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선보이는 TVA 작품들을 모두 따라가지 못한 지 제법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화제가 되는 주요 작품들은 재미 여부를 떠나서 일단 몇 화씩은 꼭 챙겨봤었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한두 작품 놓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누야샤의 속편으로 화제가 된 <반요 야샤히메>를 제외하고는 거의 못 봤던 터였다.
이 작품 <귀멸의 칼날> TVA도 남들보다는 뒤늦게 본 편이다. 극장판이 일본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했다는 소식 때문에 거꾸로 TVA와 원작 코믹스까지 찾아보게 된 경우인데, 극장판을 극장에서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 TVA를 빠른 속도로 완료했을 정도로 오랜만에 딱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왜 이 에피소드들을 극장판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극장판에 최적화시킨 액션 스케일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감정을 자극하는 웅장한 음악이 더해져 <귀멸의 칼날>이 갖고 있는 강렬하다 못해 처절한 에너지를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극장판을 보고 와서(극장판을 보고 나서 보려고 코믹스는 딱 그전까지만 보고 미뤄뒀었다) 다시 보게 된 코믹스 속 극장판의 에피소드는 확실히 그 에너지가 덜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과하다고 말하기 쉬운 것들, 또는 너무 직접적이어서 낯간지럽다고 말하는 것들을 보란 듯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다.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도 마찬가지다. 몹시 그렇다.
신파가 강한 내용이라 부정적인 평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보통 과한 신파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경우는 관객보다 영화의 감정이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클라이맥스가 길어질수록 본래 관객의 감정마저 차갑게 식어버린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은 감정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과한 감정의 신파라는 것은 같지만, 극장판 클라이맥스에 와서 신파적으로 변했다고 보기가 어렵다. TVA 내내 주인공 탄지로의 과한 감정선이 이미 존재했고, 극장판에 와서 이걸 극대화시킬 때는 그 과한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설득될 정도로 한계를 모르고(이를 악물고)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감정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탄지로 캐릭터를 비롯한 <귀멸의 칼날>의 세계관은 여러 가지로 현 일본의 현실과 맞물려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쳐두더라도 근성으로 극한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소년 만화 주인공의 모습은 여전히 현실 에너지를 준다.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정말 힘들 때는 그 간절한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힘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귀멸의 칼날' TVA도 새로운 극장판도 더 기대가 된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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