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의 이면'... 쿠팡 속도 경쟁의 대가, 새벽배송이 앗아간 30대의 생명

졸음운전 추정 사고로 사망... 동료 기사들 "새벽배송 기사 몸 갈리게 일해"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만든 사회적 타살” 공방 속 특별근로감독·책임 있는 조치 요구
민노총 제주지부 “심야노동 중단하라” 성명

제주에서 새벽까지 반복된 로켓배송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새벽배송 금지 논란이 또다시 거세졌다.

지난 10일 오전 2시 10분 제주시 오라2동 도로에서 쿠팡 협력업체 소속 30대 새벽배송 기사 A씨가 몰던 1t 트럭이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고, 중상을 입은 A씨는 당일 오후 3시 10분께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음주상태도 아니었고, 새벽시간 배송 일을 했기 때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는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만든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며, “쿠팡은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 사건에도 책임을 개인 건강 문제로 돌리며 근본적인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제주 쿠팡 노동자의 죽음 또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과로와 구조적 위험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 정부와 고용노동부, 제주도 역시 죽음을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돼야 한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더는 빠른 배송 명목으로 노동자 목숨이 희생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 또 다른 노동자가 희생되기 전에 죽음의 구조를 멈춰라.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동료들은 A씨가 며칠 전(지난 5~7일)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충분히 쉬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에 복귀했다가 이 같은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의 배경에는 다회전 배송과 로켓프레시·프레시백 회수가 결합된 업무 구조가 있다. 현장 기사들은 “사고 시간대가 1회차 배송을 마치고 다시 싣는 시점”이라고 증언한다.

즉, 일을 오전 1~2시에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밤사이 2~3회 반복 배송을 하며, 물품을 다시 받기 위해 캠프(물류센터)를 수시로 복귀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야간(새벽) 배송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로 알려졌다.

한 제주 쿠팡 배송기사는 “하루에 배송해야 하는 택배만 평균적으로 300개가 넘는다. 직접 물건을 분류해서 실어야 하고 또 당일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프레시백까지 다시 찾아와야 해서 배송기사를 연료로 갈아 넣는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7월 심야 로켓배송 시작 일주일 만에 노동자 두 명이 현장에서 쓰러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역본부는 “쿠팡은 제주 새벽배송 노동자 사망에 대한 진상을 공개하고 생명안전 위협하는 심야노동 중단하라”고 주장하며, 제주녹색당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의식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시장 구조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야간 노동을 결코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유사 사례는 계속됐다. 지난해 5월 새벽배송 기사 고 정슬기 씨가 주 73시간 야간근무 후 사망해 산재로 인정됐고, 7월엔 주 60시간 이상 일하던 50대 기사가 숨졌다.

이런 흐름 속에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새벽배송을 제한하자는 제안이 제기되며, 편의와 안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커지고 있다.

반면 소상공인 업계는 새벽배송 제한에 강하게 반발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9일 논평에서 “민노총 등이 제기한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정부의 민생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제한이 현실화되면 온라인 판로가 막혀 내수 부진 속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했다.

이 단체는 새벽배송 시장이 2015년 4000억원 → 2024년 11조8000억원으로 성장하는 동안 과일·식재료 등 소상공인 품목이 핵심이었다고 덧붙이며, 일괄 금지보다는 공정한 물량관리와 안전장치 보완을 요구했다.

이처럼 노동 안전과 민생경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 속에, 논쟁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근무를 납 화합물과 DDT 살충제와 같은 등급인 2A급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연구에 따르면 30년 이상 야간 근무를 한 노동자는 유방암 발병률이 일반 노동자보다 약 2배에 달하고, 야근·교대근무자는 심혈관 질환에도 취약한 것으로 보고된다. 교대제로 밤낮이 뒤바뀐 삶은 생체리듬과 생활 균형을 무너뜨려 사고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노조와 시민단체는 사건 경위 공개, 전면적 산재 조사,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함께 논의해야 할 과제로는 ▲심야·새벽 물량과 회전 횟수 상한 ▲분류·적재 자동화와 인력 재배치 ▲페널티 중심의 속도 경쟁 완화 ▲심야노동 축소 및 대체 배송모델 전환 ▲가족 돌봄과 회복 시간 보장 등이 언급된다.

한편 숨진 A씨는 배우자와 두 자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WHO,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쿠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