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계신총회 신정교회 원로목사 정양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가르칩니다. “범사”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순경이든 역경이든,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성공하였을 때나 실패하였을 때나. 높아졌을 때나 낮아졌을 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항상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좋은 일이나 순경에 처할 때는 감사하기 쉬우나 나쁜 일이나 역경에 처할 때는 감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어렵고 힘들 때, 나쁜 일과 역경에 처하였을 때 감사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에 감사하라 하신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데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입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범사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은혜가 아닌 것, 복이 아닌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을 어찌 원망하며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려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역사합니다. 육신의 삶과 세상의 형편과 현재의 문제만 놓고 생각할 때는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참으로 억울하고 큰 화를 당한 것, 같은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내 놓고 보면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는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사건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일만 보면 어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얼마나 그 하나, 하나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일을 만나도 그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범사에 감사하면 영육 간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영적으로 유익이 많습니다. 은혜 생활은 감사 생활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좋은 마음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원망 불평하는 마음은 나쁜 마음입니다. 가시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성령의 감화를 받은 마음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은 감사 충만한 마음입니다. 마귀가 주장하는 마음은 원망 불평이 가득한 마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육신의 건강에도 유익이 많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만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매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해보세요? 얼마나 심기가 불편하고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는지 모릅니다. 이 망할 놈의 세상이라고 신경질을 내보세요? 뼈가 마르고 간이 녹습니다. 살맛이 안 납니다. 망할 놈의 세상인데 무슨 살맛이 나겠습니까?
셋째, 범사에 감사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유익하고 복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십계명 인륜의 첫 번째 계명이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여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냉수 한 그릇만 얻어 마셔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구촌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에 사람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살아보세요?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싫고 못마땅합니다. 꼴도 보기 싫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익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복되게 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영육 간에 유익하고 복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유익하게 하고 복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