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태 칼럼]겨울의 문턱, 화려한 성취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 앞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계신측) 덕평교회 담임목사 석진태

어느덧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 문턱입니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이곳 이천 덕평의 들녘도 이제는 추수를 마치고 고요한 빈 들만 남았습니다. 농부의 땀방울이 맺은 결실을 보며 함께 감사하면서도, 화려한 단풍이 지고 난 뒤 앙상한 가지를 볼 때면 문득 인생의 쓸쓸함이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 계절을 닮았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치열하게 달려와 성취라는 열매를 손에 쥐지만, 그 기쁨 뒤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밤손님처럼 찾아오곤 하지요. "나,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밤에 찾아온 성공한 사람

성경에는 니고데모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는 성공의 정점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층이자, 엄격한 도덕성을 갖춘 바리새인이었으니까요(요한복음 3:1). 우리가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놓칠까 두려워지듯, 그 역시 지켜야 할 명예와 지위의 무게 때문에 낯선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더구나 당시 주류 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던 청년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자칫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모험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은 그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홀로 예수님을 찾아갔다고 기록합니다(요한복음 3:2). 남들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던 이 밤이라는 시간 속에는, 화려한 사회적 지위로도 채워지지 않던 한 인간의 깊은 고독과 갈급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님과 점잖은 신학적 토론을 나누며 자신의 불안을 달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여유롭고 세련된 태도를 취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낼 빛을 두려워하는 이중성을 갖기 마련이니까요.

거듭남: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기대했던 지적인 유희나 교양 있는 대화 대신, 그의 영혼 깊은 곳을 찌르는 본질적인 진단을 내리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스펙이나 업적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성취는 아무리 쌓아도 결국 물질일 뿐, 우리 영혼의 본질적인 불안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표현은 원어적으로 달리 번역한다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즉, 땅에서 나의 노력으로 만드는 개선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근본적인 존재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내는 성취가 아니라,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불어오듯(요한복음 3:8),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 같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은혜'라고 부릅니다.

높이 들리신 사랑

성경의 옛이야기 중에는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들이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민수기 21:9). 예수님은 이 사건을 언급하시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를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뱀이 높이 들린 사건과 같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이런 일을 행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멸망을 향해가는 우리를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내어주신 아버지의 끓는 사랑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증명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리신'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변치 않는 사랑 안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룬 성취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들판이 비어도,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빈 들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빈 들녘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이 계절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열매도 좋지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깊고 넓은 사랑에 우리의 뿌리를 내려보면 어떨까요.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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