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라는 건 사전적으로 '동물의 살'을 뜻한다. 동물의 살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을 타깃으로 한 상품에 굳이 '고기'라는 단어를 붙여 판매한다. 요즘 마케팅과 세일즈는 '사용자 위주(User friendly)'가 대세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채식주의자가 되고서 먹을게 넘쳐났다. 고기 먹을 새가 없다. 우리나라는 절기에 따라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제철 과일과 채소가 나온다. 지난 계절을 버텨내 달고 영양도 풍부한 과일과 채소는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지금은 두릅이 한창이다. 어릴 적 꽃샘추위가 지나면 엄마는 두릅을 찌고 튀기고 볶아줬다. 어릴 땐 이게 왜 맛있나 했는데, 이젠 두릅의 가시를 직접 제거해 먹는다. 채소의 맛을 알게 됐고, 철이 지나면 새로운 채소를 맞이 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먹는다.
조미료와 버섯을 뭉개 놓은 것을 고기 맛이 난다고 홍보해도 거들떠도 안 본다. 특히 한국인의 밥상과 주전부리엔 고기보다 더 좋은 게 널렸다. 콩으로 만든 훌륭한 두부, 콩국물, 콩고물 등이 더 맛있고 건강하고 싸다. 조금 과장 섞인 말이지만, 채식주의자가 된 후에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더 자랑스러워졌다.

비건 용어를 쓰는 것도 한국인 채식주의자에게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 하는 홍길동 같은 처지다. 나도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음 비건의 종류를 보고 내 인생 '비건'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간헐적으로 '페스코테리언(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 '정도는 됐다. 별 애쓰지 않아도 집밥이나 급식을 먹을 때 그랬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찰 문화가 뿌리 깊고, 이를 중심으로 절기별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 간장, 고추장, 도토리묵, 비빔밥 등 굳이 우유나 고기, 버터가 들어갔는지 따지지 않아도 되는 재료가 많다. 절밥과 옛 가정식은 자연의 섭리를 음식에 담았다. 그래서 오히려 서양의 전문가들이 지속 가능한 식습관의 예로 한국인의 식문화를 주목한다(WSJ 칼럼니스트 비 윌슨이 쓴 『식사에 대한 생각』에선 한국의 8,90년대 식사문화를 모범 예시로 든다. 이 책은 NYT 등 주요 외신이 추천한 책이다).
'대체육', '비욘드미트' 등 인간의 식습관엔 고기가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을 담은 용어 때문일까. 오늘도 누군가에게 고기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상식을 거스르는 사람이 된 거 같아 죄책감이 쌓인다. 고기를 포기 못 해 대체육까지 만들고 '이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니 나도 은연중에 '인간은 고기가 필수인데 내가 유별나구나' 생각하게 한다.
굳이 따지면 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우유와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 정도 되지만, 식단을 짜기 전 고기와 버터를 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제철 채소가 무엇이고, 솜씨 좋은 스님의 사찰레시피나 요리연구가의 가정식 요리법을 활용해 만드는 즐거운 한식 요리법을 생각한다. 나부터 채식주의자, 비건, 이라는 말 대신 집밥, 사찰음식, 한식이란 용어를 쓴다. 비건은 맛없고, 규제가 많다며 찡그리던 사람들도 '들기름 막국수', '콩국수'를 먹자고 말하면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속 편하고 좋지'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국내 비건인들을 타깃으로 '지속 가능한 식탁'을 연구하는 세일 담당자와 마케터는 분발해야 한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그리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속 가능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만의 언어를 찾아야 우리 식대로 식문화를 즐기고 그래야 해외가 주목하는 K-비건도 가능하다. 어느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 담당자가 한국인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기깔나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쓸 거다.오늘도 '대체 고기'가 뜬다는 기사 제목을 읽으며 되묻는다. 도대체 누굴 위한 '대체 고기'냐고, 누굴 사로잡기 위해 만든 단어냐고.

원문: 배추도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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