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리스크 속 지캐시 랠리, 프라이버시 코인 시즌 돌아오나
'투명성'과 '익명성'의 균형 모색, 프라이버시 코인 섹터 전반 강세

가상자산 산업이 월스트리트의 품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장에선 흥미로운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ETF 승인과 기관 투자자 유입으로 주류 금융과의 접점이 확대되는 동시에, 정반대 지점에서 프라이버시를 추구하는 자산들이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암호화된 비트코인’으로 불리는 지캐시(Zcash, ZEC)가 있다.
지난 2025년 9월 이후 지캐시는 바이낸스 테더(USDT) 마켓에서 약 700% 급등했고, 한때 700달러를 넘어 750달러까지 터치했다가 최근에는 600달러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4분기 들어서는 하루 만에 500달러 선을 돌파하며 시가총액 상위권으로 재진입하는 등 프라이버시 코인 섹터 강세를 주도했다.
업계는 이번 랠리를 단기적 수급이 아닌 ‘프라이버시 내러티브의 귀환’으로 해석한다.

비트코인이 채우지 못한 빈자리
비트코인(BTC)의 핵심 강점은 탈중앙화된 투명성이다.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 공개되며, 이는 신뢰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 본인도 일찍이 지적했듯,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완전하지 않다. 주소와 거래 흐름이 모두 노출되기 때문에, 충분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캐시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기 위해 설계됐다. 비트코인 코드베이스에서 출발했지만, 거래의 송신자·수신자·금액을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그 중심에는 '영지식 스나크(zk-SNARKs)'라는 암호학 기술이 자리한다.
이 기술의 핵심은 간단하다. 거래 세부사항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거래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충분한 잔액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지불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지만,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코인데스크 리서치는 이를 "봉인된 인증서"에 비유한다. 급여 명세서 원본을 제시하는 대신, 공인 회계사가 확인한 도장이 찍힌 봉투만 보여주는 식이다. 내용물은 비공개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가 기준을 충족한다는 사실은 보증된다.
또 다른 프라이버시 코인인 모네로(XMR)가 '링 서명(Ring Signature)'을 통해 여러 거래를 뒤섞어 확률적으로 익명성을 확보한다면, 지캐시는 수학적 증명을 통해 확정적 프라이버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신뢰도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화하는 프로토콜, 비트코인을 닮은 경제 모델
지캐시는 기능 고도화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높인 NU6를 적용했고, 올해는 처리 속도를 끌어올리는 ‘프로젝트 타키온’ 도입을 예고했다. 갤럭시는 “타키온은 솔라나의 파이어댄서(Firedancer)에 비견될 만한 확장성 업그레이드”라고 평가했다.
경제 구조는 비트코인의 설계 철학을 따른다. 최대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제한되며, 4년마다 블록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 메커니즘이 적용된다. 지난해 11월 반감기 이후 블록당 보상은 1.5625 ZEC로 하락했고,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약 3.5%까지 내려왔다. 채굴 보상의 일부는 커뮤니티 펀드로 적립돼, 개발팀·재단·커뮤니티가 함께 네트워크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다.
코인데스크 리서치는 "지캐시는 확실한 개인 정보 보호 기술을 갖춘 '암호화된 비트코인'"이라며 "지캐시는 프라이버시와 신뢰성을 결합한 새로운 화폐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이퍼펑크 정신의 재부상
그렇다면 왜 지금, 프라이버시 코인이 다시 주목받는걸까?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본이 대거 유입되며 암호화폐는 전례 없는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앙화된 커스터디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탈중앙화라는 본래 가치에 대한 회의도 커졌다.
갤럭시는 “프라이버시 코인 투자자들은 온체인 감시가 일상화된 시대에 다시 사이퍼펑크 정신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가 최근 발간한 '2025 가상자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프라이버시 관련 구글 검색 관심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이 현상을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이용자들이 다시금 프라이버시를 가상자산의 핵심 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의 판결 사례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7일 비트코인 프라이버시 지갑 '사무라이 월렛'의 공동 개발자 키온 로드리게스는 무허가 송금업 운영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받을 수 있는 최대 형량으로,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가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매체 디크립트는 "해당 판결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캐시의 급등은 그 흐름이 시장에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규제라는 피할 수 없는 장벽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 리스크는 여전히 프라이버시 코인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KYC(고객확인제도), AML(자금세탁방지) 등 거래 추적을 강화하려는 국제 규제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 시장 규제법(MiCA)을 통해 2027년까지 프라이버시 코인 사용을 규제 대상 플랫폼에서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거래 추적이 불가능한 자산은 금융 투명성 원칙에 반한다"며 프라이버시 중심 코인을 고위험 자산군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유럽 내 거래소와 서비스 제공업체(CASP)는 프라이버시 코인을 상장하거나 결제 수단으로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특금법상 ‘다크코인’ 취급이 금지돼 거래 지원이 차단됐다. 금융위원회가 '거래내역 파악이 곤란해 자금세탁 위험이 큰 가상자산'을 '다크코인'으로 분류하고 가상자산사업자의 취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3년전 라이트코인(LTC)이 프라이버시 기능을 강화하는 '밈블윔블(MimbleWimble)' 업그레이드를 단행하자 거래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대응해 지캐시와 라이트코인은 '선택형 프라이버시' 전략을 채택했다. 지캐시는 공개 주소(Transparent Address)와 익명 주소(Shielded Address)를 함께 운영하며 규제 준수 경로를 마련했고, 라이트코인은 거래 시 프라이버시 기능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겟은 “지캐시는 선택 가능한 개인 정보 보호를 채택해 규제 유연성을 획득했다”며 “이를 통해 다른 프라이버시 코인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지캐시는 금융 정보를 위협받는 미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남은 퍼즐
시장은 기술 성숙도와 수요 타이밍이 맞물린 지금을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머트 뭄타즈 헬리우스 CEO는 “비트코인은 합법성, 이더리움(ETH)과 솔라나(SOL)는 확장성을 확보했다”며 “이제 남은 마지막 퍼즐은 프라이버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캐시는 영지식증명 기술을 실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구현한 최초의 사례"라며 "기술적 완성도와 시장 수요가 동시에 충족된 지금이야말로 프라이버시 금융이 본격 확산될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프라이버시 코인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마지막으로 1,000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라는 대담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과의 타협 속에서 성장해온 지난 몇 년과 달리, 이제는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라는 본질적 가치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지캐시의 부상은 단순한 가격 상승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암호화폐가 태동했던 근본 이념으로의 회귀이자,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향한 또 다른 실험의 시작일지 모른다.
· 가상자산이 제도권(ETF 등)으로 들어가자 “내 거래가 너무 공개된다”는 걱정이 커졌고, 그래서 개인정보를 지켜주는 코인 '지캐시'로 돈이 몰리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 지캐시는 거래 금액·보낸 사람·받는 사람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거래가 정상임을 증명하는 기술을 써, 흔히 ‘암호화된 비트코인’처럼 받아들여진다. (공급량·반감기 구조도 비트코인과 비슷).
· 다만 EU·한국 등 강한 규제 때문에 상장·거래가 제한될 위험이 크다. 이에 지캐시는 투명 주소/익명 주소를 고르는 ‘선택형 프라이버시’로 대응 중이지만 규제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ZEC, 트레이딩뷰, 연합뉴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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