까? 생각은 하면서도 연말이 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별다방으로 향한다. 뭐 대단한 기능이나 소장 가치가 있는 다이어리도 아님을 알면서도 멍청하게 또 커피를 마신다. 사실 커피 몇 잔 값이면 돈 주고도 살 수 있는 다이어리를 왜 17잔이나 마셔가며 돈 쓰고, 몸 써가며 다이어리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쓸까?
약간의 돈과 시간, 그리고 애정만 있다면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두 달 안에 17개의 커피를 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1년 내내 게으름을 부리다가도 연말이 닥치면 다이어리와 교환할 수 있는 스티커 모으기에 열중한다. 마치 벼락치기 숙제를 하듯. 다이어리를 손에 넣으면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거라도 이뤘다는 얄팍한 성취감에 취한다. 비교적 작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기 위로 중 하나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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